2013년 매출은 6,000억 원에 불과했지만 1년 만에 그루폰의 2배에 달하는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빌리언 달러 스타트업으로 올라선 전자상거래 회사가 있다. 그것도 아기용품과 30~40대 여성 관련 제품만 파는 회사다. 하나의 버티컬 카테고리만 다루면서도 매년 100%가 넘는 매출 성장세와 손익분기점을 유지하면서 그 성장세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숨은 고수’ 주릴리(Zulily)의 빌리언 달러 기업 가치의 비결은 무엇일까?
주릴리닷컴(zulily.com)에서는 아이, 엄마와 관련된 상품만을 취급하며 판매 방식은 핫딜, 즉 일정 시간 안에 구매가 이루어져야 하는 소셜 커머스의 전형적인 방식을 따른다. 과거 온라인 보석 판매를 아이템으로 한 스타트업, 블루 나일(Blue Nile)의 주축 멤버들이 힘을 합쳐 지난 2010년에 창업된 주릴리(Zulily)의 최고 경영자인 데럴 케번스는 블루 나일의 이사회 출신이며, 최고 재무 책임자(CFO)인 마크 스톨츠맨 역시 블루나일의 CFO 출신이기도 하다. 주릴리는 전체 1,000명에 직원 가운데 3분의 1 정도인 300여 명의 직원이 싼 물건을 찾아 구입한 후, ‘핫 딜’ 방식으로 판매하며 고객을 끌어모은다. 이 때문에 주릴리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평균 단가는 일반 권장 소매가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핫딜 방식의 단품 버티컬 커머스라는 방식이라는 전략만으로 얼마나 이 회사가 더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버티컬 영역에서 서비스 딜러와 구매자의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서비스 제공자는 소품종을 전문성 있게 취급하며, 소비자는 원하는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다)에 있어 주릴리가 취한 전략들은 비단 이커머스 영역뿐 아니라, 모바일 및 웹, 콘텐츠 비지니스의 영역에서도 적용할 만한 몇 가지 통찰들이 엿보인다.
빅데이터 분석,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다
주릴리는 방대한 양의 고객 분석 데이터를 최대한 작은 단위로 쪼개, 고객의 구매 패턴을 파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빅데이터 단위에서부터 팀원 수, 회의 시간까지 작게 쪼개며 ‘작음’을 지향하는 기업 문화가 특징인데, 코호트분석을 통해 분류된 고객 집단의 세밀한 구매 행동을 분석하여 해당 집단을 위한 판매팀을 꾸린다. 타겟 집단을 위해 최적화된 마케팅 및 판매 전략을 짜고 나면 팀은 해체된다. 따라서 하루에도 수십 개의 팀이 생겼다 사라진다. 이쯤 되면 주릴리는 이커머스회사라기 보다는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이라고 보는 것이 어올린다.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기술과 데이터 마이닝이 회사의 핵심 역량으로 분류된다.
주릴리는 수백만 장의 홈페이지 디자인 설계에서부터 광고 이메일, 모바일 앱까지 모두 개인화된 상품을 내놓는 데, 지난 해엔 사진과 고객의 행동을 엮은 ‘사진 프로젝트’를 개발했다. 특정한 상품 사진을 보고 고객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 지 감지하여 이를 알고리즘화하는 방식이다. 사진 프로젝트 역시 80여개의 세분화된 팀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며, 한 개 팀당 팀원은 거의 6명을 넘지 않는다. 서서 진행하는 회의 시간도 일명 ‘주릴리 타임’이라고 불리는 10분을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인터넷 트라이펙타(Internet Trifecta)
= Critical Mass of Content + Community + Commerce
KPCB의 유명한 애널리스트 메리 미커(Mary Meeker)가 작년에 내어 놓은 인터넷 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인터넷 서비스의 성공의 3요소를 인터넷 트라이펙타(Internet Trifecta)라고 지칭한 바 있다. 인터넷 트라이 펙타란, 성공적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콘텐츠(Content)와 커뮤니티(Community), 그리고 커머스(Commerce)가 적절히 결합되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 중에서도 소비자들의 콘텍스트 기반의 정보 교환과 연결성을 가져오는 커뮤니티의 역할이 가장 강조된다고 한다.
주릴리의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개인화 전략은 이와 같은 인터넷 트라이펙타의 3요소가 분류된 고객 집단에게 최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아이의 제품을 고르는 어머니의 취향만큼 까다로운 카테고리가 또 있을까? 인터넷 트라이펙타가 적용된 서비스의 경우는 특히 소비자가 상품 구매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버티컬 영역, 마케팅 용어를 빌리자면 소비자 고관여(Consumer Involvement) 상품 카테고리에 보다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보편적 가치 사슬을 끊어라 ( Collapsing The Value Chain)
김정운 교수가 ‘에디톨로지’라는 새로운 저서에서 밝혔듯이, 우리의 소통은 단순히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는 지점에서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얼마나 전문성 있게 살려내고 관심 있는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의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 창조보다 발굴 및 재해석이 더욱 중요해지며, 그와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은 지속적으로 네트워크화하며 세분되고 있다. 즉, 이커머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의 상품이나 콘텐츠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전문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공장 기반으로 제품 자체의 신뢰도와 더불어, 물류, 결제 서비스 등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며 원스톱 서비스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이커머스의 공룡 아마존의 보편적 가치 사슬에 익숙해져 있는 고객들의 불편한 지점(Pain Point)를 감지하고 이를 넘어서는 벨류 체인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네트워크화하고 세분되어 가는 소비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분석과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성을 겸비해야 한다.
올해 창업 5년 차를 맞이하는 주릴리는 지난해 6억 9500만 달러(약 7360억)의 매출을 이끌어 냈다. 올 연말까지 12억 달러(1조 2709억 원)의 매출을 예상한다고 한다. 빅데이터 단위에서부터 팀원 수, 회의 시간까지 작게 쪼개며 ‘작음’을 지향하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회사 문화가, 그 유명한 유니콘 클럽(조 단위 기업가치를 갖는 스타트업)의 비결이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갈수록 똑똑해지고, 네트워크화되며 세분화하는 고객층에 대응해 나아가는 주릴리의 명석한 전략들이 한국의 스타트업이 세계 시장 진출 과정에 좋은 레퍼런스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