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혁신은 민주적인가?
2015년 11월 11일

Healthcare-Interoperability
바로 지난 주말, 한국에서부터 친분이 있는 유수 대학병원의 의사 한 분이 필자가 있는 LA를 방문하여 즐거운 재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 만남이 더욱 즐거웠던 것은, 이 분께서 '의사'라는 한 분야의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기술과의 교접을 통해 '의학'이라는 높은 진입장벽을 가진 산업을 어떻게 혁신할 수 있을 것인가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산업에서의 혁신에 대한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의학산업에 대한 혁신에 관한 이 분과의 이야기 역시, 그 혁신의 당위성, 즉 '왜' 혁신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필자는 “기술은 본질적으로 민주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비석세스의 정현욱 대표가 올 초 훌륭히 소개한 '권력의 종말'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의 시대'에서의 권력은 정보(지식)의 소유에서 온다. 그리고 이 전 산업사회에서의 권력은 산업을 돌아가게 할 수 있는 '자본'에서, 그리고 그 이전의 수렵 및 농경 사회에서는 '생산능력'의 보유에서 비롯하여 형성되었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는 남이 갖지 않은 정보, 자본, 혹은 생산능력 등과 같은 원천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에 대한 접근권한을 가진 주체가 권력을 획득하여 왔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비대칭성(Asymmetry)'이라 부르는 것이며, 권력의 원천이 생산능력에서 자본, 그리고 정보로 변화하는 동안 새롭게 형성된 비대칭성은 항상 이전 세대에서의 권력의 원천을 일상재(Commodity)로 만들어 왔다. 이러한 일상재화(Commoditization)는, 자본을 가진 자가 더욱 많은 생산능력을 '고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필자의 벤처캐피털과 같은 '비대칭적 정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금융 산업들이 시장의 자본을 위탁받아 운용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종말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기술은 이제 ‘정보의 비대칭성’마저도 허물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단 몇 시간이면 특정 주제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의사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건강 상황에 대한, 혹은 특정 질병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습득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의사나 의료기관에 대한 평가 정보와 같이 폐쇄적인 정보 까지도 조금의 노력만으로 습득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합법화되지 않았지만, 일부 시장에서는 환자의 건강에 대한 전자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을 활용한 원격진료도 가능하며, 이는 환자가 적극적으로 의사를 선택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의사의 의학적 지식이 일상재가 되는 것이며, 이는 의사의 '비대칭적 지식'에 기반한 권력이 소멸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처럼 '태생적으로 민주적'인 성격의 기술이 혁신에 적용되었을 때에, 혁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필자의 이노링크캐피털(InnoLink Capital)이 최근 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기업 두 곳을 예로 들어보자. 두 곳 모두 아직 투자 심사 과정에 있기에 보다 자세히 공개할 수 없는 점을 양해바란다.

이스라엘에 위치한 A사는 인체 조직을 촬영하고 판별할 수 있는 독창적인 이미징(Imaging) 기법을 개발하였다. 이 기술이 기존 시장에 존재하던 기술에 비해 높은 수준의 이미징을 가능하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기술의 특징은, 기존의 기술과 유사한 수준의 이미징을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 촬영장치의 제조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에 있으며, 아울러 그와 같은 일회용 촬영장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 축적을 통해 기존에 임상 전문의에 의해 일일히 수집, 판별되던 조직의 이상 유무를 기존과 유사한 수준의 정확도로 촬영 즉시 판별이 가능하게 해 준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A사는 이 기술을 활용, 그 첫 번째 제품으로 자궁경부암 판별 기기를 개발하였다.

자, 미국에 사는 로라(Laura)라는 여성이 있다고 가정하자. 도시에서 300km 정도 떨어진 시골에서 두 아이를 두고 맞벌이를 하고 있는 평범한 중년 여성인 로라는 언제부터인가 월경 시 이상한 징후를 느끼고 병원에 들러 진찰을 받아야 하겠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대형 병원이 있는 도시까지 왕복 시간만 8 시간 넘게 걸리는데다, 검진과 진찰까지 합치면 하루로는 부족할 수 있기에 로라는 미처 엄두를 내지 못한다. 게다가 수천 달러에 달하는 검진 비용 역시 맞벌이를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로라에게는 커다란 부담이다. 검진 결과 자궁경부암 양성이라면 치료를 받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만약 음성이라면 며칠의 시간과 우리 돈으로 수백만 원에 달하는 검진 비용이 그야말로 그냥 날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로라가 사는 시골 마을의 주치의가 A사의 진단기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로라는 단 몇 십 달러의 비용으로 간단히 검진을 끝낼 수 있을 것이고, 만의 하나 기기가 로라가 양성인 것으로 판별하는 경우에만 그녀는 보다 정확한 검진 및 치료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로라를 미국에 사는 평범한 가정 주부가 아니라, 중국의 오지를 비롯한 제 3 세계의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여성으로 확장하여 보자. 우리는 A사의 가능성을 이처럼 기존의 정밀한 검진에 대한 접근성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여성인구에서 보고 있다. 의료서비스를 전 인류를 대상으로 민주화하는 것이다!

전략적 관점에서 혁신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구매고객(Non-consuming Customer)', 혹은 '비고객(Non-consumer)'을 고객으로 만듦으로써 이루어진다. *기존의 관련 기고는 여기여기, 그리고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국에 있던, 아니면 제 3 세계 국가에 있던) 로라는, 분명한 니즈를 가지고 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고객이 될 수 없었던 비구매고객, 혹은 비고객이며, 이 때 A사는 그들을 위해 의료서비스를 민주화하고, 그들을 위한 시장을 훌륭히 창조함으로써 시장을 혁신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기업 한 곳의 예를 들어보자.

“눈은 마음의 창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실제로 과학적, 의학적 증거들에 의해 사실임이 드러나고 있다. fMRI를 통해 우리의 뇌가 특정 사고를 하는 것에 따라 각기 뇌의 각기 다른 부분이 활성화되는 것은 이미 밝혀져 있다. 그러나 최근 이처럼 뇌의 각기 다른 부분들이 활성화될 때 우리의 눈에 특정 신호들이 표현됨이 최근의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즉 눈을 통해 우리는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곳 로스엔젤레스에 기반을 둔 B사는, 그와 같은 눈의 특정 신호를 포착, 판독하는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이노링크캐피털의 투자를 통해 그 원천기술이 고도화 된다면, B사는 컴퓨팅 인터페이스의 완전히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B사의 인터페이스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스마트기기에 연동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모든 기능을 생각만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 B사의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엔터테인먼트나 게임 분야, 그리고 그 외의 교육, 군사 등 모든 컴퓨팅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 가져올 혁신을 생각해 보자. 아울러, 건강의 이상이 있을 때, 우리가 인지하기 이전에 뇌에서 발생하는 자극들을 미리 측정하여 헬스케어 시장을 완전히 새롭게 혁신할 수도 있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때, B사의 그와 같은 혁신이 일반적으로 컴퓨팅에 접근할 수 있는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기존에는 신체적, 건강적, 혹은 정신적 이유로 인해 조작능력이나 입력능력, 혹은 소통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던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우리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즉 B사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통해 우월한 가치를 제공하는 동시에, A사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비고객들로부터 훌륭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혁신은 분명 '새로움'과 '우월함'을 기저로 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둘은 혁신이 가지는 중요한 방향성들의 일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새롭고 우월한 것이 혁신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는, 기존에 비해 아무리 우월한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하더라 하더라도, 그것이 기존의 시장과 동일한 시장의 연장선 상에 놓이는 것이라면 혁신적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 배의 성능 향상을 이루어냈음에도 그 비용이 그와 비례하여 증가함으로써 기존과 동일한 세그멘트를 여전히 타게팅할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혁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혁신에 대한 이전 기고에서 다루었던 지메일은 기존의 무료 웹메일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기능 및 저장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이유로 분명 이메일을 사용하던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용(B2B) 서비스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메일이 그처럼 민주적이기를 포기했다면(예를들어, 모든 인터넷 사용자들이 지메일이 아니면 비용을 지불했어야 훌륭한 웹메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처럼 거의 모든 인터넷 사용자가 지메일을 사용하고 있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혁신이 될 수도 없었을 것임을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혁신적이 되기 위해서는, 특히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에서의 혁신은, '기술'이 가지는 민주적 속성을 따라 반드시 민주적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때 민주적이라 함은 기존의 비대칭적인 것을 해소함으로서 비고객, 혹은 비구매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임을 우리는 반드시 이해하여야만 할 것이다.

이제 당신은 스스로가 이루려 하는 혁신에 한 가지 질문을 더 하고 그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당신의 혁신은 민주적인가?”

이은세와의 직접 소통은 그의 개인 블로그인 http://eun5e.com 을 통해 가능하다.

이미지 출처: cdn.marklogic

Eunse Lee is a career founder and now is the founder and Managing Partner at 541 Ventures - a Los Angeles-based VC that invests in frontier tech companies predominantly in their seed and pre-seed stage. Before founding 541, Eunse has served as the Managing Director at Techstars Korea - the first- ever Techstars’ accelerator for the thriving Korea’s ecosystem, after co-founding two prior LA-based VC firms. Having his root in the strategy world, he empowers deeply technical startups to start an industry and strives to be a catalytic partner for them in their journey to 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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