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개그콘서트>, <불후의 명곡>,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미국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 베트남 하노이, 일본 도쿄, 홍콩, 칠레까지 전 세계 20여만 명의 음악 팬들을 사로잡은 <K팝 월드 투어>를 진두지휘한 전진국(現 KBS편성 센터장)의 손길을 거쳐 간 콘텐츠들이라는 점이다. <개그 콘서트>의 서수민 PD는 전진국을 가리켜 "그는 내가 아는 가장 가슴 따뜻한 크리에이터다"라고 평한 바 있으며, 개그맨 신동엽은 "시청자가 화면을 통해 나를 바라볼 때, 내 시선은 이 사람을 향한다"며, 유재석, 싸이, 이수만, 양현석, 박진영 등과 함께 대한민국 콘텐츠 비즈니스의 전성기를 주도하고 있는 전진국의 도전에 변함없는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전진국은 최근 <콘텐츠로 세상을 지배하라>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 "콘텐츠 플랫포머(Contents Platformer)"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콘텐츠 플랫포머는 최고의 콘텐츠와 최적의 플랫폼은 하나의 원리로 작동된다고 믿으며,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지휘자인 동시에 이를 어떤 플랫폼에 장착할 것인지 전략적으로 고민하는 마에스트로 Maestro라고 표현했다. 전진국은 "경영진이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과감히 치우는 대신 좋은 스토리로 말한다면 아주 새로운 차원에서 청중을 장악할 수 있다."라며,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완성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생각을 지휘하는 5가지 단계'를 제안했다.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라’도 한낮의 무료함 속에서 만난 한 여인의 짧은 환영과 그에 대한 단편적 생각에서 출발하여 완성해 내었다고 한다.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예민한 촉수로 1. 아이디어를 발견 2. 이를 생각으로 진화 3.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콘텐츠로 성장 4. 최적의 플랫폼과의 조합 5. 감동과 진정성을 창출하는 과정, 즉 "생각을 지휘하는 과정"은, 우리 스타트업에게도 꼭 필요한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본 기사에서는, 전진국이 제안하는 ‘생각을 지휘하는 5가지 단계(경험화>체계화>제작화>편집화>진화화)’의 흐름과 핵심 사항들에 대해 살펴보며, 현재 우리가 만들고 있는 판(플랫폼)과 놀이(콘텐츠)를 재점검하고, 이를 진화시켜 나아가는 계기로 만들어 보자.
1. 경험화와 체계화 (의외성을 포착하여 생각을 건져 올리다.)
우리는 매일 사용자와 '예측 가능함과의 전투'를 벌인다. 따라서 우리의 비즈니스는 대중이 예측하는 생각 밖의 시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문제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우리보다 소비하는 대중의 상상력이 더욱 풍부한 데에 있다. 대중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반전의 능력, 그 의외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창의성의 대가 이어령 교수는 <우물을 파는 사람>을 통해 "창조적 발상은 아주 간단하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고 이야기 한다. 의외성을 건져내는 과정과 일맥상통하는 "낯설게 만들기"는 <살인의 추억>과 <괴물>을 연출한 바 있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라는 영화의 시작점이 되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라는 배우가 짊어지고 온 이미지는 한국의 전통적인 어머니상이었는 데, 난 드라마와 토크쇼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의외의, 아주 4차원적인 면을 느낄 수 있었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히스테리가 폭발한 느낌이랄까. 몹시 불안하고 강박증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고, 거기에 매혹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런 게 김혜자라는 배우의 굳어진 중심 이미지 속에서 틈새 사이로 보이니까 더 날카롭게 보였던 것 같다. 그것을 궁금해하고 매력을 느껴서 함께 영화를 하고 싶었다." 라며, <마더>라는 영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밝힌 바 있다.
<마더>를 통해 보면 김혜자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국민엄마'가 아니라 아들을 위해서는 살인까지 방조할 정도로 집착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어쩌면, 대중은 그녀의 이와 같은 의외성에 신선함을 느끼며, 모성애에 대한 진정성을 나누고자 했던 것일 수 있으며, 그와 같은 수요를 봉준호라는 감독이 파악해 낸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대중의 잠재적 수요에 기반을 둔 의외성이 생각을 다음 단계로 진화시켜 나아가기 위한 첫 번째 실마리임을 우리 모두 기억하자.
이처럼 건져 올린 생각을 정제하여, 아이디어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체계화의 과정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체계화 과정에서 전진국이 강조하는 포인트는 오래된 매뉴얼을 버리라는 점이다. 어차피 지상에 완벽히 새로운 것은 있을 수 없으니, 과거의 흔적을 지워내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과정에서 전진국은 구차한 장식은 버려야 한다며, 대중을 논리적으로 가르치려 들면 복잡해지기만 한다는 중요한 통찰을 던진다.
영화<7번 방의 선물>은 어린아이가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애드벌룬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등 개연성이 부족한 스토리텔링을 보인다. 그러나 이환경 감독은 관객이 원하는 것은 가슴 따듯한 판타지라고 판단하고 이를 뚝심 있게 밀어붙여 1,000만 영화 클럽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우리가 논리에 집착하다 보면 내용보다는 장식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아이디어에 확신이 서지 않으면 고생한 '티'와 노력한 '척'만 내세우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디오의 공동 설립자 중 한 명인 마이크 너톨 (Mike Nuttall)은 "좋은 디자인에는 개발에 들어간 노력이 보이지 말아야 한다"며, 장식은 본질을 감추는 법이라는 스티브 잡스의 단순함에 대한 통찰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중의 눈은 현란한 장식에 현혹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어설픈 논리로 그들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감성적으로 대중의 품에 안기는 편이 바람직하다.
2. 제작화와 편집화 (수많은 제약 속에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간다.)
야구 감독 김성근은 "데이터는 반쪽일 뿐이다. 나머지 반은 현장에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제작 과정은 생각을 지휘하는 경로에서 가장 두려운 단계이지만, 오히려 가장 많은 대안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는 반전의 시간일 수 있다.
2007년 8월에 시작한 <1박 2일>은 첫 촬영부터 출연자들과 스태프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에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저조했다고 한다. 프로그램의 존폐를 놓고 노심초사 고민하던 시절, 결정적 한방이 4회부터 시작되었다. 기차여행을 떠나며 '우동 먹기 게임'이 진행되었는데, 김종민이 지는 바람에 낙오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내기에서 지면 낙오된다는 내용은 전혀 약속된 것이 아니었지만, 어떻게 주인공을 프로그램 초반부에서 빼버릴 수 있었을까? 출연자들 스스로 방송과 게임에 심취하여, 그런 규칙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예정대로 여행지에 가는 다섯 멤버,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는 김종민. 그때 부터 시청자들은 결말을 알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 매료되며 <1박 2일>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상징이 되었고, 시청률 역시 가파르게 상승했다고 한다.
전 세계의 186개국 1만 6천 개의 도시를 연결하고 약 9만 명의 회원 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10억 달러 정도의 회사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숙박 공유 업체인 애어비앤비 역시 창업 초기에는 고질적인 재정난에 시달려야 했다. 창업자들은 투자금, 신용카드, 대출, 저축한 돈 모두 쏟아 부어도, 수익을 낼만한 구석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과감히 미국의 대통령 선거의 열기를 활용할 수 있는 시리얼 제작에 나선다. 학교의 지인에게 시리얼 상자의 디자인을 부탁하고, ‘오바마 O’s (변화의 아침 식사)와 캡틴 매케인(먹을 때마다 독불장군의 맛)’이라고 새겼다고 한다. 그런 뒤 부엌에서 직접 시리얼 상자를 접고, 시리얼을 채운 뒤 온라인으로 개당 40달러에 판매를 시작한다. CNN은 이 이야기를 선거 시즌의 재미난 뉴스로 소개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얼은 매진 되며, 2만 달러의 이익을 얻게 된다. 이후, 창업자들은 여유자금을 바탕으로 지속해서 고객을 늘릴 수 있었으며, 투자자들은 그들의 기지에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아 외부 투자도 유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소파와 에어매트리스 숙박을 알선해주는 온라인 서비스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리얼을 판다? 스타트업의 Pivot이라 거창하게 이름 붙이기보다는, 반짝이는 기지이며, 대담함 혹은 불굴의 의지라고 볼 수 있겠다. 기회란, 특히 곤란한 시기에 다가오기며, 또한 모호하고 불분명한 모습으로 굳게 잠긴 우리의 문을 노크하곤 한다.
2011년 3월, SM의 이수만 회장은 고민에 빠졌다. 도쿄에서 보아를 비롯해 소녀시대, 동방신기, 슈퍼 주니어, 샤이니 등의 소속가수들을 모아 <SM타운>이라는 초유의 대규모 콘서트를 준비하였는데, 일본에 최악의 쓰나미가 닥친 것이다. 콘서트는 취소되고, 만만치 않는 투자 비용이 모두 날아갈 판이었다. 모두가 닥쳐온 위기에 허둥대면서, 어떻게 하면 손해 비용을 최소로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할 때 이수만 회장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우리의 무대는 도쿄 말고도 많지 않을까?' 마침 프랑스대사관과 프랑스문화원에서 <한국의 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장소는 프랑스 파리. 상황이 급변하자, SM은 아예 이 행사를 자신이 주최하겠다고 나섰다. 그러고는 도쿄 콘서트보다 더 크고 강렬한 무대를 꾸몄다. 바로 이 행사가 2011년 유럽을 뜨겁게 달구었던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의 시작이 된다. 프랑스에서 열린 문은 유럽을 거쳐, 미국을 넘어 다시 상하이, 도쿄 등 아시아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위험을 기회로 감지해 내며, 확신을 얻고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은 콘텐츠의 제작 단계에서 필요할 뿐 아니라, 스타트업으로서 예측할 수 없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겠다.
3. 진화화 (인과론에서 벗어나면 마법의 시간이 펼쳐진다.)
<1박 2일>이 야생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라는 콘셉트에 기반을 두어, 월요일 회사 출근을 앞두고 몸과 마음을 비우는 시간대인 일요일 오후에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남성을 대상으로 기획되어, 그 포지셔닝을 확실히 하며, 시청률 확보에 성공하자, 영역의 확장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50대 이상의 대중들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지역 주민과의 연대의 과정을 담아내었고, 20대 이하의 시청자를 배려하여,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평균 이하로 새롭게 구성해 내었다. 또한 '백두산 특집'과 '이주 노동자 특집' '여배우 특집'을 통해 여성 시청자와 젊은 남성 시청자들을 배려하며, 시청자층은 더욱 넓어졌고, 국민 예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스타트업들 역시 유의미한 크리티컬 매스 (Critical Mass)를 구축까지는, 지역 및 수요를 적절히 세분화하여, 특정 사용자 편의 수요가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인벤토리 inventory의 설계할 필요가 있다. 초기 런칭시에는 지역, 제품, 서비스의 타입, 시간 등의 변수를 최소화하여, 크리티컬 매스를 극대화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크리티컬 매스 구축 후에는, 적어도 첫해에는 베타 서비스를 유지하며, 우리의 아이디어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 요소들 뿐 아니라, 서비스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당신이 제안하는 서비스를 특별하게 하는 세부사항들에 대해 구석구석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의 규모를 이룬 상황이더라도, 작은 회사의 단계에서 우리의 서비스가 직원들 혹은 사용자들에게 작용했던 최적의 요소들을 기억하고 이를 조직 내에 적절히 용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야 하며, 유저 커뮤니티의 조언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관심사를 수집하여, 우리의 결정에 참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까지 콘텐츠 플랫포머로서,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대중과 교감하고, 함께 진화할 수 있는 콘텐츠이자 플랫폼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생각을 지휘하는 5가지 단계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전진국은 "세상의 모든 콘텐츠 플랫포머는 위대하다. 하지만 독자와 시청자들보다 위대할 수는 없다"며, 콘텐츠를 제작하는 우리보다 누리는 대중이 더 위대한 대상임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축학 개론>, <공동경비구역 JSA>, <접속> 등의 영화들을 양산해낸 영화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역시 "전문가들이 아무리 회의하고 조사해서 뭔가를 만들어도 대중은 항상 '하지만 너희는 이걸 몰랐지.'하며 하나를 더 알려준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대중이, 고객이 갖는 생각의 변화와 시대적 흐름 등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읽어 낼 의무를 지니고 살아간다. 이와 같은 대중의 수요가 하나의 흐름으로 승화된 트렌드에 대한 분석은 생각을 지휘하는 과정에서 분명 유의미한 일이겠지만, 트렌드에 휩쓸려 가는 것은 뒤늦은 일에 불과하다. 자신만의 브랜드의 고유성에 따라, 대중의 수요에 대해 반 보 앞서 나아가는 자신만의 가치가 필요하다.
자, 이제 당신의 차례이다. 당신의 작은 단상이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콘텐츠와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마법의 시간을 펼쳐 보자. 그것은 콘텐츠를 수용하는 대중의 삶에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제작하는 우리의 인생에도 하나의 역사를 만드는 과정이기에 더욱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