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스타트업 관람가 43. 트레인스포팅 – 회전하지 않기
  ·  2016년 12월 30일

  스타트업 분야의 철학서 《린 스타트업》 표지에는 원 하나가 그려져 있습니다. 처음의 원 위로 다시 수많은 원을 덧대 완성한 하나의 원입니다. 언젠가 출발했을 선은 수없이 돌고 돌아 확고한 하나의 동그라미, 혹은 굳은 의지를 남겨놓고 결승 깃발로 퇴장합니다. 이 표지는 책이 말하려는 바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실행·측정·학습’의 회전을 강조한 에릭 리스(Eric Ries)의 철학이 담겨있죠. ‘흰 바탕의 원 하나’로 표현한 이미지는 마치 그가 강조한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처럼 경쾌하고 경제적입니다. 원의 완성을 위해…

기업가(起業家)의 신조(信條) – Entrepreneur’s Credo
  ·  2016년 12월 29일

대영제국으로부터 ― 정확히는 ’13 식민지(Thirteen Colonies)’라 불리던 미 동부 13개 주로서 ― 미국이 독립을 선언하기 직전인 1776년 1월,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 거주하던 문학가이자 철학자, 정치가인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은 짧은 논집 《상식》(Common Sense)을 출간한다. 독립의 정당성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관점에서 강렬하게 설파하는 페인의 《상식》은 ― 인구 대비 판매 부수를 기준으로 ― 지금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널리 읽힌 책일 정도로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수많은 미국인의 인식 속에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당위성의 토대를 형성한다. ‘기업가(起業家)의 신조(信條)’로 번역될 〈Entrepreneur’s…

스타트업 관람가 42. 메이즈 러너 – PM은 대체 어디 갔는가
  ·  2016년 12월 23일

첫날이다, 신참. 선임개발자 갤리의 안내로 자리에 앉은 토마스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파티션으로 둘러싸인 사무공간이 마치 큰 벽이 에워싼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개발팀에 온 걸 환영한다”며 동료들이 건네는 말도 토마스의 귀엔 들리지 않았습니다. 제.. 제 이름은.. 그래 토마스, 토마스입니다. 토마스는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둥글게 모인 동료들 얼굴을 살펴보았습니다. 개발팀엔 전부 남자들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인상은 다들 좋아 보였습니다. 토마스는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근심이 깊어졌습니다. 긴장해서 그런 걸까요. 선임들이…

스타트업 관람가 41. 인택토 – 우리 스타트업의 운을 시험해볼까?
  ·  2016년 12월 16일

깊은 숲에 웬 사람들이 모여 달리고 있습니다. 빽빽이 나무가 우거진 숲속입니다. 사람들은 두꺼운 천으로 눈을 가리고, 양손을 등 뒤에 묶은 채 무방비로 돌진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누군가 나무에 얼굴을 박고 튕겨 나뒹굽니다. 전력으로 달리던 속도의 힘까지 고스란히 돌아와 코뼈가 박살이 났습니다. 차례차례 둔탁한 타격음이, 어김없이 뒤따르는 비명이 서늘한 숲의 공기 속에 울려 퍼집니다. 그런데 이 중의 소수는 마치 텅 빈 운동장을 달리듯 거침없이 질주합니다. 큰 나무들이 야무지게 우거진 숲이 분명한데 이들은 나무에 옷깃도 스치지 않습니다. 영화…

스타트업 관람가 40. 미스트 – 내가 선택하기, 그리고 증명하기
  ·  2016년 12월 09일

스티븐 킹 원작, 프랭크 다라본트 연출. 익숙한 조합이죠. 《미스트》는 《쇼생크 탈출》과 《그린마일》에 이어 다라본트 감독의 3번째 스티븐 킹 원작 영화입니다. 아니, 사실은 4번째입니다. 단편이 하나 더 있거든요. 다라본트 감독의 단편 데뷔작 《방안의 여자》 역시 스티븐 킹 단편소설이 원작이었습니다. 영화 좋아하는 스티븐 킹은 일찍이 “영화학도들에겐 저작권료를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대신 영화가 완성되면 무조건 자기한테 보내줘야 한다는 조항을 달았습니다. 다라본트 감독은 이 지원 혜택을 누구보다 제대로 활용한 학생이었습니다. 《방안의 여자》는 스티븐 킹도…

스타트업 관람가 39. 포레스트 검프 – 그들 각자의 달리기
  ·  2016년 12월 02일

포레스트 검프 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에 팟캐스트를 들으며 동네 공원을 달리는 시간이 저의 하루 중 가장 마음 편한 시간입니다. 달리기는 묘한 운동입니다. 몸속에 새 숨을 넣고 다시 뱉기를 반복하며 두 발을 차례로 내딛는 이 혼자만의 시간은, 어쩌면 육체보다 정신을 위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고민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그렇게들 달리기를 하나 봅니다. 영화 속에서도 그랬습니다. 감정 질환을 앓고 있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팻(브래들리 쿠퍼 분)은 쓰레기 봉지를 뒤집어쓰고 달렸습니다….

스타트업 관람가 38. 비긴 어게인 – 이 소음까지 다 음악이 될 거야
  ·  2016년 11월 25일

‘몰락한 스타 프로듀서, 배신당한 뮤지션. 망가진 그들이 음악을 통해 다시 일어선다.’ 아니 이 뻔한 영화를 이렇게 상쾌하게 찍을 수 있나요? 《비긴 어게인》은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싱그럽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그래도 《원스》가 더 낫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존 카니 감독의 음악 영화 3부작 중 이 영화가 제일 좋습니다. 왜 볼 때마다 점점 더 좋아지는 걸까요. 귀가 호강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이제는 〈로스트 스타〉(Lost Stars)를 따라부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스타트업 관람가 37. 도둑들 – 마카오박은 형편없는 PM이었다
  ·  2016년 11월 18일

<도둑들>은 국내 영화계 멀티캐스팅 유행의 선명한 출발선이었죠. 김윤석, 이정재, 김혜수, 임달화 등 국내와 홍콩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한 팀으로서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는 이 도둑들 사이의 밀당을 비추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한국팀은 기존 팀원 4명(뽀빠이, 예니콜, 잠파노, 씹던껌)에 새 팀원 마카오박과 팹시가 합류해 6명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홍콩팀 넷(챈, 앤드루, 줄리, 조니)을 더해 총 10명의 도둑들이 팀을 이뤘습니다. 이 팀을 스타트업에 비춰보니 재밌습니다. 캐릭터별 역할이 스타트업의 구성과 꽤 닮았네요. 앞에서 줄을 타는 예니콜은…

스타트업 관람가 36. 나는 전설이다 – 팀으로서 고독하기
  ·  2016년 11월 11일

스타트업을 하는 데 있어 물리적인 어려움보다 더 난감한 허들은 외로움인 것 같습니다. 고독한 시간은 어김없이 옵니다. 스타트업을 하면 어쨌든 개인으로서 뭔가를 이뤄내야 합니다. 내 일은 나밖에 할 수 없고, 나밖에 모릅니다. 무리가 주는 안락함에서 나와 혼자 버는 자의 불안함, 고립감, 고독. 그런 외로움을 스타트업들은 한 번쯤 느껴보았을 것 같습니다. 내 친구들이 사는 일반적인 삶의 세계와는 다른, 그 캄캄한 공간 속에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이 덮칠 때가 있죠. 그래서 우리는 연애를 해야 합…..

스타트업 관람가 35. 설국열차 – 대한민국이라는 열차에서 문 열기
  ·  2016년 11월 04일

어처구니없는 일로 국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최순실, 최태민, 탄핵, 하야, 시국선언, 특검… 실시간 검색어만 봐도 사람들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의 정치사를 모두 살펴보더라도 이처럼 황당한 일이 또 있을까요? 장르나 강도(强度) 면에서 상상을 초월하긴 했지만, 사실 언젠가 터질 일이었다는 느낌도 듭니다. 권력을 움켜쥔 자들의 부정부패, 그 악취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죠. 극장에만 가봐도 그랬습니다.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내부자들>, <베테랑>, <터널> 등 크게 흥행한 한국영화들 가운데엔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분노한…

‘기업가경제(起業家經濟)’가 필요하다
  ·  2016년 10월 27일

‘헬조선’이라는 말로 ― 여러 이유로 정말 싫어하는 단어지만 ― 뭉뚱그려 표현되는, 우리 국민을 힘들게 하는 문제점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개인의 ‘삶의 질’이 말도 못할 정도로 훼손당하고 있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삶의 질이 그리 희생되어야만 하는 이유의 중심에는, 정작 개인의 소득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가 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2 년 만에 한국에 들어와 추석을 지내면서 경험했던 치솟은 물가는 그야말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암울한 것은, 그처럼…

스타트업 관람가 34. 아이언맨 – 개발자와 치킨집은 어울리지 않는다
  ·  2016년 10월 21일

마블의 여러 히어로 무비 중에서도 아이언맨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요즘 분위기를 보니 ‘아이언맨4’는 나올 것 같습니다! 사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이언맨을 그만 찍고 싶어해서 전부터 고사해왔는데요. 최근 인터뷰에서 “인피니트 워 파트2 이후 한 편을 더 찍을 수 있다”는 반가운 얘기를 했다고 하네요. 이게 아이언맨4가 될 확률이 커보입니다. 항간에는 그래서 아이언맨4가 토니 스타크 뒤를 이을 새 아이언맨에게 멘토 역할을 하며 일종의 ‘아이언맨 인수인계’를 하는 내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세대…

조용히 일하기
  ·  2016년 10월 20일

Editor’s note : 배기홍 대표는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기반으로 초기 벤처 기업들을 발굴, 조언 및 투자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스트롱 벤처스의 공동대표입니다. 또한, 창업가 커뮤니티의 베스트셀러 도서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2’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블로그 스타트업 바이블을 운영하고 있으며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스타트업 생태에 대한 인사이트있는 견지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스타트업과 창업자들을 위한 진솔하고 심도있는 조언을 전하고 있습니다. (원문보기) 얼마 전에 다른 투자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투자한 회사 이야기를 잠깐 했다. 이 분이 그 회사 이름을 듣자마자, “어, 그…

스타트업 관람가 33. 박쥐 – 직장인의 미장센
  ·  2016년 10월 14일

흰 벽 위에서 검은 그림자가 이따금 흔들립니다. 아마 창밖에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그 새하얀 벽에 문이 있습니다. 상현(송강호)이 문을 열고 들어서며, 그렇게 영화가 시작됩니다. 검은 사제복을 입고 있네요. <박쥐>는 세 가지 색의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하얀 빛과 어둠의 검정으로 묘사된 이중성의 경계에 있는 건 물론 새빨간 욕망이겠습니다. 광기의 화가가 이중성이라는 주제를 놓고 온통 희고, 검고, 또 새빨갛게 칠한 유화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빛과 그림자의 얽힘을 지나, 다음…

[핀다와 금융 기초체력 다지기] 부채, 피할 수 없다면 관리하자
  ·  2016년 10월 11일

올해 2분기 기준으로 가계부채(가계대출 + 판매신용) 규모가 1,257조 원에 달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예전 핀다에서 진행한 설문조사를 떠올려보니 항목들 가운데 대출에 대한 이미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대출은 곧 빚을 지는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많았습니다. 대출, 안 받을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내 월급을 빼고는 모두 올라버린 요즘 같은 세상에서 대출의 부정적 이미지만 떠올리며 회피하기보다는 우리 자산의 일부로 생각하고 현명하게 관리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대출을 관리하면 좋을지 알아볼까요? 1….

데자뷔: 지진이 선사한 익숙함
  ·  2016년 10월 10일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는 친구 덕에 지난달 중순 발생한 지진 상황을 생생히 전해 들을 수 있었다.“눈앞에서 흔들거리니 무섭고 비현실적이었어.” 집에 혼자 있던 그는 선반의 물건들이 떨어지는 동시에 강한 진동을 느끼고는 급히 뛰어나갔다. 그는 아파트 8층에서 계단으로 뛰어 내려왔고 곧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몇 분 뒤 ‘긴급재난문자’라는 것을 받았는데, 내용은 더욱 황당했다. 지진 발생 후 10분이나 지나서야 발송된 문자의 내용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어디서 어떻게 행동해야 안전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고 그냥 ‘안전에…

스타트업 관람가 32. <디스트릭트 9> 스타트업 아이템 좀 뺏지 마라
  ·  2016년 10월 07일

아니, 페이크 다큐 형태의 외계인 영화라니. 2009년 작 <디스트릭트 9>은 형식부터 내용까지 모든 게 새롭습니다. “외계인 나오는 SF영화는 어떠해야 한다”는 문법을 전혀 따르지 않죠. 닐 블롬캠프 감독은 스스로를 믿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아쉽게도 이후 <엘리시움>과 <채피>라는 망작 2연타를 치며 팬들을 답답하게 하긴 했지만, 이 영화를 선보였을 당시의 블롬캠프는 그야말로 찬란했습니다. 독립영화를 찍는 건 스타트업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전부터 해왔는데요. 배고프게 찍는 과정이나 연출·시나리오·촬영 등 사람을 모아 팀 빌딩을 하는 방식,…

스타트업 관람가 31.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달콤한 잉생
  ·  2016년 09월 30일

달랑 80만 원으로 1년간 유럽 전역을 여행하는 일은, 가능할까요? 말 안 되는 이야기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서플러스(Surplus)라 지은 자타공인 잉여들이 해냈습니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이들의 대책 없이 반짝이는 유럽 여행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스타트업 성장기와도 다름없네요.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되니 더욱 애정이 가는 영화였습니다. 나에겐 전혀 무모해 보이지 않는 사업아이템 여행자금은 원래 다음 학기 등록금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방학 내내 알바를 했는데도 등록금은 모이지 않았고, 영화과 동기들은…

스타트업 관람가 30. <터널> 부모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아들딸은 안전합니다
  ·  2016년 09월 23일

우리가 딛고 선 땅이 흔들렸습니다. 그 위에서 사는 사람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재난 대처능력도 흔들렸습니다. 재작년 세월호 사태,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다시 또 지진 사태로 우리 정부가 얼마나 재난 대처능력이 없는지 드러내며 실망을 안겨주네요. 기대도 안 했지만 이렇게까지 실망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당혹스럽습니다. 이 시점에서 보기에 <터널>은 섬뜩하기까지 한 영화죠. 재난을 둘러싼 묘사가 너무 생생한 나머지 자꾸만 현실에 비춰보게 되는 탓입니다. 주인공 정수(하정우)는 출장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터널이 무너지며…

반드시 피해야 할 네 가지 실패의 공통분모
  ·  2016년 09월 12일

반드시 피해야 할 네 가지 실패의 공통분모 만약 누군가 “성공하는 길을 알려주겠다”며 조언을 한다면 반드시 무시하기를 바란다. 그런 비법은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오히려 “이렇게 했더니 망했다”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공을 위한 왕도는 없지만, 사업을 실패로 이끄는 실수는 오히려 명확하고, 따라서 그런 실수를 피해 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끈질기게 살아남은 또 하루가 ― 비록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