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머니, 비트코인 이야기
(비트코인이 가져올 파괴적혁신과 금융의 미래)
# 3 비트코인에 대한 오해 혹은 우려들
앞서 비트코인이 가져올 혁신에 대한 열광에 가까운 반응들과 어떻게 그런 혁신이 가능했는 지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여전히 낯설기만한 존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롭고 대담한 시도들은 언제나 의혹과 경계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대서양을 횡단에 성공했던 최초의 철제증기선 그레이트 브리튼호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 거대한 쇳덩이가 어떻게 바다에 떠서 저 멀리 신대륙까지 가겠냐며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최초의 광폭 열차며 여객기 등이 등장했을 때도 사정은 흡사했다. 물론 세간의 우려가 들어맞아 좌초된 시도 또한 많다. 하지만 대개는 그 실패를 넘어서는 또 다른 실험이 등장하며 진보해 온 것이 산업혁명의 역사였다.
비트코인 역시 대서양을 횡단하는 그레이트 브리튼호의 등장만큼이나 많은 의혹과 우려에 휩싸여 있는 듯 하다. 지난 4년간 지속돼 온 비트코인의 실험은 적어도 이 거함이 띄우자마자 대서양에 가라앉는 실패작은 아니라는 걸 입증했다. 하지만 여전히 순항을 낙관하기엔 힘든 구석이 많다. 비트코인을 향해 쏟아졌던 의혹들과 우려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단지 기우에 불과한 것들인지 아니면 정말로 심각한 문제들인지 살펴보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1845년 등장해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첫번째 철제증기선 그레이트 브리튼호. 오늘날 항공모함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불과 200년 전만해도 저 거대한 쇳덩어리가 과연 바다에 뜰 수나 있을 지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1. 비트코인은 (다른 화폐와 달리) 내재적/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화폐의 가장 큰 역할은 ‘교환의 매개수단(a medium of exchange)’ 이다. 일단 비트코인이 이 역할에 최적화된 화폐라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는 듯 하다. 문제는 매개수단이라는 본질적 역할 외에 화폐 자체가 가치를 지니는가, 그게 중요한가를 두고 논란이 빚어져 왔다. 비트코인 비판자들은 금, 은 같은 금속화폐와 비교하며 비트코인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에 화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비판은 그러나 비트코인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달러나 원화 같은 명목화폐(fiat money)들도 그 자체로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뿐, 어떠한 내재적 가치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중지를 선언한 이후로 우리가 쓰고 있는 화폐와 금의 연관성은 역사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비판자들이 목소리를 낮추는 건 아니다. 명목화폐가 내재적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건 맞지만,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 국가가 그것을 보증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비트코인은 어떠한 국가의 보증도 받지 못하는 화폐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여기에 대해 비트코인 옹호자들은 크게 두 가지 정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째, 금융의 역사와 지금의 상황만 보더라도 국가의 보증이 그리 믿을만한 게 못 된다는 것. 둘째, 비트코인이 제공하는 편리함과 신속성 그리고 그로 인한 효율이 바로 비트코인의 내재적 가치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사람들이 편리함에 매료돼 더 많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비트코인의 가치와 효익은 더 크게 증대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기존 경제학계에서도 화폐의 내재적 가치나 국가의 보증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가 힘을 얻어온 바 있다. 교환의 매개수단으로서의 기능성 그리고 사람들의 신뢰만 있으면 무엇이든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계적인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학 교수 등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지만, 돈이야 말로 정말 숫자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게 단지 디지털 시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화폐의 원형적 형태를 기원전 2,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용됐던 진흙판(clay tablet)에서 찾았다. 그가 보기에 “서구인들이 관념적으로 돈을 금속과 동일시했던 것은 역사적 우연에 불과했다.” 금속보다 훨씬 먼저 쓰였던 이 진흙판에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농작물과 모직 그리고 은과 같은 금속의 거래 기록을 기입했다. 발행자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가 이 태블릿의 소유자에게 언제까지 무엇을 얼마나 지급해야 하는 지가 모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돈은 금속이 아니다. 돈은 (그게 어떤 것이든) 무언가에 새겨진 신뢰다." ]
2. 비트코인은 불법적인 화폐다?
비트코인이 엄청난 관심을 끌기 시작한 올해 초, 가장 많은 의혹 제기가 이뤄진 게 바로 비트코인의 불법성이었다. 비트코인의 불법성을 주장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화폐의 발행과 관리는 국가가 담당한다는 법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가 발행하지 않은 화폐이므로 비트코인은 불법이라는 얘기. 이같은 비판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누구도 불법적인 일에 애써 가담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불법으로 몰아붙이는 것만큼 효과적인 공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3월 미 재무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은 비트코인을 이용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비트코인을 사용해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은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8월 독일 정부는 비트코인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까지 했다. 공식 화폐인 유로와는 별개로 ‘사적인 돈(private money)’으로서 비트코인의 적법성을 확인해 준 것이다. 아울러 독일 정부는 회계의 단위로 비트코인을 공식 인정하는 한편, 보유 목적의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비과세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3. 비트코인은 불법적인 행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현금을 사용할 때처럼 비트코인을 사용할 때에도 프라이버시가 보호된다는 점은 사용자에게 큰 장점이다. 그동안 온라인 금융 활동에서는 현금을 사용할 때처럼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익명성 때문에 비트코인이 불법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은 귀를 솔깃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돈 세탁에 쓰일 수도 있고, 테러자금 등 무기거래에 사용될 수도 있으며 마약을 사기에도 안성맞춤이라는 비판은 이 새로운 화폐의 평판에 치명타를 먹이기에 아주 좋은 소재였다.
그러나 반론 또한 만만찮다. 우선은 비트코인의 전체 시장규모가 1조 5천억원에 불과한데 무슨 돈세탁을 하겠냐는 항변이다. 실제로 얼마 전 큰 충격을 주었던 한국 부유층의 조세회피처 탈세 규모만 해도 6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 바 있다. 미국 정부가 검거한 코스타리카의 돈세탁 업체 리버티 리저브의 규모만해도 7조원에 이르렀다. 돈 세탁을 염두에 둔 자금들이 티 안나게 흘러들기엔 비트코인 규모가 너무 작다는 얘기다. 또한 카네기멜론 공대 니콜라스 크리스틴 교수가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비트코인 거래 중 온라인 암시장에서 이뤄진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비트코인이 개인에게는 프라이버시를 보장하지만, 모든 자금의 흐름이 투명하게 실시간으로 공개되기 때문에, 조직적인 금융범죄에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기술적인 반론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4. 비트코인은 피라미드식 사기에 불과하다?
흔히 피라미드식 사기로 일컬어지는 ‘폰지 사기(Ponzi Scheme)’는 가장 대표적인 금융사고의 한 유형이다. 역사상 최대의 폰지사기는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의 중심지 미국에서 적발돼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나스닥 의장까지 지낸 금융계의 유력인사 버나드 매도프가 그 주인공이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폰지 사기는 많은 수익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투자를 유치하는 식으로 이뤄지며, 실제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뒤에 투자한 사람들의 돈으로 앞서 투자한 이들의 이익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금융사기 기법이다. 지난 2012년 가을에 발표된 유럽중앙은행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이와 같은 폰지 사기와 아무 관련이 없다. 유럽중앙은, 첫째, 폰지 사기에는 투자를 유치하는 주체가 있는데 알다시피 비트코인은 운영주체나 주인이 없는 공공적(오픈소스) 화폐시스템이라는 점. 둘째, 앞선 투자자들의 손실을 뒤따른 이들의 투자로 메꿔주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비트코인이 폰지 사기와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유럽중앙은행이 2012년 9월 발간한 보고서. 1) 비트코인은 분권화된 시스템이라 사기를 벌이고 도망갈 중앙관리자가 없다는 점, 2) 누구에게도 높은 수익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점, 3) (처음부터) 투자수단이 아닌,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개발되었다는 점 등을 거론하며 비트코인이 폰지사기와는 무관함을 역설하고 있다. 비트코인에 호의적이기 어려운 중앙은행의 입장에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한 점이 눈길을 끈다.]
5. 해킹 등의 위험에 노출
중앙 서버와 복잡한 인증 절차가 없기 때문에 비트코인이 취약할거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비트코인 자체가 해킹되거나 보안 사고가 난 경우는 전무하다. 농협 등 보안에 엄청난 비용을 들인 금융기관들이 속수무책으로 보안사고를 당하는 걸 보면 비트코인이 매우 불안해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구조적으로 그런 취약성을 극복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전설적인 해커이자 세계 최고의 보안전문가인 댄 카민스키가 “비트코인을 해킹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고백한 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는 해킹 등의 뚜렷한 보안사고가 없었고 구조적으로 안전해보이긴 하지만 앞으로 어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또 비트코인 시스템과는 무관하게 이용자들이 개인컴퓨터상의 지갑 관리를 잘못해서 돈을 잃은 사고도 꽤 있었다. 현실 세계의 지갑이나 금고처럼 개인이 보관을 철저히 하지 못하면 돈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비트코인에 대한 우려와 의혹의 시선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결국은 이런 통과의례를 견뎌내어야 혁신의 가능성이 잠재력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4년 간의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 이 실험이 어떻게 전개될 지 2라운드가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