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발리에서 스타트업 위크엔드가 열렸다.
개인적으로 일이 있어 주말에 잠깐 짬을 내어 발리에 들렸는데, 타이밍 한번 최적이구나 싶었다. 3일 중에 하루를 이벤트가 열린 장소인 후붓에서 고스란히 보냈는데, 이제 여기는 올 때마다 마치 오래 살던 고향 동네에 온 것마냥 편하고 익숙해진 것 같다.
친구 중 한 명이 이번 스타트업 위크엔드에서 코치를 맡게 된지라, 따라다니며 이벤트에 참가한 각 팀의 이야기도 듣고 새로운 얼굴들과 인사도 나누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한 후붓 스탭이 여기 너를 아는 사람이 있다며 와보라고 손짓을 하길래, 뭔가 싶어 가보니 한 참가자분이 ‘I know you!’ 를 외치시는게 아닌가. 응? 하다 목에 걸린 이름표를 보니 이름이 ‘Lee’로 끝난다. 한국분이라는 걸 알자마자 얼마나 반갑고 또 놀랐던지. 그 동안 여기저기 코워킹 스페이스를 다니면서 한국분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거기다 나를 아신다고?
범재님은 지난번 비석세스에 기사로 실렸던 후붓 이야기를 통해 내 글을 처음으로 접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발리행 비행기를 타고 우붓으로 날아와서, 지금은 스타트업 위크엔드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웹 개발자로 꼬박 지난 5년을 일했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 월급은 160만원이었는데, 첫 회사에서 2년간 일을 하고 2008년 퇴사할 때까지 받지 못한 돈이 천이백만 원이었다고 했다. 어떤 달은 오십만원을 주고 어떤 달은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핑계로 아예 한푼도 받지 못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에는 사장이 따로 투자를 해서 별도로 회사를 하나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직원들 월급을 줄 돈은 없어도 새로 투자할 자금은 있었던 모양이다.
두 번째 회사는 훨씬 사정이 나았다. 복지도 임금도 업무 분위기도 뭐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게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개발자로서의 위기감을 느꼈다. 개발자는 개발자로서 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연차가 쌓여갈수록 자연스럽게 경쟁력있는 개발자가 되기 보다는 회사에 최적화된 직원이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러다가는 회사를 나가는 동시에 개발자로서의 수명이 끝나겠다는 위기감이 닥쳐왔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이것저것 대안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개발자 스터디에도 참가하고, 교육 공유 오픈 플랫폼 ‘오픈컬리지‘에도 참가하고, 수업에만 참가한 게 아니라 직접 웹개발을 가르치는 강사로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이런 노력들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외부에서 자극을 자꾸만 받고, 새로운 개발 트렌드를 알게 되다보니 괴리감이 해소되기는 커녕 자꾸만 커졌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으면 회사에서 주어지는 업무에 필요한 스킬만 쌓으면 되는데, 한번 눈을 뜨고 나니 다시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지난 회사에 비해 복지도 함께 일하는 팀원들도 좋았고, 돌봐야 할 가정도 있었지만 개발자로서의 자기 성장에 대한 욕심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육개월을 차마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끌었다. 범재님은 그 육개월 동안 자신이 서서히 좀비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누가 그러길 ‘일을 통해서 자아실현 할 생각을 하지 말고 퇴근하고 너의 삶을 찾아라’라고 했다지만, 자신의 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을 견디는게 너무 힘들었다고도 했다. 그러던 중 내가 비석세스에 기고한 발리의 협업 공간 후붓에 대한 기사를 발견했고, 후붓의 영상을 보는 순간 이제 그만 나가야 할 때라는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갓난아이 둘이 있는 애아빠가 가정을 내팽겨치고 이주 동안 무작정 발리로 간다는 건 한국정서로나 뭐로나 용납되기 힘든 일이었다. 혹시나 결심이 흔들릴까 그는 카카오톡 알림말을 ‘후회최소화’로 바꿔두었다.
그리고 범재님은 10월까지 근무를 한 후 퇴사일로부터 정확히 3일째가 되는 날 발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드디어 여기에 왔구나. 내가 찾던 곳이 바로 여기구나.’
많은 사람들이 토로하듯, 그 역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기에 자칫하다간 앉아서 노트북만 붙잡고 있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패턴을 반복하거나, 미리 참가 신청을 해둔 스타트업 위크엔드에서도 꿔다논 보릿자루 신세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역시 있었다고 했다. 그 두려움이 어느 정도였냐하면, 막상 이벤트가 시작하는 날 미리 후붓에 가서 기다리다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긴장감을 견딜 수가 없어서 도중에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을 정도였다.
“그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내가 아닌 내 아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만약 내 아들이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서 이러고 있다면 난 어떤 말을 할까? 아마 이렇게 훈계를 할 것 같았다. 지금 네가 두렵고 긴장도 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네가 손해볼 게 무어가 있냐. 그 사람들이 네가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비난을 할 리도 없을 뿐더러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네게 손해가 되는 건 뭐가 있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밤 열시까지만 버티자, 그 때까지만 자리를 지키고 버텨보는 거다. 그 때 포기해도 늦지 않다. “
맘을 굳게 먹고 행사 시작 직전에 다시 후붓으로 돌아온 그는 아무도 자신을 비난하기는 커녕 모두가 함께 웃고 떠들며 아이디어를 나누는 걸 보며 안정감을 느꼈다. 그리고 유모를 찾고 소개시켜 주는 플랫폼을 개발한 Nany Advisor팀에 합류해서 개발자로 팀원들과 함께 서비스를 빌딩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이 팀은 3개 우승팀 중 하나로 뽑혀 Tech in Asia에도 소개되었다!).
▲스타트업 위크엔드 발리의 범재님 모습 (Source: Startup Weekend Bali 페이스북 페이지)
스타트업 위크엔드 발리에 참여하면서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대화를 할 때 항상 웃었다. 한국에서 웃는다는 것은 ‘웃는다’는 행위를 하는 것에 가까운데, 여기서 느낀 건 다들 기본 상태가 웃고 있는 거란 사실이었다. 이제까지 나도 주변 사람 대다수에게도 웃는다는 행위 자체는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행위였는데 여기에선 오히려 웃는 걸로 사람들이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덩달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의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만큼 멋졌다.”
범재님은 귀국 후 오픈컬리지에서 한동안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나갈 예정이다. 워드프레스 활용에서 루비로 웹서비스 개발하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차차 준비해나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가진 스킬들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나가는 한 어떻게 살아도 굶어 죽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는 그는, 지금도 두렵긴 하지만 조금씩 용기를 얻고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그의 팀으로 돌아가 서비스 개발에 몰두했다.
여러가지로 마법같은 일이 많이 일어났던 짧은 발리 방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