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글을 기고해주시는 도유진 님은 호주 퍼스를 기반으로 한 협업 공간, ‘스페이스큐브드(Spacecubed)’에서 한국과 호주 스타트업의 교류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호주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실리콘밸리, 이스라엘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론치 2014(beLAUNCH 2014)'의 연사로 참석하는 '아틀라시안'의 마이크 캐논 브룩스 대표를 비롯하여 '스타트업버스'의 엘리아스 비잔, 구글 맵 개발자 믹 존슨 등의 창업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만큼 그 잠재력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지에 계신 도유진 님의 목소리를 통해 아직 생소한 호주 스타트업에 관련한 이야기를 몇 편에 걸친 연재 기사로 나눌 예정입니다. 그녀가 전하는 '호주 스타트업 이야기' 많이 기대해주세요.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말 그대로 꽃을 피우고 있다. 스타트업의 급격한 양적인 증가에 대한 우려(2014년 4월 21일 기준 벤처인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벤처기업의 수는 2만 8천 531개로, 2009년 1만 8천 여개에 비해 1만 개 가량 증가하였다)도 있으나, 국내 스타트업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우호적인 관심과 조명을 받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더불어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리콘밸리 이야기는 뉴욕의 실리콘앨리와 더불어 충분히 많이 듣고 있고, 샤오미와 같이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는 (이제는 스타트업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스타트업들을 보유한 중국 역시 꾸준히 주목받고 있으며, 요즈마 펀드의 이스라엘, 테크시티의 영국에 이르기까지 스타트업 생태계를 잘 가꿔나가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에 대한 소식이 전세계에서 들려오고 있다. 그렇다면 호주는 어떨까?
2013년 PwC의 보고서 ‘Startup Economy study’와 호주 스타트업의 전국적인 네트워크 설립을 주목표로 설립된 비영리 단체인 StartupAUS의 추가적인 조사에 따른 호주 내 기술 기반 스타트업은 어림잡아 1,500개 정도로 추산된다. 한국의 스타트업 위키피디아를 표방하는 로켓펀치에 등록된 스타트업이 4월 기준 900여 개 이상이고, 아무리 호주의 국토 면적이 대한민국의 76.8배(769만2천㎢)에 달한다고 하지만 인구는 2013년 기준 약 2300만 명으로 오히려 2012년 인구 5천만 클럽에 가입한 대한민국보다 적으니 숫자만 놓고 비교하자면 인구 대비 충분히 활성화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호주 스타트업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하고, 호주 현지에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에 항상 큰 걸림돌로 꼽히는 영어에 대한 문제도 없고,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여유로운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이 체감하고 있는 호주 스타트업 생태계의 열기는 왜 아직 충분치 못한 걸까? 퍼스를 기반으로 한 신생 스타트업 미디어 Startup News의 파운더인 패트릭 그린(Patrick Green)은 그 이유들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소를 꼽아 설명해 주었다.
첫번째로 뭔가 일이 벌어지려면 일단 사람이 모여 있어야 하는 법인데, 워낙 땅덩어리가 넓은데다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대도시 간의 거리도 멀다. 일례로 시드니에서 퍼스까지의 거리는 3천 4백 킬로미터 정도로, 기차로는 3박 4일이 걸리고 비행기로는 네 시간 정도 소요된다. 인터넷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물리적인 거리의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패트릭이 설립한 스타트업 뉴스(Startup News)의 경우 현재 퍼스 내에는 이렇다 할만한 경쟁 미디어가 없다. 2010년 벤처스퀘어가 스타트업 전문 온라인 미디어를 표방하고 출범하기 전까지 여타 관련 미디어가 없던 상황을 떠올리면 되겠다. 이는 퍼스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호주 전체가 그렇듯 성장 단계이기 때문이기도 한데다 총 인구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은 탓이기도 하다. 호주에서 가장 큰 주이자 남한 면적의 33배에 달하는 서호주(WA, Western Australia) 인구의 3/4가 이 곳 퍼스에 집중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퍼스의 총 인구는 2013년 기준 197만명에 불과하다. 서울시 인구가 2013년 기준으로 천만 명을 조금 넘는 것과 비교하면 이들이 얼마나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널널하게 살고 있는지가 실감난다.
두번째로 창조경제를 기조로 한 각종 스타트업 지원 정책이 이뤄지고 있는 한국에 비해 호주의 경우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 정책이 상당히 미진한 감이 있다. 당장 이번 달만 해도 호주 정부가 2010년부터 운영해오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의 2014년 운영 계획을 재고하며 관련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예산은 연간 8천2백만 호주 달러로, 현재 환율로 8백억 원이 약간 안 된다. 호주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거액의 예산을 지속적으로 투자해온 분야로는 관광업, 광업 그리고 농업 등이 있다.
[the Commercialisation Australia’ 웹사이트에 올라온 2014년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신청 접수가 잠정 연기되었음을 알리는 공지]
“The chief executive of the peak technology industry body has hit out at the government’s suspension and review of grants from its venture capital arm Commercialisation Australia, saying business confidence in the start-up sector was being put at serious risk.
Commercialisation Australia (CA) has run a competitive assistance program for start-up businesses since the start of 2010, and had ongoing funding of $82 million per year from 2013-14. However, the program was placed in suspension in March pending the federal budget in May, with concerns rising that funding will be slashed.”
세번째이자 가장 치명적인 요소로는 ‘게으른 호주인들(Lazy Aussies)’ 이라는 말이 시사하듯 호주 특유의 느긋한 문화를 꼽을 수 있다. 한 마디로 동기(motivation)부족이다.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임시직원(Casual Employee)로 일하면(호주의 고용형태는 크게 Full Time/Part Time/Casual 이 세 가지로 나뉘는데 Casual의 경우 유급 휴가와 같은 복지 제도가 없고 일정 시간 이상의 노동 시간을 보장하지 않으며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데 비해 시간 당 임금이 가장 높다) 그 한 주의 숙식비가 충당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업에 대한 귀천이랄 것이 표면적으로는 딱히 없고, 일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할 정도의 복지 시스템이 존재하는지라 현지인들은 직업이 있다는 것 자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기름때가 찌든 작업복을 입은 정비공이나 흙투성이 형광색 조끼를 입은 건축 노동자들을 거리의 상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이 탓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굳이 위험을 감수(Risk Taking)하면서까지 스타트업을 시작할 이유가 딱히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호주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타고난 몇 가지 이점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의 그것과는 분명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두는 스타트업들은 당장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해 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시드니의 뒤를 이어 본격적으로 각 대도시에 생겨나기 시작한 각종 스타트업 관련 단체와 미디어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그만큼 앞으로 더 많은 기회들이 펼쳐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많은 관련자들이 2014년을 사실상 호주 스타트업 생태계의 전환기로 보고 있기도 한데 이는 호주 정부의 기존 경제정책에 따른 호주의 현 경제 상황에서 중대한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이에 대해 호주 스타트업 네트워크 조직인 StartupAUS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토대로 자세히 다뤄볼 예정이며, 뒤이어 호주 스타트업 관련 단체 및 미디어, 그리고 개별 스타트업의 순서로 이제 생소하게만 느껴졌던 호주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