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생소하기만 한 호주 스타트업, 하지만 이번 beLAUNCH 2014에서는 구글과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는 사내 복지 및 사원들의 아이디어를 실제 비즈니스 모델로 구현해내는 독특한 기업 문화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아틀라시안(Atlassian)과, 역시 호주 출신의 스타트업 배틀 참여팀 ‘'노티보(Notivo)’를 만나볼 수 있게 되면서 조금씩 교류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
지난 기사에서는 Startup News의 Patrick의 이야기를 토대로 전반적인 호주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간단히 살펴 보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beLAUNCH 2014 참가로 어쩌면 국내 대중들 앞에서는 첫 선을 보이는 호주 스타트업이 될 ‘아틀라시안(Atlassian)’의 성장기와, 아직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킨, 이들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하나를 해보려 한다.
두 대학생의 신용카드 빚을 토대로 시작된 회사
아틀라시안은 2002년 호주 시드니에서 설립된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이다. 본디 본사는 시드니에 위치해 있었으나 올해 2월 영국으로의 법인 이전이 결정되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다). 샌프란시스코에 지사를 두고 있고 직원수는 2014년 상반기 기준 총 850명에 달한다.
아틀라시안은 마이크 캐논 브룩스(Mike Cannon-Brookes)와 스캇 파쿠아(Scott Farquhar)가 뉴 사우스 웨일스 대학교에서 만나면서 탄생했다. 그들은 1만 호주달러(한화 약 9백 50만원)의 신용카드 빚으로 처음 회사를 설립했는데, 2002년 당시 호주에서 스타트업이라는 단어는 생소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고 투자자들은 이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호주는 실리콘밸리의 관심 밖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이 그러했듯 아틀라시안 역시 외부로부터의 조력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들은 그들의 소프트웨어로 직접 수익을 냄으로써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해내기 시작했다.
2004년 아틀라시안은 2천 명의 유료 고객을 확보했고, 2010년 7월 Accel Partners로부터 6천만 달러의 투자를 받으면서 성장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 5년 간 아틀라시안의 매출은 매년 평균 40%씩 증가했고 현재까지의 추이대로라면 올해 1년 간 이들이 벌어들일 수익은 2억 호주달러(한화 약 1천 9억원)를 웃돌며, IPO를 앞둔 아틀라시안의 기업 가치는 현재 약 33억 달러에 이른다.
아틀라시안의 성공비결, 그리고 그들이 호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
아틀라시안은 단 한 명의 세일즈 직원도 고용하지 않으면서도 NASA나 트위터 같은 클라이언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틀라시안은 다른 회사들이 세일즈에 사용하는 자금을 기술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며, 입소문을 통해서도 충분히 퍼져나갈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의 제품을 만드는 것을 추구한다.
아틀라시안이 내세우는 핵심 가치들 중 특히 유명한 “헛소리 말고, 고객을 속이지 말라(No bullshilt, Don't #@!% the customer)”는 신선하고도 솔직하다. 아틀라시안은 자사의 제품에 대한 모든 정보를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고객들의 질문에 개발자들이 직접 대답을 한다. 동시에 모든 시스템은 철저하게 개발자들을 위주로 움직이며 개발자들의 사이드 프로젝트는 종종 아틀라시안의 제품으로 출시된다.
실리콘밸리에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가 있다면 호주에는 아틀라시안의 마이클 캐논 브룩스와 스캇 파쿠아가 있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이 셋 모두 34세이고, 테크계의 거물들인데도 창업 초기와 다를 바 없는 수수한 옷차림과 털털한 태도를 고수하는 것 등을 그 이유로 꼽는다.
아틀라시안은 호주에서 가장 '쿨한' 회사로 여겨지며, 공동창업자인 마이클과 스캇은 현지 언론에서 종종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있는 호주 스타트업 생태계의 영웅들(the heroes)로 불리곤 한다. 이는 이들이 전통적으로 천연 자원과 제조업이 강세를 이루고 있는 호주에서 전혀 매력적인 직업이 아닌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 거기다 그들의 기술력을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전세계적으로도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 마이크 캐논 브룩스(좌), 스캇 파쿠아(우), 이미지 출처: www.brw.com
또한 아틀라시안은 호주 스타트업에 여러 방법으로 다양한 지원을 해오고 있다. 이 두 명의 창업자는 호주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시드펀딩부터 시리즈 A펀딩을 진행하는 Blackbird VC fund의 투자자이고, 각종 스타트업 커뮤니티는 물론 엑셀러레이터와 인큐베이터에도 멘토 및 멤버로서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아틀라시안의 창업자들은 호주에서 자신의 꿈을 따르고 자신들의 이상을 고수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었다(the Atlassian founders showed what’s possible to achieve in Australia by following their dreams and sticking to their ideals.)" - Pando.com
영국으로의 이전, 그리고 이 사건이 호주 스타트업 생태계에 던진 숙제
아틀라시안은 올해 2월 호주 연방 법원으로부터 영국으로의 법인 이전을 허가받았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이전 이유는 영국의 스타트업 관련 규제가 호주보다 훨씬 완화되어 있어 해외 투자자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지의 많은 관계자들은 아무리 영국이 스타트업에 친화적인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까지 호주 정부가 자국의 스타트업들에게 보여준 무관심과 비협조적인 태도가 아니었더라면 이번 아틀라시안의 이전 결정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아틀라시안이 호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와 위상을 구구절절히 이야기한 이유는 이 소식이 호주 스타트업 관계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충격을 가져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두 창업자들은 자신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직원은 그대로 시드니에 남아 있을 것이며, 앞으로도 많은 인력을 지속적으로 호주에서 채용해나갈 것임을 밝혔으나 여전히 이 사건의 여파는 상당하다(여담으로, 호주 현지의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필자에게 ‘네가 이번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beLAUNCH에서 아틀라시안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이 나라를 떠난 것에 대해 세게 한 방 먹여주길 바래.’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스타트업이 유능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인 스톡옵션과, 외국인들에게 주어지는 임시 취업 비자 등에 관련한 호주 정부의 강력한 규제는 많은 스타트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 유럽과 달리 호주의 경우 스톡 옵션을 소지하고 있는 직원들은 주식의 현재 가치에 전혀 관계없이 주식이 발행되는 즉시 이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하며, 호주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회사가 지원해줄 수 있는 임시 취업 비자인 457비자의 발급 조건은 여전히 까다롭다. 마이클과 스캇은 이 문제들에 대해 호주의 많은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대표하여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해 왔지만, 좀처럼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아틀라시안처럼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스타트업도 결국 영국으로 본사를 이전하고 미국에서의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호주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도대체 무슨 희망이 있겠냐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스캇은 BRW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만약 정부가 우리의 피드백을 원한다면, 우리는 개선시켜야 할 것들에 대한 긴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인과관계가 완벽하지 않을진 모르겠지만 호주에서 사업을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엄청나게 많은 요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존재해 왔다. (If the government wants our feedback, we’ve got a long list of things to improve,” Farquhar says. “It’s not perfect cause and effect, but there’s a whole bunch of stuff over a long period that makes it difficult to do busi ness here.)”
이번 아틀라시안의 이전 결정을 계기로 많은 호주의 경제학자들과 일부 정치인들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고, 연방 재무장관인 조 호키(Joe Hockey) 역시 The Australian Financial Review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이 바로 국가의 경제구조를 바꿀 중요한 순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5월 중에 호주 정부가 새롭게 내놓을 몇 가지 관련 법안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상당한 우려가 현재 호주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요한 의제들 중 하나이며, 많은 관계자들이 이번 아틀라시안의 법인 이전 결정이 호주 정부의 향후 정책 방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길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호주 정부는 아틀라시안의 이전 결정에서 교훈을 얻었을까? 조만간 그 대답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