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트랜스링크캐피탈은 미국의 스타트업이 아시아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돕는 벤처캐피털사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공동대표 3명은 모두 아시아인이다. 한국, 일본, 대만의 친구 셋이 모여 2007년 스타트업 벤처캐피털을 세웠다.
이 세 아시아인은 비밀은 미국인보다 미국의 창업과 투자 생태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음재훈 대표는 삼성벤처스 미국 지사의 대표를 역임했고, 일본의 토시 오타니(Toshi Otani)는 히까리스신에서 미국 지역 투자 대표를 맡았다. 대만의 재키 양(Jackie Yang) 또한 대만의 선두적인 반도체 제조사 UMC에서 미국과 중국 지역 투자 대표를 맡은 경력이 있다.
이들이 공동 투자한 기업 4개 중 3개는 기업 공개(IPO)를, 한 곳은 M&A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4타자, 4안타. 기가 막힌 타율의 비결은 각 파트너의 경험치가 쌓여 만들어진 투자 안목과 더불어 트랜스링크캐피탈의 뿌리가 '전략적 투자'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해당 스타트업을 아시아 국가의 대표 IT 기업에 소개해주는 과정을 통해, 스타트업과 트랜스링크캐피탈은 서로를 탐색할 수 있는 일정 시간을 갖는다. VC는 해당 스타트업이 투자 가치가 있는지를, 반대로 스타트업은 VC가 얼마나 자사 서비스에 가치를 더해줄 수 있는지(value add)를 각각 살펴볼 수 있다.
"저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좋은 기술을 가진 업체를 한국, 일본, 대만의 IT 대표 기업에 소개시켜주고 거기서부터 투자 기회를 얻는 '전략적 투자(Stratagic investment'를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곳에 매여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지 않죠. 전략적 투자의 장점은 살리면서도 단점은 덜어낸 새로운 형태의 벤처캐피탈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전략으로 설립 첫해에는 5천만 달러(한화 약 507억 원)로 시작해 지금의 세 번째 펀드는 1억 5천만 달러(한화 약 1,521억 원)로 그 자금 규모를 조금씩 불려 나갔다. 실제 트랜스링크캐피탈이 주로 투자하는 규모는 대부분 시리즈 A,B 단계다.
트랜스링크캐피탈은 주로 IT 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포트폴리오를 들춰보면 하드웨어부터 모바일 소프트웨어 기업까지 사실상 전 분야에 고루 투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경우 필연적으로 아시아 제조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트랜스링크캐피탈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활동량 측정기 '미스핏(misfit)'의 경우도, 트랜스링크캐피탈의 도움을 받아 아시아 지역 진출에 성공했다. 이미 나이키 퓨얼밴드, 조본업 등의 웨어러블 기기가 시장을 선점한 미국에서 후발주자로 제품을 내는 것보다는, 아시아 시장에서의 첫 번째 웨어러블 기기로 자리 잡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렇게 트랜스링크캐피탈이 투자한 뒤 엑시트(Exit)한 스타트업만 해도 6개다. 메시지 앱인 '탱고(Tango)'의 경우 이미 1조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중국의 알리바바의 경우 저희가 투자한 모바일 업체에 3개나 공동투자를 했어요. 퀵시(Quixey), 탱고(Tango), 필(Peel)에 모두 저희 다음으로 후속 투자를 해왔죠. 저희가 지금까지 37개 회사에 투자했는데, 이 기업들이 아시아와 특별한 연결 고리를 맺게 해주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자 지금껏 해온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음재훈 대표는 VC로서 가지고 있는 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카르마(Karma, 業)'라고 답했다.
"저는 카르마를 믿어요. 누군가를 도와주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돌아온다는 의미에서죠. 그렇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기업이나 사람이 있다면 저희는 사례나 보답을 바라지 않고 소개를 해줘요.심지어 투자 결정을 하기 이전부터 말이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서로를 필요하는 회사 양방 간에서 연락이 오죠. 저희는 그 일을 15년 동안 해온 거예요."
미국의 기업의 아시아 시장 진출을 돕는 트랜스링크캐피탈의 음재훈 대표는, 반대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진출에 대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저는 항상 홈그라운드를 먼저 초토화하면 거기서부터 기회가 생긴다고 조언합니다. 글로벌 진출이라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예요. 자국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업체가 원정 경기를 하러 나간다는 것은 똑똑한 배팅이 아닙니다. 카카오, 쿠팡을 보세요. 해외 진출 안 해도 얼마든지 1조 원 이상의 가치를 가진 기업들은 탄생하고 있어요."
그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현지의 스타트업의 경우 해외 진출이 필수 불가결일 경우에만 시도하고 있는 추세다. 예를 들어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경우 필수적으로 아시아 제조사와의 파트너십을 맺어야 하기 때문에 해외 진출을 시도하게 된다. 또 한가지는 이미 서비스를 론칭하고 자국 내 기반이 단단한 경우, 서비스 배포를 가속화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해외 시장에서 생각지도 않게 반응이 온 경우다. 실제 에버노트의 경우, 자국이 아닌 일본에서 우연히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에버노트에 제일 먼저 투자한 곳도 NTT 도코모였다. 실리콘밸리 기업의 경우 이 세 가지 분명한 이유가 아니라면,절대 해외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는 국내 기반이 없는 한국 스타트업이 미국 현지에 나와 성공할 가능성에 대해 '300타수 무안타'라고 혹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곧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과정에도 '박세리 모먼트'가 찾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 1,2년 내에 소위 말하는 박세리 모먼트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LPGA처럼, 박세리 같은 해외 진출 성공 사례가 하나 나오면 봇물 터지듯이 연이어질 겁니다. 지난 짧은 3년 동안, 그전의 12년간보다 훨씬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들이 많이 등장했어요. 타파스미디어의 김창원 대표, 눔의 정세주 대표, VCNC의 박재욱 대표 같은 분들은 한국 스타트업의 국가대표라고 할 수 있죠.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 못지 않은 능력을 가진 분들이에요."
그렇다면 스타트업은 큰 목표를 가지는 '씽크 빅(Think big)'과 현실에 충실한 '리얼리스틱(Realistic)' 중 어떤 관점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이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해외 진출만이 크게 생각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한국 시장에 중점을 둔다고 해서 작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죠. 쿠팡의 김범석 대표가 작게 생각하는 인물일까요? 오히려 크게 생각만 하고 아무 것도 행동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스타트업도 많습니다. 자신이 집중하는 분야에서 무조건 넘버원이 되세요. 거친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세계 어느 시장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트랜스링크캐피탈의 음재훈 공동대표는 오는 9월 12일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개최되는 '비글로벌2014(beGLOBAL2014)'의 연사로도 참여할 계획이오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