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추천사를 쓴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는 이 책의 부록부터 읽어보라고 권한다. 나 역시 동감이다.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당신이 스타트업을 하며 참고해야 할 모든 책 중에서 반드시 읽고 참고해야 할 부분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이 부분을 꼽겠다. 스타트업 바이블 2의 부록 첫 부분의 제목은 ‘스타트업’호가 가라앉을 때 선장과 선원의 행동강령이다. 우리가 매일 책에서 읽던-하지만 현실에서는 0.01%만 해당하는-성공 사례, 성공한 이들의 거드름이 아니라 스타트업 종사자의 99%가 직면하게 되는 ‘사업실패’의 경험이 아주 솔직하고 생생하게 담겨 있다(물론 배기홍 대표가 몸담았던 뮤직쉐이크는 ‘결국’ 투자유치에 성공했고 현재도 서비스 중이다).
나 역시 배기홍 대표가 뮤직쉐이크의 감원을 단행하며 필사적으로 일을 했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직원 수 10명 미만의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B2B 비즈니스를 하며 나름 호황을 누리던 중, 경제 위기로 인해 모든 일감이 다 떨어졌고 매출을 만들기 위해 머리와 인력을 쥐어 짜서 새로운 상품을 닥치는 대로 판매해야 했다. 혼자 벽을 보고 매일 7시간씩 일주일 간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한 끝에, 강사로 재탄생 해 B2C와 B2B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강의를 하고 다녔다. 창업자가 아닌 직원이었던 나는 원하지도 않고 비전도 느끼지 못하는 일을 해야 하는 당시 상황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 대기업으로 도망갔다(물론 대기업에 쉽게 도망가진 못했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스펙’을 쌓는데 1년 이상이 걸렸다).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는 너무 심각하게 안도해서 ‘이 곳에서 은퇴할 나이가 될 때까지 버텨야지’라고 생각하며 회사에서 정한 모든 규칙을 솔선수범하며 지켰다. 하지만 이런 결심은 채 3년이 가지 못했다. 만 2년이 되자마자 공동창업자를 구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 밤 12시, 새벽 1시까지 아이템 회의를 한 끝에 결국 대략적인 아이템이 정해지자 마자 퇴사해버렸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우리 주변에 들려오는 수 많은 성공 사례들, 돈 방석이 아니라 아주 돈다발로 된 거성의 성주가 되었다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죄다 유명 대학에서 주변의 인정을 받던 천재 개발자 출신인 것 같다. 그런데 난 심지어 개발자 친구도 없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매일 인수 합병이 일어나는 실리콘밸리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최근 성공적으로 Exit 한 사례는 티켓몬스터, 엔써즈, 올라웍스가 전부다. 티켓몬스터 창업자들처럼 함께 합숙할 비어있는 친척집도 없고 무엇보다 그런 밑바닥부터 구를 수 있는 친구들도 없다. 엔써즈와 올라웍스의 성공사례를 보면 내가 얼마나 성공에 접근하기 힘든지 더욱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두 회사의 창업자 모두 KAIST 석사 이상의 개발 전공자로, 두 번째 사업에서야 드디어 성공적인 Exit를 맞았다. 그런데 대체 나는 무슨 깡다구로 또 이 험난한 스타트업의 세계로 돌아왔단 말인가?
대체 왜 스타트업계의 주변에서 헤메고 있는지, 근원적 질문을 안은 채, 스타트업 바이블2의 39계명을 읽어가며 내 자신에게 39번의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 계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실천할 수 있는가? 39번의 고민과 각오 끝에 깨달았다.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하고 운이 좋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더라도 실패할 수도 있겠구나. 아니 어쩌면 실패할 수 밖에 없겠구나.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스타트업계에 남아 있고자 하는 이유는 단지 돈으로 된 큰 성을 쌓고 싶어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냥 사업이 하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경제위기가 닥치고 원하지 않는 일도 하긴 해야 했지만,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여기로 온 것이다. 스타트업 바이블2의 끝마치면서를 인용하고자 한다.
“나는 한 번 사는 인생을 최대한 가치 잇게 살아보려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나는 창업가 정신과 벤처 정신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든다고 믿는다. (중략) 벤처 정신은 단순하게 인터넷 회사를 창업해서 돈을 번다는 좁은 의미가 아니다.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려 하는가? 아니 벌써 시작했는가?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에게 냉정하게 물어보라. “앞으로 최소 6개월 또는 12개월 동안 단 한 푼의 월급도 못 받으면서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데 자신있나?” 자신이 있다면, 그리고 이 일과 함께 행복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스스로에게 ‘what if’를 묻지 말고 달려라. 이게 바이블이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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