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리랜서다. 수많은 미디어에 다양한 모양의 글을 쓴다. 패션지에는 패션지에 맞게, 온라인 매거진에는 온라인 매거진에 맞게 글을 보낸다. 분량도, 내용도, 분위기도 전혀 다르다. 그러나 가끔은 비슷하기도 하다. 같은 패션지라서, 같은 온라인 매거진이라서 비슷한 것이 아니라 모호한 디렉션, 애매한 방향성 때문에 이곳에 쓴 글과 저곳에 쓴 글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다. 때로는 글의 소재도 비슷하다. 유행에 민감한 이들은 한 번씩 그것을 건드리고 싶어하다보니 생기는 일이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이러한 경우 보통 하나는 주변 동료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같은 소재를 두 번 쓰면 동어반복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이러한 현상을 종종 겪으며 이것이 굉장히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누굴 위한 반복적인 관심과 동시다발적인 주목일까? 꼭 유행이라고 해서 모두가 한 마디 해야 하는 걸까?
내년부터는 나도 하나의 미디어를 만들어 운영하고 싶어서 요즘은 미디어 스타트업 스터디도, 관련된 고민도 많아지고 있다. 미디어를 만든다는 것은 긴 시간 고민했던 것 중 하나인데, 어쩌면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 답답함이 늘어서 결국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것일지도 모른다. 꼭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루지 못할 때의 답답함, 모두가 한 가지 문화 현상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의 답답함(크게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거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점이나 프레임이 하나뿐일 때), 그러한 내용을 담아내는 방법이 똑같을 때의 답답함이 가장 컸다. 한없이 짧아지기 시작한 글은 물론이고 영상을 해야 한다며 비슷한 길이, 비슷한 호흡, 비슷한 자막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영상 컨텐츠까지 사실 답답한 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더불어 특정 누군가의 문제도 아니다. 사람들이 글을 잘 안 본다면 쉽게 쓰는 것, 그리고 매력적으로 쓰는 것도 방법이다. 아무리 긴 글도 바이럴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영상 역시 마찬가지다. 긴장을 유지하며 설득력을 쌓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실력과 준비를 갖추는 것도 방법이다.
어쨌든 미디어를 하는데 있어서 자기 포지션은 굉장히 중요하다. 미디어에 있어 차별성은 덕목이 아닌 필수조건이다. 프리랜서가 그곳에 글을 쓸 때 다른 곳에 쓸 때보다 좀 더 고민하게 만들 만큼은 있어야 한다. 그러한 차별성은 미디어의 외형과 그 안에 담긴 컨텐츠로 채울 수도 있지만, 아이덴티티 그 자체로도 만들 수 있다.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색채라는 것 또한 정의할 수 있는 방식이 다양하다. 정치색일수도 있고, 일상정치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하나의 지점일수도 있다. 혹은 다루고자 하는 소재의 영역이 확실할 수도 있고, 같은 걸 담더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다를 수도 있다. 복스(Vox)를 비롯해 마이크(mic.com)나 나우디스(NowThis)는 정치라는 영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정치라는 영역이야말로 속도전의 장이다. 굵직한 사건이 확실하게 존재하고, 그것을 누가 먼저 뉴스로 알리는지가 경쟁처럼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프레임을 달리하는 것은 굉장히 효율적인 작전이기도 하다. 미디어 산업에 있어 [단독]과 같은 속도전은 앞으로 더 무의미해질 것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사건을 어떻게 정리해서 전달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 이면에 무엇이 있고 이 사건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분석하고 사건의 본질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시각이 중요해질 것이다. 다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달려가고 있고, 그것을 경쟁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체질이 개선되기 어려우니 지금의 사단이 발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결론은 미디어는 자신의 색이 확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가 자기 포지션이나 자기 색채, 컨셉이 확실하지 않다면 누구에게 어필해야 할지도 모르고 누구에게 이 컨텐츠를 보여줘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유투브고 웹이고 불특정 절대다수가 볼 수 있는 환경에서 다각도로 노출되면 좋지 않냐고 하겠지만, 하다못해 마블도 자신들의 정치적 방향을 확실히 하는데 모두의 입맛에 맞추려 하는 시도를 하는 것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매력은 호불호가 강한 존재가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절대다수에게 골고루 사랑을 받고자 미움 받기 싫어서 둥글둥글하게 굴다 보면 호감이나 좋은 인상은 남길지언정 매력을 지닐 수는 없다. 특정 대상을 한 구체적인 미디어가 되라는 주문이 아니라, 자기 페르소나를 확실하게 하고 그만큼 확실한 매력과 설득력을 지니라는 권유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매력만큼은 인정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 미디어에게는 더욱 좋은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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