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 중엔 영어로 번역이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영어권에선 정서 자체를 모르는 말들이라 그렇죠. ‘애교’ 같은 단어입니다. 여성이 애교를 부리는 존재, 즉 오랜 기간 남성보다 약자로 업신여겨져 온 우리나라나 일본 정도에만 있는 단어입니다. ‘큐트(Cute)’나 ‘참(Charm)’ 같은 주체적인 단어와는 정서가 다릅니다.
‘갑을관계’도 영어번역이 안 됩니다. 서양에선 그냥 의뢰인과 공급자죠. 갑과 을을 기어이 구분 짓는 일에는 거들먹거리고자 하는 강자의 욕망이 숨어있습니다. 동등한 협력자의 위치가 아니라 강자와 약자의 지위를 명시적으로 나눠 아래 두고 싶어 하는 것이죠. 그 나라의 언어가 문화를 말해준다는 사실을 놓고 봤을 때, 우리 사회는 역시 강자의 거들먹이 심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갑질에 시달렸는지를 생각해보면 <베테랑>의 폭발적인 흥행은 수긍이 됩니다. 이 영화는 무려 1,340만 관객 수를 넘기며 역대 한국영화 전체 흥행 순위 3위에 올랐죠.
<베테랑>은 계란이 바위를 깨는 영화입니다. “내가 응원하는 인물들이 승리하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며 “해봐야 안 될 싸움을 기어이 해볼 만한 판으로 만들어버리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류승완 감독의 의도대로 그야말로 시원한 을의 승리가 펼쳐집니다.
서도철(황정민) 형사를 중심으로 한 광역수사대는 한마디로 쪽팔리게 사는 걸 못 견디는 사람들입니다.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수갑 차고 다니면서 가오 떨어질 짓 하지 말자.”
서도철 형사의 이 대사를 기억하실 것 같네요. 자체 음성지원 기능이 탑재된 명대사입니다. 갑 위의 갑 신진그룹 조태오(유아인)에 맨몸으로 돌격해, 기어이 갑의 멱살을 쥐고 탈탈 흔든 선한 사람들의 승리는 통쾌했습니다. 조태오는 정말 어이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영화는 언제 봐도 재밌는 것 같아요. 그래서 ‘권선징악 코믹 액션’이라는 이 장르에만큼은 관객도 클리셰에 대한 질책에 있어 너그러운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원형은 <폴리스스토리> <다이하드> <리썰웨폰> 등 수많은 영화가 이미 해온 방식과 같잖아요. 그런데도 <베테랑>은 무척 재밌었고, 다시 이런 영화가 나오면 또 재밌게 볼 것 같습니다.
음… 근데 이런 영화가 언제나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그걸 생각해보면 좀 씁쓸해집니다. <베테랑>을 보며 느낀 통쾌함이 컸던 이유는, 우리가 세상을 살며 그토록 보고 싶었던 모습이 스크린 위에 펼쳐졌기 때문이겠습니다. 갑질 앞에 굽실대지 않고 오히려 가운뎃손가락을 먹이는 인물들, 마침내 상식이 통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 또 거들먹거리는 갑의 면상에 찬물을 끼얹는 모습들. 그간 현실에서 갑질에 시달리며 얼마나 보고 싶었던 모습들인가요.
이런 영화가 언제나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현실에서 언제나 갑이 거들먹거리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베테랑>의 장르가 실은 판타지라는 걸 알고 있는 우리는, 그래서 극장을 나와서는 씁쓸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치사하고 쪽팔리고 싶은 사람이 사실 누가 있겠어요. 나도 서도철처럼 멋지게 살고 싶지만, 갑이 월급을 주는데 뭘 어쩌겠습니까. 현실에선 그렇게 살기가 굉장히 어렵죠. 극장을 나와 느껴지는 씁쓸함의 크기는 극장에서 느낀 통쾌함의 크기 그만큼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둘이었습니다. 하나는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이 권선징악이 사실은 판타지라는 걸 불현듯 깨닫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배 기사(정웅인)를 가지고 노는 조태오가 배 기사의 아들에게 장난감을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장난감은 배트카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배트맨은 다크나이트죠. 정체를 숨긴 채 암약하는 재벌가의 자제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짓밟는 서민에게 재벌가 자제가 주는 선물이 하필이면 배트맨의 상징이라니. 을의 희망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아서 서늘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주는 엔딩씬이었습니다. 배 기사가 의식을 되찾는 장면이었죠. 선한 서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배 기사는 병원에서 눈을 뜹니다. 그리고 가만히 손가락을 움직여봅니다. 이어 발가락을 움직입니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엔딩씬은 마치 갑질 심한 이 사회에 이렇게 외치는 듯한 장면이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되긴 했어도 이 사회의 선함은 사지 멀쩡하게 아직 살아있다 이 XXX들아!”
힘없는 배 기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했습니다. 서도철 형사도 끝끝내 맨몸으로 개겼습니다. 이 영화의 선한 사람들은 갑질에 순응하지 않고 모두 저마다 각개전투로 개겼습니다. 심지어 아트박스 사장님까지도요. 이런 걸 보면 역시 구원은 셀프라는 생각이 드네요. 힘이 있건 없건, 갑질에 굽실거리지 않고 살려면 어쨌든 개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스타트업을 하는 것도 개기는 행위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응하지 않고 기존의 틀을 바꿔보려는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굽실거리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하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스타트업을 하면 좋은 점이 많지만, 갑질 앞에서 굽실거리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기어이 갑을을 나눠 거들먹거리고자 하는 이 사회에서 그럴 수 있다는 건 특권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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