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55. 나는 부정한다 – 똥에 마음을 쓰지 말자.
May 12, 2017

똥 밟은 여주 데보라

우리는 모두 똥을 밟은 적이 있습니다. 단언컨대, 이 글을 읽는 스타트업 피플께서도 어디선가 똥을 밟은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엔 참 많은 똥들이 있고, 똥들은 비단 길바닥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빨간 대변 파란 응가 찢어진 설사…) 어느 업계의 바닥에나 형형색색 다양한 모습을 하고서 똥은 응당 깔려있습니다. 문득 밟게 되는 어느 재수 없는 날, 소위 ‘똥 밟았다’고 말하게 되는 날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아.. 스타트업 관람가를 오늘은 똥 얘기로 더럽히고 있습니다. 독자 관계자 여러분, 송구스럽습니다. 이젠 별 똥 얘기를 하는구나 싶으시겠죠. 으흠, 사실 더러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나는 부정한다(Denial, 2016)'를 보고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 머리를 퍽 때린 대사가 하나 있었는데요. ‘아 젠장, 역시 그런 거였구나’ 나는 바보같이 똥한테 마음을 썼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대사였습니다. 대사는 이랬습니다.

신발에 묻은 똥은 그냥 닦아버리면 돼요. 들여다보고 있을 필요가 없죠.

'똥' 이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신발에 묻은 똥’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인 데이빗 어빙(티모시 스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어빙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 행위 일체가 없었노라 주장하는 인물입니다. 가스실 처형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으며, 유대인들이 보상금을 받아낼 목적으로 부풀린 이야기라 말합니다. 우리 역사로 치면 위안부에 강제노역은 없었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그야말로 똥 같은 얘기죠. 어빙은 그렇게 악취를 풍기면서 나치 극우파들이 흘리는 콩고물을 주워 먹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드(레이첼 와이즈)는 분노합니다. 사료를 모으고 책을 펴내 어빙의 궤변에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그러자 어빙은 명예훼손으로 그녀를 고소합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없는 영국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려면, 어빙이 거짓을 말했다는 걸 증명해야 합니다. 즉 립스타드는 홀로코스트가 실존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렇게 홀로코스트의 진위는 이제 법정에서 공식 판결될 사안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이목이 재판장에 쏠립니다. 1996년에 벌어진 실제 법정공방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입니다.

한 명의 개발자, 한 명의 신입사원, 한 명의 대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은 비단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영화는 립스타드의 변호인단이 이 똥을 어떻게 닦아내는지, 그 방식을 보여줍니다. 프로의 일 처리는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우선 최대한 감정을 빼고 사안을 다뤘습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할머니 앞에서도, 실제 가스실이 있던 장소에 방문해서도 분노하거나 애도하지 않았습니다. 재판형태를 배심원 출석이 없는 형태로 설정하고, 생존자의 증언도 배제했으며, 심지어 당사자인 립스타드에게도 발언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건 사안을 감정의 개입으로부터 떨어뜨려 놓기 위함이었습니다. 그편이 재판에서 이기는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 전략이 그렇다 한들 그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모두의 분노 가운데서 홀로 냉철하기는 결코 쉬울 수 없습니다. “이게 슬픔 정도로 끝날 일이야?”라고 말하던 립스타드 역시, 변호인단의 그 억센 냉철함을 야속해 합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끝내 한 발 뒤에서 평정을 유지했습니다. 돌아보면 그것은 오히려 극한의 분노였고, 애도였습니다.

의미 없이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도록 감정부터 빼기. 선 뒤에서 냉철하게 현실을 보기. 또 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일하며, 세상의 이목에 흔들리지 않고 결과로 말하기. 이게 변호인단의 방식이었습니다. 이들은 이기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이 사건과 어빙이라는 존재는 오직 이겨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사안에 감정을 섞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어빙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습니다. 재판이 다 끝난 후 어빙이 악수를 청할 때까지도 무시로 일관합니다. ‘넌 똥이야. 난 똥이랑은 말 섞지 않아. 넌 그냥 닦아내면 되는 존재야.’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한 태도였습니다. 결국, 변호인단은 멋지게 재판에서 승리하고, 어빙은 낯빛이 똥색이 되어버리죠.

스타트업은 바닥에서 시작합니다. 약자의 위치에 서 있으면 역시나 별의별 일을 다 겪습니다. 소위 ‘똥 밟는 경험’을 하는 일도 많죠. 때론 별 시답잖은 인물에게 별 시답잖은 이유로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회사가 작으니까, 대표가 어려 보여서, 별 의미도 없는 수많은 것들이 무시의 사유가 됩니다. 어쩔 땐 불합리한 경쟁에 놓인 답답함에 소화불량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뿐인가요. 우리 스타트업의 노력과 능력을 날로 먹으려고 하는 양심 없는 자들도 만나게 됩니다.

뚜벅뚜벅 씩씩하게 걸어가다가도, 문득 그렇게 똥을 밟는 일이 생기죠.
속상한 일입니다.
그럴 때 그 똥을 들여다보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똥한테 화를 낼 필요도 없습니다.
똥한테 마음을 쓰지 마세요.
흔히 하는 말처럼 ‘똥 밟았다 생각하고’ 잊어버리세요.
신발에 묻은 똥은 그냥 닦아내고, 우리는 다시 우리가 갈 길을 가면 됩니다.

영화 이미지 ⓒ Bleecker Street & Entertainment One

slogup
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창업분야 베스트셀러 '스타트업하고 앉아있네'의 저자입니다. 홈·오피스 설치/관리 플랫폼 '쓱싹'을 운영하고 앉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