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직장에 모두 충실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스타트업계에서 여성의 삶과 팀원의 삶을 모두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스타트업이 활발한 실리콘밸리에서조차 여성 창업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여성 불모지인 스타트업계에서 여성으로 당당하게 성공한 이들이 있다. 전 컴투스(com2us)의 박지영 대표와 빙글(Vingle)과 비키(viki)의 공동 창업가 문지원 대표다. 지금부터 이 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매쉬업엔젤스(Mashup Angels) 이택경 대표가 대화를 이끌었다.
이택경(이하 이): 최근 두 분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박지영 대표님은 2013년에 컴투스를 매각하고 제주도에서 은둔하고 계셨는데 최근엔 어떤 일에 관심 있으신가요?
박지영(이하 박): 은둔까지는 아니고요, 지금까지 18년 정도 벤처업계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학부모 모드로 돌아가서 제주도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어요. 최근에는 몇 군데 투자 회사의 LP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문지원 대표님 같은 경우는 2013년에 빙글을 창업하시고 비키를 매각하셨습니다. 지금은 새로 창업하신 빙글을 운영하시고 더벤처스 엑셀러레이터에 참여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두 가지를 동시에 운영하고 계신가요?
문지원(이하 문): 80대 20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빙글이 80이에요. 더벤처스에는 다양한 전문가 집단이 있어서 이분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고 저는 필요할 때만 개입하고 있습니다.
이: 빙글을 창업하시고 조금 있다가 비키가 인수되었는데, 비키가 먼저 인수되었다면 빙글을 창업하셨을까요?
문: 창업했을 것 같습니다. 창업가들에게는 메이커 DNA가 있어요. 자꾸만 새로운 걸 만들고 싶은 욕구죠. 그래서 더벤처스도 만들었습니다. 투자회사를 같이 만들어가기 위해 창업했을 것 같습니다.
이: 90년대에 제가 공동창업 할 때는 다음이나 다른 게임 회사들, 네오위즈, 넥슨 등을 보면 인트라넷 관련 일도 하다가 각자 자기의 일을 찾아갔습니다. 박 대표님도 컴투스 하시기 전에 다른 일을 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컴투스를 창업하셨나요?
박: 저는 대학교 4학년 때 창업했습니다. 당시에 창업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PC 통신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보를 알기 위해 돈을 쓰지 않아서 하드웨어 판매를 하게 되었어요. 이 아이템이 유지는 되지만 이걸 하기 위해서 창업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들을 많이 시도했고 빚도 많이 생겼어요.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비즈니스와 사람들이 원하는 비즈니스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무선 통신을 사용하게 되면 사람들이 반드시 모바일 게임 서비스와 같은 엔터테인먼트를 원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PC 통신 사업의 시행착오를 통해 컴투스를 창업할 아이디어를 얻은 거죠.
이: 문 대표님은 비키 전에 3D 아바타 사업을 하시다가 안 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창업이 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문: 망한 회사들을 수습하고 나서 이제 무엇을 할지 고민했어요. ‘아직 젊은데 한 번 더 해보자!’하는 오기가 생겼죠. 이왕 할 거 실리콘밸리에서 해보자는 생각에서 일단 유학을 갔습니다. 유학을 갈려고 여러 방법으로 영어를 배우려고 했는데 그런 방법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미드를 번역하면서 영어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키는 협업자막 툴을 탑재한 글로벌 서비스인데, 글로벌 서비스가 힘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마켓을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비키 커뮤니티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TV 서비스지만 사실은 커뮤니티 서비스입니다. 비키가 어려워져서 문을 닫아야 했을 때 유저들이 한 달에 1천만 원씩 기부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점은 해결한 후에 서비스를 TV에만 한정하지 않고 모든 관심사에 연결해 만든 것이 비키입니다.
이: 많은 한국사람이 실리콘밸리는 학벌이나 네트워크보다 실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 대표님 부부는 하버드, 스탠포드 출신인데 학벌이 얼마나 도움되셨나요?
문: 학벌이 있어도 사회, 문화적으로 달라서 성골, 진골 대접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시작했기 때문에 학벌이 없었다면 우리가 만든 것을 설득할 기회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말 한마디로 투자 유치한 경우도 있었지만 우리는 러닝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설명해야만 투자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초기 기업 같은 경우에는 성과가 나오기 전이기 때문에 평가할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아서 사람을 보고 믿고 평가합니다. 그럴 때 학벌이나 네트워크가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가 없죠. VC 10명을 만나면 거의 반은 하버드, 나머지 반은 스탠포드라고 할 정도니까요.
박: 저 같은 경우는 학생 창업가니까 함께 할 사람이 없어서 후배들 밥 사주면서 꼬셨어요. 그래서 평소 학교 다닐 때 잘하시는 게 나중에 도움이 됩니다.
문: 하지만 학벌이나 네트워크가 중요하지만 그게 없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이: 박 대표님, 가장 어려웠던 순간과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박: 망했던 때가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었죠. 모바일 게임을 워낙 일찍 시작하다 보니 시장이 제로에서 시작했습니다. 경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직원 뽑기가 어려웠어요. 신입을 뽑아서 공부하면서 전문가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10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컴투스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이끄는 분들이 그때 당시 같이 공부하고 실패해가며 배웠던 친구들이에요. 그게 회사가 탄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두 번, 세 번의 실패를 거치고 지금 성공했을 때 내 자식을 시집 보낸 것처럼 기뻐요.
이: 문 대표님의 빙글, 비키 팀에는 다양한 인종, 문화의 멤버들이 있는데 어떻게 운영하시나요?
문: 한국사람들은 알아서 눈치껏 잘하는 게 중요한데 그런 것들이 잘 안 돼서 답답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한국적인 것을 알아냈고 답답함 속에서 저만의 스타일을 찾았습니다. 예를 들어, 당연하게 기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양성에서 생기는 오해가 없도록 직원들에게 미리 물어봐서 서로서로 이해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시간, 품을 들여 커뮤니케이션으로 풀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두 분 모두 여성이자 부부 공동 창업가이신데, 한국에서 여성 창업가로서 따로 느낀 점이 있으신가요?
박: 아이가 없었을 때는 결혼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하면 생각의 공유가 끊기는데 같이 움직이니까 그만큼 생각을 공유할 수 있고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게 단점이었습니다. 저녁에 침대에 누워서 새벽 4시까지 토론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틀린 생각이었고 낭비였어요. 그래서 집에서는 회사 얘기 하지 않고 쉬기로 하면서 해결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가 생기면서 발생했습니다. 아이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데 시간을 들일 수 없으니까요. 지금은 우리 가족만 챙기는 일 한 가지만 하면 되니까 편해졌어요.
이: 최근에 글로벌 진출을 노리는 창업팀이 많아졌는데 후배 팀들에게 당부하실 것이 있으신가요?
문: 글로벌 창업 시도가 많아야 하는 건 대한민국의 소망이고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입니다. 글로벌 진출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적합한 지원을 받아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도와야 할지도 많이 고민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 최근에 국내 창업 열풍이 굉장히 강한데 말리고 싶은 사례도 있나요?
박: 얻을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창업하고 실패하는 것이 할만하다고 생각하고 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창업하려는 사람은 학교 프로젝트에서나 작은 조직에서의 이끌었던 경험을 통해 ‘내가 과연 창업해서 리드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10명 조직에서 좋은 리더였던 사람은 10명 회사에서도 좋은 사람입니다. 100명 회사의 리더는 100명 조직에 적합한 사람이죠. 회사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여러 팀이 있는데, 팀 하나에서도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어요. 스스로는 잘 모르지만, 밖에서 보면 리더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요. 작은 조직 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사람이 창업하는 것은 잘되기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려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이: 문 대표님, 비즈니스에서 여성이 가지는 강점이 있나요?
문: 비즈니스에서 여성이 강점을 가지려면 여성이 강점을 가지는 아이템을 찾으셔야 합니다. 남녀를 떠나 내가 가진 스킬과 역량을 발휘할 비즈니스를 해야 합니다. 비즈니스에서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제외하고는 남녀가 아닌 개개인의 특성이 큽니다.
이: 박 대표님, 많은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 가정이나 회사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박: 사실 18년 동안 가정을 팽개치고 일하다 보니 재미있고 보람 있었습니다. 근데 어느 순간 지금 계속 이걸 하는 게 행복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몇 년은 가족에 집중하고, 조금 더 성장하고 나서 다시 기회가 되면 또 나오려고 합니다. 결국, 선택은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