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tech 기자들은 어디에?
2012년 12월 06일

스페인의 청년 실업율은 56%다. 스페인 청년 2명 중 1명은 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의 청년실업도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구직중인 한국의 취업희망생들에게 내가 추천해 주고 싶은 유망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tech 전문 기자/편집자 이다. 최근 들어서 내가 매일같이 느끼고 있는게 바로 한국에는 전문성을 가진 tech 기자가 없다는 점이다. (혹시 내가 몰라서 그럴지도 모르니 만약에 있다면 이름이랑 연락처를 좀 알려주세요).

우리는 컨텐츠의 홍수속에서 살고 있다. Tech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전자신문이나 디지털타임스와 같은 IT 전문 신문 (내가 보기에 전문성은 별로 없지만...), 조/중/동 메이저 신문의 IT 취재팀들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는 블로터, 비석세스 (공시: Strong Ventures는 비석세스의 투자사이다), 벤처스퀘어와 같은 tech 블로그들이 매일같이 수십개 ~ 수백개의 tech 관련 기사들을 만들어서 발행한다. 문제는 이 많은 기사 중 정말 시간을 내서 읽을만한 기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주로 미국의 tech 기사들을 먼저 읽고 한국의 매체를 접한다. 대부분 전날 미국의 기사들을 재탕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매체)에 의하면...."으로 대부분의 기사가 시작된다.


왜 한국에는 제대로 된 tech 기사들을 찾을 수가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제대로 된 tech 기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tech 기자들이 없고, 이들이 쓰는 제대로 된 tech 기사들이 없는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1. 대부분의 기자들은 한 분야만 파고 들지 않는다. 대부분 2~3년을 주기로 한 기자가 문화부/정치부/사회부/IT부 등 뺑뺑이 돌려진다. 한 분야를 제대로 알려면 최소 5년에서 10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한데 이렇게 단기간동안 뺑뺑이를 돌면 아주 얄팍한 지식만 쌓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성이 있고 통찰력이 있는 기사가 나올 수 있을까.

2. 물리적인 거리 문제도 있다. 기사의 생명은 originality와 희소성인데 이런 내용의 기사를 쓰려면 정보력이 매우 중요하다. Tech의 메카인 실리콘 밸리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서울에서 이런 정보력을 확보하는건 매우 힘들다. 하지만, 그나마 Facebook이나 Twitter와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3. 이게 가장 심각한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자들이 게으르고 생각이 없다. 진득하게 앉아서 생각을 한 후에 자신만의 생각과 객관적인 data를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들을 써야하는데 그냥 외국 기사들을 베끼는데에만 집착하다보니 수준 낮은 글들만 만들어 지는 것이다.

나는 여러 tech 매체 중 TechCrunch를 가장 즐겨 읽고 좋아하는데 - AOL에 인수 된 후에 quality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 대기업이나 정부의 눈치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기자들의 대담함과 진지하게 생각하고 data를 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이 맘에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내용에 대해서 (e.g. Facebook의 주가 하락)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신문 중 하나인 Wall Street Journal의 기사를 비교해서 읽어봐도 TechCrunch의 내용이 훨씬 더 깊은 통찰력과 조사/연구가 뒷받침되어 있는거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의 기자분들이나 미디어에 하면 모두 다 위에서 내가 말했던 이유나 다른 변명들을 한다. 본인들도 실리콘 밸리에 있고, TechCrunch의 기자들과 같은 대우와 권위를 갖을 수 있다면 높은 수준의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10년 이상 기자 생활을 하신 분들이 TechCrunch의 대학생 인턴 (19살) 보다도 통찰력이 없고 형편없는 글들을 쓸까...

나도 글을 꽤 많이 쓰는 편이다. 물론 나는 직접 tech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고, 많은 정보를 현지에서 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적합한 타이밍에 적절한 글들을 많이 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자'라는 명함을 가지고 글 쓰는걸 밥벌이로 하는 분들이 취미로 글을 쓰는 나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기사를 쓰는건 정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 그럴까?" , "다른 회사/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도 않고 고민도 하지 않으니까 좋은 글 보다는 인터뷰만 여기저기에 실리게 되는 것이다. 인터뷰가 나쁘다는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거는 답변이 아니라 질문들인데 뭘 알아야지 좋은 질문들을 할 수 있지. "어떻게 회사를 시작하셨나요?" 뭐 이런 류의 식상한 질문으로 만들어진 인물 인터뷰는 솔직히 이제 질린다.

2012년 9월 4일 Mashable에 "Gangnam Style! The Anatomy of a Viral Sensation [INFOGRAPHIC]"이라는 기사를 Sam Laird라는 미국 기자가 썼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기반으로, 1. 다른 유투브 뮤직비디오와 비교 2. 한국이라는 나라 3. 강남이라는 지역 4. 싸이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고 재미있게 비교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미국 기자가 썼어야 했을까? 싸이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한국의 tech 기자들은 왜 이런 재미있고 통찰력 있는 비교 분석을 하지 못했을까?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모든 정보와 data는 그냥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흔한 숫자들이다.

'싸이 요새 잘나간다'라는생각만 했지 이런식으로 분석을 해볼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관심도 없고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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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홍 대표는 한국과 미국의 네트워크와 경험을 기반으로 초기 벤처 기업들을 발굴, 조언 및 투자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스트롱 벤처스의 공동대표이다. 또한, 창업가 커뮤니티의 베스트셀러 도서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2’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스페인에서 보냈으며 한국어, 영어 및 서반아어를 구사한다. 언젠가는 하와이에서 은퇴 후 서핑을 하거나, 프로 테니스 선수로 전향하려는 꿈을 20년째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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