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스타트업 계를 움직일 수 있는 파워를 가진 사람만이 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왕의 귀환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2일차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마크 주커버그였다. 아니 어쩌면 그는 올해 디스럽트 행사의 전체의 주인공이었을 지도 모른다. 전날 제시카 알바의 세션을 들으러 온 사람의 수도 마크 주커버그를 보러 모여든 인파의 규모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5월 18일 기업 공개(IPO) 당시의 페이스북의 주가가 현재 반토막 나있음에도 불구하고 마크 주커버그는 밝은 표정으로 대중 앞에 등장해 확신에 찬 어조로 페이스북의 미션과 모바일 분야에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마크 주커버그의 대담 이후 페이스북의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4.58% 올라 단번에 20달러 고지를 탈환 했다. 그야말로 왕의 귀환이었다.
<무대에 등장한 마크 주커버그는 여유 있고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왕좌에 오르려는 사람들
하지만 디스럽트라는 행사 이름에 담겨 있는 의미는 다름 아닌 파괴적 혁신이다. 지금 테크 업계의 정점에 올라 있는 사람들도 한때는 주목 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과감하고 파괴적인 혁신을 통해 게임의 룰을 바꿔가며 오늘날 게임의 지배자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테크크런치에 자신의 서비스와 제품을 들고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내가 바로 조만간 새롭게 왕좌에 등극해 테크 업계를 지배할 인물이다’라는 야심을 조금씩은 품고 있을 것이다.
마크 주커버그가 무대를 내려온 뒤 바로 이어진 순서도 30개 팀이 디스럽트 우승 컵과 상금 5만불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스타트업 배틀 필드(battle filed)였다. 주커버그를 직접 알현으로 관객들이 받은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무대에 곧바로 올라 서야 하는 일이 무명의 도전자 스타트업에게는 가혹하다면 가혹한 일일 수 있었겠다. 하지만 스타트업들은 주눅 들지 않고 열띤 경쟁을 펼쳤다. (배틀 필드 최후의 생존자는 심사단의 최종 판정을 거쳐 내일 결정 될 예정이다)
변방의 도전자들
전 세계 혁신의 수도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테크 업계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다 보면 아마 가까운 미국의 여타 지역도 혁신의 변방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북미 대륙을 벗어난 남미, 유럽, 중동, 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얼마나 더 변방으로 여겨질까?
하지만 가장 파괴적 혁신은 주류의 관심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변방에서부터 시작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테크크런치 디스럽트에 다수의 스타트업 부스들을 내보낸 브라질, 이스라엘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번 디스럽트에서 잠재적으로 가장 위협적인 변방의 도전자들이었을 것이다.
한국 스타트업들의 도전
여덟 개 한국 스타트업들이 모여 있는 코리안 파빌리온은 이번 2012 테크런치 디스럽트의 파트너로 참여한 한국콘탠츠진흥원(KOCCA)에 의해 마련 되었다. 지난 7월 말 KOCCA에 참가 신청서를 낸 스타트업들 중에서 심사를 거쳐 뽑힌 여덟 개 스타트업(굿닥, 그린몬스터, 로드컴플릿, 모모, 블리스소프트, 위자드웍스, 써니로프트, 인사이트 미디어)들은 $2,995 상당의 컨퍼런스 참가 티켓 두 장과 현장 부스용 테이블 하나 그리고 항공료의 50%를 지원받아 디스럽트에 참여했다.
<한국을 대표해 세계 무대에서 자신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열정적으로 알리고 있는 코리안 파빌리온의 스타트업 참가자들>
하지만 디스럽트에 부스를 세운 한국 스타트업들이 모두 KOCCA의 지원을 받아서 온 것은 아니었다. 아이디어보브, 둡, Wniverse는 KOCCA의 지원 없이 직접 자비를 투입해 이번 디스럽트에 참가 했다. 어렵게 자비를 들여 참여했던 만큼 뭔가 얻어 가려는 의지도 컸을 것이고 국적 불문의 해외 스타트업들의 부스 틈바구니에서 더 치열한 경쟁도 경험 했을 것이다.
<KOCCA의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아쉽게 떨어져서 자비를 내고 참가한 둡(dooub)>
도전을 통해 한국 스타트업들이 얻은 것
아디이어보브 이인영 대표: “한국 스타트업들의 서비스 아이템이나 아이디어가 미국 스타트업들의 제품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저희 서비스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신 분들도 있었는데 그런 관심들로 인해 저희 서비스에 대해 더 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아이디어보브의 소셜 음악 서비스인 `보노사운드(BONOSOUND)`를 시연해 보이는 이인영 대표>
Wniverse 우한주 대표: 이곳의 유저들은 일단 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부스에 오게 되면 가만히 설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매우 공격적으로 질문해 처음에는 좀 당황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우리 서비스의 어떤 부분을 더 보강해야 할지 명백히 드러내 줬습니다.
써니로프트 하경재 디자인 총괄: 미국 스타트업들을 통해 사업을 굉장히 재미있게 접근하는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비즈니스는 뭔가 좀 진지하고 잘 될 것 같은 아이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본인이 흥미를 갖는 아이템을 갖고 재미있게 시도 해보고 발전 시켜 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신선 했습니다.
모모 박연수 글로벌 비즈니스 매니저: 어리게 보이는 미국 친구들이 스타트업을 하는 모습이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 왔습니다. 또 평소에 만나기 정말 어려운 VC들과도 오고 가며 가볍게 인사도 하고 회사와 제품을 소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았구요.
굿닥 홍기대 전략 담당: 미국은 의료 서비스 비용이 너무 비쌉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미국인이 한국에 와서 의료 서비스를 받고 관광까지 하더라도 그 비용이 미국에서 병원에 가는 비용보다 낮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가설일 뿐 진짜로 미국인들이 관심을 보일지는 확신 할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미국인들과 직접 부딪혀 보면서 그 가설을 검증하며 가능성을 봤습니다.
자신감, 신선한 자극, 가설의 검증, 소중한 만남 등을 통해 우리 스타트업들도 세계 수준에 한발 더 다가선 이번 디스럽트 행사였다.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에는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이번과 같이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들이 지속적으로 많아진다면 한국 스타트업들이 세계 정상으로 향하는 길도 그 윤곽이 점점 드러날 것이다. 갈 길이 멀지만 가지 못할 길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경험과 저력을 갖고 있다. 그 잠재력이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분출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 해서 길을 모색하고 닦아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