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 대부분은 블록체인이 무엇인지 몰랐고, 당연히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티머니와 같은 카드형 결제 단말기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버스를 타기 위해서 사람들은 승차권이나 토큰을 화폐 대신 많이 사용했다. 그런 시절에, 미래에는 버스 토큰이 전자화되어 어딘가에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 결제가 이뤄지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연동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아마도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2015년 초, 'KBS 파노라마' 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비트코인을 다룬 내용을 방영한 적이 있었고, 나는 당연히 그 다큐멘터리를 부모님께 보여드렸다. 그 프로그램은 비트코인이 과도하게 포장되던 때에 제작되어 굉장히 낙관적인 전망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부모님은 그런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이런 변화를 이미 여러번 겪었고, 그럼에도 사람들 대부분은 그러한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을 흘러다니는 글들 대부분은 블록체인을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열쇠인 것처럼 묘사한다. 그것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언젠가는 상당 부분 맞게 될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다르게 말하면 "아직은 아니다"라는 의미다. 인터넷 초창기에도 그랬고,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클라우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에 대해 똑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똑같이 대답할 것 같다. 불행히 아직도 지구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는 인터넷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고, 사물 인터넷까지 시야를 넓혀 살펴보면 인터넷의 '포텐'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글에는 블록체인과 자주 비교되는 인터넷 생태계를 예로 들어, 지난 40년간의 인터넷 발전사를 살펴보고, 왜 많은 학자와 사업가, 엔지니어가 블록체인의 가치를 대단히 높게 보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웹초창기와 지금의 블록체인 생태계 비교
인터넷의 발전은 인류의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정보를 찾기 위해 낭비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모든 곳에 정보가 존재한다. 또, 모든 것을 자동화하고, 지금도 이러한 작업의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인터넷의 이러한 발전은 우리의 지갑부터, 개인정보, 의료 등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진행되었다. 몇십년 전만 해도, 우리는 미술관에서 모르는 그림이 있다면 아버지의 서재로 달려가 두꺼운 백과사전을 뒤져봐야만 했다. 요즘은 이미지 검색이나 미술관의 도슨트 역할을 대신 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수많은 사람들은 인터넷과 연결되어 더 빠르고 쉽게 정보를 접하고 이를 활용한 서비스의 혜택을 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금융이나 의료 정보, 개인정보와 같은, '신뢰를 위한 데이터'만은 특정 관리자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보관하고 관리한다. 게다가 그것은 단일 컴퓨팅 시스템에서만 작동해 정상적이지 않은 과도한 데이터 유입에 대해 (DDoS 공격을 피하기 위해) 접근을 제어하고 사전에 검수, 차단하는 방법을 지난 수십년간 계속 사용했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이라는 비전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금융이나 의료, 사물 인터넷 분야에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환경에서 비롯된다.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이 시장에 등장하고 메가 트렌드로 각광받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측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분산 데이터 레이어'이고, 그 검증을 위한 첫 애플리케이션이 비트코인이다.
아마도 이야기의 흐름을 잘 따라온 독자라면 이메일과 비트코인이 굉장히 닮아 있다는 점을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이메일과 비트코인은 모두 P2P로 구성된 네트워크이고, 누구나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정해진 주소에 '메시지'나 '가치'를 전송할 수 있다. 누구도 이 시스템 전체의 흐름을 통제할 수 없다. 각각의 이메일 서버나 비트코인 채굴자는 참여자의 역할을 하면서 하부에 클라이언트를 두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생태계를 구성한다. 이메일은 정보의 아카이브인 인터넷을 사용하고, 비트코인은 '가치의 인터넷', 혹은 '인터넷 등기소'라고 불리는 블록체인을 근간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나는 새로운 기술 담론이 시장에 등장하면 항상 5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본다. 그 과정이 느릴수록 기술에 대한 적응도가 낮고 주류 사회에서 빠르게 이탈될 확율이 높다. 자신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부정, 즉 "이런 건 말이 안돼. 난 이 기술을 믿을수 없어."라고 말하는 단계다. '뉴스위크'는 (다른 업체에 단돈 1달러에 매각되기 15년 전인) 1995년에 여러 지면을 할애해 사이버 보안 전문가인 클리포드 스톨(Clifford Stoll)의 특집 기사를 게재했다. 스톨은 한마디로, 웹을 "거르지 않은 데이터의 쓰레기 더미"라고 정의했다. 그는 신뢰할만한 전문가의 식견이 '어중이 떠중이같은' 정보들에 밀려 사라지는 것에 대해 불평을 쏟아내고, 아래와 같이 예측했다. "웹사이트는 결코 신문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이러한 예측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어디서 읽고 있는가? 블록체인 초창기에 많은 경제학자들이 비트코인은 결코 정부가 태환을 보장하는 법정 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화폐로써 쓰일수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두번째는 분노다. 이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틀렸을리 없어. 뭔가 음모가 있을거야."라고 이야기하며 외부의 요인을 부정적으로 해석한 채 현상을 평가하는 데 사용한다. 앞서 이야기한 스톨은 '뉴스위크'를 통해 이런 주장을 펼쳤다. 그는 '가상의 커뮤니티와 그룹'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 코웃음을 치며. 누구도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을 믿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온라인을 통한 물품의 소매 거래에 대해서는 더욱 날선 비판을 했는데, 웹에서는 실제 사람과의 접촉이 없어 판매 도구로 활용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지역의 쇼핑몰에서 오후에 판매되는 양이 한달 동안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양보다 많다고 언급하면서, 믿음직한 판매원이 물건을 권하지 못하는 온라인에서는 누구도 물건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당시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와 같은 젊은 기업가들은 조금 다른 주장을 펼쳤다. 인터넷이라는 담론은 정해진 IP 주소로 데이터를 손실 없이 보내는 기술(TCP/IP)에 근거해 나타났으므로 그 자체로서 특정 기업이나 국가에 종속되지 않는 열린 생태계이고, 그래서 미래에는 '퍼스널 컴퓨터'의 폭발적인 확산과 맞물려 네트워크도 함께 발달할 것이며 이는 쇼핑에서부터 콘텐츠, 미디어 감상, 교육, 정보 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예측 실수의 사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한 5년 전에도 준비가 부족했던 국내의 핸드폰 제조사들은 모바일 생태계를 준비 하는 대신 스마트폰과 피처폰 사이의 기능적인 간극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스마트폰은 비싸기만한 쓸모 없는 장난감이고 휴대폰 시장 체제를 재편하기 위한 미국의 외교적 압박 도구라고 폄하했다.
세번째는 타협, 달리 말해 현상을 유예시키기 위한 합리화 과정이다. 이는 주로 기술적 성숙도가 낮다고 섣불리 평가하거나, 남들도 아직 도입하지 않은 기술이라는 식의 수동적 방어 기제로 나타난다. 실제로 기술 낙관론자들도 이러한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주로 "이러한 담론은 너무 새로운 기술이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되곤 한다. 한국 사회가 인터넷 초창기에 비슷한 이유로 초고속망을 준비하지도 않고, 이메일을 만들어주지도 않았다면 오늘과 같은 IT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
네번째는 절망, 또는 후회다.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상실감에 무기력하게 된다.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할것이다. "내가 예전에 말이야. 인터넷 버블때 말이지...." 그리고선, 자신이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슬퍼하고 우울증에 시달린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는 수용. 죽음을 받아들이듯 기술에 대해 실제로 순응하는 단계다.
이런 단계는 심리학에서 표현하는 '임종을 대하는 자세'와 일치한다. 너무 극단적인 비유일 수도 있지만, 나는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혁신할때, 그 사회적 파장과 충격은 전쟁과 맞먹는다고 믿는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전쟁보다 더할 수도 있다. 엄청나게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일자리가 등장한다. 가치 체계는 완전히 재편되고, 주류 사회에 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적응을 강요당하게 된다. 다만, 그러한 일들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겉보기에 평화롭게, 너무 자주 발생하다 보니 우리가 반응하는 수준이 낮아진것 뿐이다.
새로운 생태계가 등장했을 때, 남들이 보지 못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정확히 예측한 사례가 훨씬 드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생태계의 변화에 따라 사회의 발전을 기민하게 예측하고 이를 혁신으로 이끌어내는 사람들이 혁신가로 칭송을 받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적어도 스톨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잡스나 빌게이츠, 마크 안드레센과 같은 혁신가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살펴보고, 이를 같은 방법으로 곱씹어봐야만 한다. 사이버 보안 전문가나 경제학자들이 인터넷의 현재 모습이나 비트코인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살폈던 것과 달리, 혁신가들은 그 기술적인 가치와 생태계를 모두 살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터넷의 가치를 두고 우리는 흔히 '정보의 바다', 또는 '글로벌 데이터 아카이브'라고 표현한다. 인터넷은 일상적인 정보나 데이터를 담아두고 꺼내보는 데 사용된다. 블록체인은 그 가치를 표현할 때 주로 '인터넷 등기소'나 '신뢰 네트워크'라고 불린다. 즉, 블록체인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은 모든 종류의 데이터 분야를 아우르지만, 실제로 강점이 있어서 기꺼이 블록체인을 통한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은 신뢰나 가치를 저장하고 꺼내어 쓰기 위한 시스템 분야다. 온라인 부동산 청약이나 장외 주식 거래, 의료 정보 교환, 모바일 인증, 전자 투표 등과 같은 신뢰를 요구하는 프로세스에는 빠르게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 가는 중이다.
기업들은 왜 블록체인기반의 Digital formation에 열광하나?
궁극적으로 블록체인이 해결하는 문제는 온라인상의 ‘신뢰’의 문제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개방된 환경에서도 누구나 믿을 수 있는 시스템을 소유권에 대한 분쟁 없이 구축할 수 있는가?" 이러한 명제는 기존의 폐쇄된 환경에서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점차 개방되고 모든 사물들이 긴밀하게 연결된 초 연결 사회에서는 극도로 중요해진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측면에서 몇가지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블록체인은 네트워크화된 무결성을 제공한다. 인터넷상의 정보는 위변조되기 쉽다. 특히 분산 DB에서는 이러한 데이터로 인해 이중 지불등의 데이터 중복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데, 블록체인은 일시적인 지연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관리자의 마스터에 대한 지정 없이도 여러 DB간에 자동화된 무결성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신뢰의 요소 중 하나인 데이터 무결성을 제공한다
컴퓨팅 자원을 병렬로 구성할 수 있다는 특징도 큰 장점이다. 자율 주행차를 관리하기 위한 스마트카 플랫폼을 특정 회사나 국가에서 만들어 제공한다면, 아마도 소유권과 감사 문제로 결코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국경과 제약이 사라진 인터넷 기반의 경제 체제에서 '공통의 신뢰'를 제공할 수 있는 조직이나 기관은 많지 않다. 해외 직구만 하더라도 국경을 하나만 넘어도 완전히 새로운 제도와 선결 조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더구나 미래에는 모든 디바이스들이 정보를 전달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주체가 될 것이다. 기존 체계에서는 이러한 디바이스를 효율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그때마다 새로운 중앙화된 제어 주체가 필요하고, 물리적으로도 엄청난 규모와 수준의 데이터 센터, 라이선스 체계, 감사 기구를 그때마다 새롭게 세계 곳곳에 구축해야만 한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는 이런 문제가 소프트웨어와 이를 통한 컴퓨팅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만으로도 해결된다.
블록체인은 보안기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안 문제에 있어서도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알다시피 초기부터 지금까지 인터넷에는 많은 사고들이 발생했다. 해킹, 사기, 피싱, 스팸, 중간자 공격, 멀웨어, 랜섬 웨어 등 셀 수도 없을 정도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다양한 보안 기술과의 결합을 통해 더 나은 방법을 찾도록 도와줄 수 있다. 나카모토 사토시는 블록체인에 '공개 키 기반 구조(PKI)' 기술을 접목해 비트코인 거래를 암호학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보안 기술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사용 중인 안정성이 검증된 기술이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는 가치가 없는 서비스는 곧바로 사장당한다. 고객 경험과 보안을 둘 다 담보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시장에 파괴적으로 적용된다. '멀티 시그니쳐'나 'HD월렛', '오픈 어셋' 등 다양한 표준이 등장하고, 또 가치를 입증하지 못해 사라지고 있다. 반대로, 오늘날 국내 보안 시장은 '담합'의 모습에 가깝다. 보안 모듈의 우수성이나 사용자 경험의 편리함보다는 라이선스나 영업력이 제품의 가치를 결정한다. 이는 기술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원들이고, 그 비용도 고스란히 고객에게 전가된다. 이런 시장에서는 마케팅이나 인증을 취득하는 일에 자원을 쓸 뿐이며 기술적인 진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인터넷 초기에는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쟁 우위에 섰지만, 지금은 더 잘 만들고, 더 높은 접근성,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한다. 분명히 요즘의 워드프레스로 만드는 홈페이지는 과거 몇억 원을 주고 만든 홈페이지에 비해서도 나은 면이 있다.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 고객이 좋은 서비스를 더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마지막은 접근성(포괄성, inclusion)의 이슈다. 모든 네트워크 시스템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시장은 참여자들에게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하고 인터넷이나 메신저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더 가치있는 네트워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인터넷 기반의 금융이나 의료, 공공 등의 신뢰 시스템은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제 3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여전히 은행 계좌를 갖고 있지 못하며 공인인증서가 없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인터넷 기반의 경제 체계에도 참여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익의 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 생태계는 이런 규제나 진입장벽의 문제를 전적으로 선택의 영역으로 끌어내린다. 인터넷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조금 더 쉽다. 인터넷은 도박이나 포르노와 같은 나쁜 일도, 미술품 감상이나 교육과 같은 선한 일도 누구나 더 쉽고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런 행위의 선택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고, 책임이 따른다. 블록체인은 기존의 진입 장벽을 더 많은 분야에서 낮추도록 만든다. 비트코인만 하더라도 은행 계좌나 시민권, 공인인증서와 같은 어려운 제도적인 장치 없이도 누구나 인터넷상에서 가치를 교환하고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실제로 제 3 세계로의 소액 송금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가에 대한 기부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비트코인이 사용되고 있으며, 블록체인이 주는 이런 특성은 궁극적으로 금융시스템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신뢰 자원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어 더 다양한 생태계의 등장을 촉진한다. 이는 성적, 경제적, 인종적 평등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경제 체계의 완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아젠다이다.
이번 글을 통해 초창기 인터넷의 모습과 블록체인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나는 사실 '블록체인'이라는 워딩 자체가 절대성을 갖게 되는 것을 경계한다. 사실 분산 네트워크에서 신뢰 자원에 대한 분쟁 없이 자원을 거래하려는 시도는 비트코인(그리고 블록체인)이 처음은 아니다. '인증서 투명성(Certificate Transparency)과 같은 노력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있었고, '이캐시(ECash)'나 '디지캐시(DigiCash)'와 같은 작은 성공도 있었다. 거의 1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진화한 산물이 하필이면 비트코인이고, 그 근간의 명칭이 어쩌다 보니 블록체인인 것뿐이다.
인터넷이 아직도 흡수하지 못한 영역이 무수히 많듯, 블록체인도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 초창기에 법률가인 피터 휴버(Peter W.Huber)는 '컬럼비라 저널리즘 리뷰'에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 의한 편리성의 증대는 정부의 인터넷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며 조지 오웰이 말한 빅브라더의 사회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전에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 무한한 긍정이 위험하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개화기에 쇄국 정책을 펼치는 꼴과 다를 바가 없다. 기술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빠르게 준비하고 행동하려면, 먼저 기술을 어떠한 형태로든 수용해야만 한다. 아마도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신기술이나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 이에 대한 규제 프리존이나 기술 검증을 위한 중간 단계를 만드는 등의 정책을 통한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편집자주: 2013년,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에서 일했던 컴퓨터 엔지니어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가디언(Guardian)'지를 통해 통화감찰 기록과 감시 프로그램 등 국가안보국의 다양한 기밀문서를 공개한 사건이다.
Image Source: CC BY-SA Davidstankiewicz, Jeff Ogden (W163), BTC Keych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