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전후로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적잖은 이들이 영향을 받았다. 산업 측면에서는 닷컴 열풍이 있었고, 개인에게는 PC 통신부터 넷스케이프를 쓰던 인터넷 환경까지 여러 변화가 있었다. 한국에는 심지어 인터넷정보검색사라는 자격증도 생겨났다. 이러한 크고 작은 변화 가운데 미국과 한국에서는 인터넷 열풍을 실감할 기회가 하나 있었다. 바로 대선이었다. 한국에서는 2002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0년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을 통해 힘을 얻었고, 미국에서는 2004년 하워드 딘(Howard Dean) 현 민주당 의장이 대선 후보에 나섰을 때 인터넷의 힘을 얻었다. 당시 하워드 딘을 둘러싼 언론의 악의적인 프레임 때문에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이라는 용어가 주목을 받는 등의 일이 있었지만, 그만큼 인터넷상에서의 정치적 논의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제롬 암스트롱(Jerome Armstrong)은 2000년 초반, 그 현장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64년생인 그는 자신의 20대 시절인 1980년대에는 그린피스(현재까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세계적인 환경 단체)에 몸담으며 환경 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미국의 평화 봉사단에서 일했다. 사실상 ‘활동가’에 가까운 포지션을 지니고 있던 그가 정치의 영역으로 뛰어든 것은 2001년 'MyDD'라는 블로그를 열면서부터다. 마이디디(MyDD, My Due Diligence)를 통해 그는 최초의 정치 블로거 중 한 명이 되었고, 최초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기획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이러한 면은 하워드 딘의 대선 기획이나 방향이 일치했고, 때마침 하워드 딘의 선거특보였던 조 트리피(Joe Trippi)는 (‘혁명은 TV로 중계되지 않는다’는 책으로도 유명하다) 좀 더 확실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즉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풀뿌리 선거운동을 구성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며 그를 대통령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롬 암스트롱은 자신과 비슷한 지점을 공유하고 있던 마코스 물릿사스(Markos Moulitsas)와 함께 하워드 딘의 선거 운동을 도왔고, 함께 정치 컨설팅 파트너십을 맺기도 했다. 마코스 물릿사스는 제롬 암스트롱을 블로그파더(blogfather)라 부르며 2002년 '데일리코스(Daily Kos)'라는 정치 블로그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함께 2004년 '블로그팩(BlogPAC)'이라는 위원회를 만들어 인터넷상에서의 정치적 액션을 다듬어갔다.
이 지루한 이야기를 왜 했냐고? 2005년을 이야기할 차례이기 때문이다. 2005년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바로 그가 현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중 하나인 '복스 미디어(Vox Media)'를 세웠던 해이다. 제롬은 단순히 정치 블로그를 열고,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늘 유명세보다는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가져온 정치적 신념을 어떻게 하면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확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복스 미디어는 제롬, 테일러, 마코스(제롬를 블로그파더라고 부르는 이) 이렇게 세 사람이 공동 창업했으며 제롬는 그간의 자신의 경력을 활용해 매체 공신력을 키우고 복스 미디어가 뾰족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이끄는 등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인 움직임에 있어서 끊임없이 좋은 리더십을 발휘했으며 그러면서도 철저히 풀뿌리만 강조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 컨설턴트로서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이자 민주당 중진급 의원인 셰로드 브라운(Sherrod Brown)의 2006년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마크 워너(Mark Warner) 상원의원과도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아무나 함께한 것은 아니다. 제롬 암스트롱은 우리로 치면 좌파에 가깝다. 말이 좌파지, 리버럴이 다른 한쪽에 있는 미국에서는 어쩌면 급진좌파에 해당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신념을 현실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치인과 호흡을 맞췄고, 2012년 대선 때는 자유당(의원 하나 없는 원외 정당이지만 상대적으로 인지도나 영향력 때문에 제3당으로 분류된다) 후보와 호흡을 맞춰 여론조사에서 3~4% 지지라는 의미 있는 지표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과정과 결과는 인터넷상에서의 논의나 움직임을 실제 엘리트 정치와 연결하는 지점을 만들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대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좀 더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그리고 동시에 인터넷에서 좀 더 건강한 논의를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이다. 더는 오프라인 캠페인이나 위원회 구성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그는 온라인 미디어를 설립하고 운영했다. 그는 정치에서도 테크놀로지의 필요와 중요성을 누구보다 빠르게 인지했으며 2007년에는 ‘오픈 소스 정치’를 아젠다로 제시하며 변화하는 웹 형태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고민했다.
이제는 인터넷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선거나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조직적으로 댓글 조작까지 해가며(정치 말고도 수많은 댓글 조작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제롬의 비전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한국의 정치 환경 변화에도 많은 이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으며 참여하려고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치 블로그 역시 단순히 신념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고속 인터넷 속도와 반대로 한국에도 정치 블로거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몇몇은 기성 언론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미디어로서 현명하게 유지 모델을 만들고 운영에 있어 감각적인 모습을 드러내는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정치 블로거나 뉴미디어들이 빠르게 기성 언론의 자리를 대체할 만큼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비전과 철학이 탄탄했으며, 멀리서 관망하는 것 같았지만 가까이 있는 현실에서는 긴밀하게 행동할 수 있을 만큼 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