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휴가 시즌이 되면 SERI나 KT경제연구소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읽어야할 책 리스트를 발표한다. 이런 리스트가 양서 목록임에는 틀림없지만, 너무 트렌디해서 깊이가 없는 책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경영자는 최신 유행하는 경영이론에 관심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자체가 하나의 산업이다보니 인위적인 트렌드가 형성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실제 필자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이 책은 읽을 만하다라고 생각한 책들을 한 번 나열해보고자 한다.
실용서적들은 실용적이기때문에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20대에 해야할 일 몇십가지, 뭐만 하면 성공한다는 책들은 인생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자판기 인스턴트커피가 아니다. 또한 세스 고딘, 말콤 글래드웰, 토마스 프리드만등 현대 경영계에서 추천하는 도서들은 명저임에는 틀림없으나 20년 이상의 시간동안 검증되지 않은 책들이기에 추천 목록에서 제한다.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경영 관련 책들은 다소 따분한 책들이며, IT와 관련된 책들은 논쟁이 될만한 소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유의하기를 바란다.
고전
1. 군주론 : 마키아벨리
회사를 경영하는 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일은 아니다. 정치판에서 머리를 굴려야되고, 가끔은 눈물겹게도 사람을 해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부도덕한 옆 회사가 더 잘나가는걸 멀뚱히 지켜봐야되는 경우도 있다. 경쟁 회사에서 자료를 요청하여 성심성의껏 대응했더니 뒤통수를 맞는 일도 있고, 머리나쁜 직원이 숫자나 도표도 이해못하는 자신의 능력을 리더의 잘못으로 돌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실 역사를 뒤돌아보면 국가를 파괴시키고 민중을 고통받게하는 반란은 언제나 가장 지도자가 아끼는 부하에게서 일어난다.
이런 현실적 문제를 인간의 본성의 문제로 환원하여 답을 찾고자 했던 자가 마키아벨리다. 실제로 이 책은 많은 비판이 쏟아지는 논쟁의 책이지만, 오백년이 넘는 논쟁속에서도 수도 없이 읽힌다는 점에서는 명저 중에 명저임엔 틀림 없는 일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어떻게 사람을 다스려야 개인과 조직의 안녕을 추구할 수 있는지 깊게 연구했다.
"사람을 다룰 때에는 다정하게 대하거나 철저히 짓밟아라",
"운이 좋아 군주에 오르게 된 자는 쉽게 성공하였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사랑받기보다는 사람들이 두려워하게 하라"
와 같은 생각들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현대 IT업계에 완전히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으며 후에 소개할 HP Way 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조직안에서 경영자가 다루어야할 인간 본성의 문제에 대하여 사고의 구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매력이 있다.
2. 손자병법 : 손자
전략, 유닛, TO 등 경영의 많은 단어들은 군대에서 탄생했다. 그만큼 경영학과 군사학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경영학은 기껏해야 몇 백년밖에 되지 않은 학문이지만 병법은 수천년을 내려온 학문이라는 점이다. 또한 군사 작전이라는건 자료가 체계화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다보니 한 회사 수준의 전략 연구보다 수준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점때문에 병법은 경영을 고민할 때에 상당한 참고가 될 수 있다.
손자병법은 경영자가 참고할만한 가장 뛰어난 병법서라고 할 수 있다. 조직의 설립부터 지도자의 역할, 그리고 전투의 의미까지 경영자가 심도있게 새겨야할 많은 결구들이 담겨있다. 손자가 전쟁에 의미에 대하여 고민한 부분은 경영상의 경쟁의 의미에 대입할 수 있고, 지형에 대해 언급한 것은 기업 외부상황의 위기와 기회로 대입하여 해석할 수 있으며, 장수의 자세에 대한 설명은 기업 임원의 자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오프라인상에서도 많은 손자병법 해설서가 나와있는데, 사실 결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인터넷에서 손자병법 검색만으로도 충분하다.
손자병법과 비견될만한 서양의 전술서로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있지만, 오히려 너무 자세한 서술덕분에 독자의 상상력이 제한되는 측면이 있다.
경영 일반
1. 짐 콜린스 시리즈 : Build To Last(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습관) , Good to Great(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How the mighty fall (위대한 기업은 어디로 갔을까).
현대 경영학을 말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짐 콜린스다.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들에서 매우 위대한 통찰들을 이룩해냈다.
'회사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필요없는 일을 하지 않는 일이다',
'회사의 아이템은 중요하지 않다. 누가 그 회사에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등, 짐 콜린스는 경영학 역사상 유례없는 통찰의 깊이로 경영의 역사를 뒤집어 놓았다.
특히 Build To Last (국내명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어떤 회사가 성공의 유전자를 타고나는지에 관한 책이다. 수많은 경영 책들 가운데 창업과 관련되서 제대로 다루고 있는 몇 안되는 책이기에 창업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꼽는다.
2. 데이빗 패커드 : HP Way
이 책은 매우 따분하기 짝이 없고, 그 때문에 국내 번역본도 없다. 심지어 아마존의 평점은 별 네개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짐 콜린스가 선정한 Collins Business Essential 시리즈의 핵심 도서 중 하나이며, 조직 내부의 상호신뢰를 깊게 고민한 초창기 HP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에는 별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신화나 없다' 라던가,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라던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와 같이 뭔가 있어보이는 방식 대신, 데이빗 패커드는 단순히 'HP 방식' 이라고 정말 단순하게 책 이름을 지어버렸다. 보통 자서전을 읽으면 '이게 답이다! 너희도 나처럼 살아야돼!' 라는 느낌을 주지만 이 책은 '삶에는 수많은 방식이 있다. 그리고 난 이렇게 살았다.'라는 느낌을 준다. 이런 결코 넘을 수 없는 아우라 앞에선 조용히 그 사람이 과연 어떤 길을 걸어왔기에 그 경지에 이르른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는 법이다.
책 내용의 상당수는 독자에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때문에 실제로 회사를 경영하는것이 데이빗 패커드에게는 그냥 일상 생활이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회사의 성공을 이야기하면서도 독자에게 성공의 기쁨이나 열정을 전달해주려는 의도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데이빗 패커드는 화려한 파티보다는 구도(求道)의 자세로 회사를 운영한게 아닐까. 그렇다면 회사의 상장이나 제품의 성공도 매일매일 하는 일의 당연스런 결과물이니까, 떠들썩하게 신나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국 이 책에서는 눈을 현혹시키는 최신 경영이론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성실이 가져다오는 과실을 믿은 데이빗 패커드의 위대함이 묻어나온다.
3. 톰 피터스 : 초우량기업의 조건
톰 피터스가 다작하는 작자는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 왜 그가 경영 구루라고 불리는지를 알게된다. 합리주의나 계량화를 배척한 그의 통찰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경영자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다. '자율과 기업가정신을 가져라', '고객, 직원, 지역사회, 그리고 마지막이 주주다', '엄격한 명령계통은 필요 없다' 등, 요즘에도 성공한 미국 벤쳐기업들이 가지는 공통적 특징이 30년 전의 이 책에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은 경영자가 읽어야 할 최소한의 책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경영자들이 장밋빛 장기계획에 현혹되고 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톰 피터스는 이와는 반대되는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지금도 많은 회사에서는 R&D 계획서에는 추정할 수도 없는 ROI를 적어야하고 경영자는 점진적인 조직 역량의 향상 대신 정리해고나 기적과 같은 제품 출시와 같은 커다란 '한탕'으로 자신의 명성을 높이려고 한다. 그렇기때문에 실행이 중요하고, 관리를 최소화하고, 현장을 중시하라는 그의 말은 반드시 귀담아 들을 필요성이 있다.
4. 크리스텐슨 : 혁신 기업의 딜레마, 미래기업의 조건 등
많은 경영자들은 대기업에 대해 주로 연구한다. 경영학도 하나의 산업이고, 돈은 대기업이 갖고있다보니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대부분의 책들은 '점진적 향상'의 관점에서 산업을 바라본다. 예를들어 일본 1위의 도요타가 어떻게 세계1위로 올라갈수 있느냐와 같은 주제가 아무래도 더 돈이 되는 법이다. 유져가 5만명쯤 되는 초기 페이스북이 컨설팅 의뢰를 하진 않을테니까.
이런 이론들은 벤쳐회사와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크리스텐슨 교수는 '게임체인지'의 관점에서 산업계를 바라보는 인물이다. 그는 실제로 벤쳐업계에서 종사한 경력이 있으며, 때문에 어떻게 작은 회사가 큰 회사가 될 수 있는지, 갓 창업한 회사가 수년 후에 어떻게 큰 대기업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에 대해 말한다. 특히 '미래기업의 조건'은 책은 필자가 회사를 경영하면서 사실 유일하게 현실적 도움을 준 경영 전략서이다.
IT 분야
1. 스티브 맥커넬, 톰 드마르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생존 전략, 쾌속개발 전략, 피플웨어, 슬랙 등
만약 당신이 소프트웨어를 전공하지 않은 CEO라면, 스티브 맥커넬이나 톰 드마르코는 앞으로 당신이 모셔야할 교주와도 같은 존재다. 컴퓨터 앞에서 앉아만 있는 공돌이들 사이에서 명문장가의 탄생이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99%의 프로젝트는 서쪽으로 간다. 왜 가는지 모르는 채, 그냥 간다. 오늘도 많은 회사는 산으로 가는 개발외주에 머리를 썩히고, 개발팀장은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개발자들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경영자들때문에 화가 나 있다. 스티브 맥커넬이나 톰 드마르코는 이런 현상 덕분에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프로젝트 매니져의 입장에서 개발을 성공시키는 방식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전략 컨설던트적 관점이 어떻게 소프트웨어 회사를 망치는지 또한 다루고 있다.
다만 이들이 주로 컨설팅하는 회사들은 대기업이므로, 벤쳐회사에 100%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유의하고 읽어야 한다.
2. 조엘 스폴스키: 조엘 온 소프트웨어, 똑똑하고 100배 일 잘하는 개발자 모시기 등
행사장에서는 마이크를 든 사람이 왕이고, 블로그에서는 키보드를 든 사람이 왕이다. 조엘은 IT 업계의 진중권과 같은 존재다. 그의 블로그에서 그는 수많은 소프트웨어의 실패에 관하여 논하며, 상대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물이라도 독설을 내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조엘의 대표적 저서인 조엘 온 소프트웨어는 많은 경영자가 어떤 바보같은 실수를 하는지, 그리고 또한 개발자가 얼마나 멍청한 존재인지에 대해서 언급한 상당히 유머러스한 책이다. 이 책에는 실제로 SW 현장에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보게된 수많은 바보같은 사례들이 담겨있으며, 실제로 여기있는 많은 사례들은 여러분의 주변에서도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by 보통개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