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디지털 정보가 인터넷에서 되도록 자유롭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정보가 자유롭게 공유될 때, 비로소 모든 이용자들의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는 왜 현실 세계의 상품과는 달리 자유로운 공유가 허락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설득력있는 답변을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만약, 인터넷에서 저작자들의 권리가 전혀 보호되지 않는다면, 창작자들에게 창작의 동기를 부여하는게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능력있는 창작자들의 권리를 외면한다면 인터넷은 오류투성이의, 전문성없는 정보만 넘쳐나는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에는 그로 인한 피해도 고스란히 이용자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한참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는데, 얼마전 Leicester 대학 Michael Filby 교수가 저술한 Regulating File Sharing : Open Regulation for an Open Internet 이라는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머리속을 맴돌았던 의문들에 대한 참조할만한 답변이라는 점에서, 이 자리를 빌려 그의 논문을 소개할까 한다.
저자는 논문의 도입부에서 디지털 저작권을 다루는 4가지 접근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는 미국적 보수주의(American Conservatism)라고 불리는 접근방식이다. 미국적 보수주의는 지식을 토지나 물건처럼 순수한 자산으로 취급한다. 두 번째는 영국 지식 경제(UK Knowledge Economy)라고 불리는 접근방식이다. 이 입장은 일단 지식을 자산으로 여기되, 이차적으로는 공공자원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지식과 관련한 회사의 이익을 중시하면서도 소비자의 이익을 고려하고 있다. 세 번째는 학습사회(Learning Society)라고 불리는 접근방식이다. 영국 지식 경제와 유사하지만 지식을 일차적으로는 공공자원으로 취급하되, 이차적으로 자산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마지막은 사이버 사회주의(Cyber Socialism) 접근방식이다. 사이버 사회주의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규제는 완화되거나, 완전히 폐지되어야 하며, 디지털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사이버 자연상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사이버 자연상태(the state of cyber nature)란 사회계약론에서 말하는 국가 성립전의 자연상태(the state of nature)를 응용한 표현이다. 홉스나 로크같은 학자들은 국가의 성립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사회계약론을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극단적으로 요약하자면, 사회는 원래 자연상태에 있었는데, 사회의 구성원들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동의했기 때문에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홉스에 따르면, 사회계약이 성립하기 전까지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암울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구성원들이 사회계약을 체결하고 국가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반면, 로크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자유롭게 행동하고, 자신의 소유물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자연상태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성원들이 국가를 설립한 이유는 국가를 통해 재산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산에 대한 보호가 필요했던 이유는 재산이 무제한적이지 않고, 항상 공급에 한계가 따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명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국가에 의한 국민의 규제가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사회구성원들이 국가의 설립과 국가에 의한 규제에 동의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국가가 국민을 규제할 필요는 공급부족이라는 물리적 재화의 속성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Matrix Code, phto by David Asch on Flickr BY-NC-ND)
그럼, 이제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낮은 비용으로 정보가 공유될 수 있으며, 아무리 복제를 해도 원본의 품질이 저하되지 않기 때문에 공급부족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없다. 또한, 인터넷 이용자들은 국가가 사이버 스페이스를 규제해도 좋다고 동의한 바 없다. 결국,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국가도, 국가에 의한 규제도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이런 단순한 설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몇 가지 문제가 남게 된다. 첫번째는 국가에 의한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어떻게 사이버 스페이스가 혼란스러운 무정부주의 상태에 빠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자율규제를 제시하고 있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자율규제가 잘 작동하지 않지만,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 위키피디아처럼 자율규제가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순수하게 저작권의 관점에서 봤을때 무정부주의 상태란 이용자들이 저작권자의 동의도 얻지않고, 저작권자에게 어떠한 경제적 이익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저작물을 공유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결국 사이버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이버 사회주의의 이상 자체를 무정부주의라고 규정하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모순적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다음으로, 모든 정보가 자유롭게 무료로 배포될 수 있다면, 창작자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동기를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도 발생한다. 저자는 네트워크 효과, 샘플링 효과, 광고 후원 모델 등과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뮤직비디오가 무료로 배포돼서 가수나 작곡가가 전혀 돈을 벌지 못하게 되더라도, 뮤직비디오가 널리 배포되면 가수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고, 콘서트 티켓이 더 많이 팔리게 되므로 결국 다른 경로를 통하여 손실이 보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적 보수주의와 사이버 사회주의 사이에서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CCL(Creative Commons license)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이 논문을 작성하였지만, 필자는 왜 인터넷 영역에서는 국가의 규제가 철폐되거나 최소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념적 토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터넷에 대한 국가의 규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점은 규제의 내용이 어느정도 수준인지가 아니라, 그와 같은 규제가 현실적으로 필요한지, 이용자들이 그와 같은 규제에 동의하였는지, 그러한 규제는 과연 전체 이용자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일 것이다.
우리는 항상 잊고 살지만, 헌법에 규정된 것처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국민이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철회하는데 동의한다면, 당연히 국가의 규제는 철폐될 수 있으며, 철폐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