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이라는 건 사실 집합명사가 아닐까, 그런 의심을 남몰래 해왔습니다. 예컨대 '가족'이나 '국민' 같은 말처럼요. 실은 내 속엔 '나1' '나2' '나3'처럼 여러 명의 내가 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왜, 문득 새로운 나를 목격하곤 놀랄 때가 있지 않나요. 아니 내가 이런 면이 있었다니,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나도 모르는 내가 튀어나올 때, 그 낯섦은 당황스럽습니다. 긴장해서였을까, 아니면 자격지심이었을까. 때론 불쑥 나타나 훼방을 놓는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나' 때문에 후회의 밤을 보내기도 합니다.
<23아이덴티티>의 케빈(제임스 맥어보이)에게 인격이라는 말은 집합명사가 맞습니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한 몸엔 스물이 넘는 인격이 살고 있습니다. 데니스, 제이드, 헤드윅, 패트리샤, 오웰... 여러 인격들은 마치 의자 뺏기 놀이를 하듯 신체를 번갈아 차지합니다.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 됩니다. 인격에 따라 성격, 지능, 취향이 모두 다르고 심지어 신체 능력도 변합니다. 예컨대 헤드윅이 주도권을 잡으면 9살 소년이 되죠. 당뇨병이 있는 제이드가 나오는 날엔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욕실의 칫솔 23개가 보여주듯, 인격들은 저마다 각자입니다.
흥미로운 설정이죠. 특히 인격에 따라 지능과 신체의 능력이 변한다는 영화적 설정이 참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알고 보니 이 시나리오는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쓰인 것이었습니다. 1955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빌리 멀리건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24개의 인격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분열 장애가 생긴 배경은 어린 시절 양아버지로부터 당한 성적 학대였습니다. 빌리는 수차례 강도, 강간, 납치 같은 범죄를 저질러 기소됐지만, 조사과정에서 매번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정신분열 진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분명 저거 다 연기일 거야, 라고 의심한 수사관과 의학 진은 결국 그의 다중인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니얼 키스라는 작가는 2년간 그를 취재해서 '빌리 멀리건(The Minds of Billy Milligan)'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는데요. 책에 따르면 영화에서처럼 그의 인격들은 개별적인 독립체였습니다. 주도권을 차지하는 인격에 따라 성향이나 지능이 변한 것도 실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중퇴 학력자였던 그는 아서라는 인격이 될 때면 갑자기 아랍어와 아프리카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곤 했습니다. 물리학, 의학, 수학적 능력도 전문가 수준이었습니다. 23살 유고슬라비아 남성의 정체성을 가진 인격, 레이건이 나오면 공수도를 능숙하게 하고 크로아티아어 했습니다. 심지어 숀이라는 청각장애 소년의 인격일 때는, 검사결과 실제로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나 올 법한 놀라운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게 실제의 일이라니. 우리가 미처 찾지 못한 뇌의 우주로 입장하는 길을 슬쩍 본 느낌입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인격들은 빌리의 몸에서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자아들은 각자 역할이 있었습니다. 육체노동은 주로 마크가, 머리 쓰는 일은 아서가 담당하는 식이었습니다. 상호 작용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아서는 난독증이 있던 자아 크리스틴을 지도해 읽고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23아이덴티티>는 이 '자아들의 사회성' 역시 설정에 가져왔습니다. 영화 속 인격들은 가장 공격적인 세 인격 데니스, 패트리샤, 헤드윅을 일컬어 '패거리'라고 부릅니다. 이 패거리가 비스트라 불리는 미지의 초인적 자아를 깨우기 위한 제물로서 소녀들을 납치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영화를 본 스타트업 팀원 1은 다음날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그날 마케터1과 기획자1과 운영진1과 잡부13이 자아를 교체해가며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정신없이 바빠지자 글쓰기를 좋아하는 선비3은 그냥 다 때려치우고 제주도 같은 데 가서 적게 벌고 글이나 쓰는 삶을 살까 고민했지만, 늘 그렇듯 스타트업 이사1이 나타나 "장난해?"라고 말하면서 주도권을 빼앗아갔습니다. 잘 될 거야, 잘하고 있어. 나1은 그날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정말 잘 하고 있는 걸까? 나9 역시, 그날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잘하고 있는 거 맞아, 지금까지 해온 걸 보라고. 자아 중에 제일 똑똑하고 성과도 높은 나7이 나1을 응원했습니다. 열심히 하는 건 알아. 그래도... 좀 더 빨리 잘하면 안 될까? 엄마아들1과 아직장가못간하객1은 조심스레 나1을 닦달했습니다.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여러 모습의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차오르는 나를 보고, 한없이 불안해하는 나를 봅니다. 아니 내가 이런 일도 곧잘 하네? 라며 새로운 자아발견을 신기해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아, 내가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나, 싶게 만드는 쓸쓸한 모습도 봅니다. 늘 나여야 하지만, 어떤 굽이마다 때론 나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더 많이 일하고 싶은 창업자이자, 한 시간만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직원이자, 개발자나 디자이너 같은 하나의 역할입니다. 동시에 스타트업하는 불효자식이자, 주말에 후배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혹은 학자금대출상환자이기도 합니다.
부디 다른 '나'들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감 넘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차오르는 '나1'이 자주 되시기 바랍니다. '나1'이 되어서 나머지 '나'들 설득하세요. 할 수 있어 이 나 자식들아, 우린 빠르게 나아지고 있다고, 그러니 끝까지 해보자고. 다만 오직 '나1'만이 나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다른 나도 어디까지나 나입니다. 늘 ‘나1’로서 몰아붙이기만 하고 멘탈을 쪼개면, 그 균열 어디선가 조용히 괴물(비스트)이 자랄 수도 있습니다.
‘나1’ 자주 되시기 바랍니다.
영화 이미지 ⓒ Universal Pic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