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을 하는 데 있어 물리적인 어려움보다 더 난감한 허들은 외로움인 것 같습니다. 고독한 시간은 어김없이 옵니다.
스타트업을 하면 어쨌든 개인으로서 뭔가를 이뤄내야 합니다. 내 일은 나밖에 할 수 없고, 나밖에 모릅니다. 무리가 주는 안락함에서 나와 혼자 버는 자의 불안함, 고립감, 고독. 그런 외로움을 스타트업들은 한 번쯤 느껴보았을 것 같습니다. 내 친구들이 사는 일반적인 삶의 세계와는 다른, 그 캄캄한 공간 속에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이 덮칠 때가 있죠. 그래서 우리는 연애를 해야 합.. 아, 아닙니다.
<나는 전설이다>의 로버트 네빌(윌 스미스)은 세상에 혼자 남은 사람입니다. 아니 “정말로 세상에 나 혼자 남아있는 거면 인제 어쩌지?” 하고 불안해하는 인물입니다. 영화 속 세계는 암 치료 백신이라 믿었던 약이 부작용을 일으키며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면역력을 잃어버린 인류는 대부분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더는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변종이 되었습니다. 변종 인류는 이성이 사라지고 본능만 남아 들짐승처럼 네빌을 위협하네요.
네빌은 이 고독한 세상에서 혼자 3년을 살아냈습니다. 네빌의 고통은 생존을 위한 물자도, 변종인류의 위협도 아니었습니다. 지독한 외로움입니다. “지금 이 방송을 누군가 듣고 있다면 응답해달라”며 매일 라디오 방송을 해도 돌아오는 건 침묵뿐입니다. 분주히 하루를 보내며 애써 외로움을 모른 척 하려 해보지만, 밤의 어둠은 덩그러니 혼자 놓인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법이 없습니다.
네빌은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마네킹들을 세워놓고 말을 겁니다. 자주 가던 레코드가게에 매일 들르며 마치 종말을 모르던 때처럼 쇼핑하는 시늉을 합니다. 세상에 혼자 남아 천 번의 고독을 반복하다 그렇게라도 위안을 찾기로 한 것이죠. 만약 유일한 벗인 반려견 샘마저 곁에 없었다면 네빌은 이제껏 버티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샘마저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자신을 제외한 유일한 체온이 세상에서 사라지자 네빌은 더 살기를 포기합니다. 모든 희망을 잃은 그는 변종 인류에게 투신해 생을 마감하려 합니다.
바로 그때, 환한 빛이 보입니다. 빛을 밝힌 차엔 믿기지 않게도 사람이 있습니다. 안나와 안나의 아들 에단이 타고 있네요. 절망의 벼랑 끝에 손톱만 걸친 순간,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람’이라는 구원이 마침내 나타난 것입니다.
스타트업을 하다 보면 네빌처럼 혼자된 고독을 느끼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네빌만큼은 아니겠지만 내 세계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점에선 닮은 것 같습니다. 조울증 증상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아요. 어떨 땐 아이디어가 막 쏟아지면서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분비됩니다. 그럴 땐 잠도 못 자고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일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또 문득 저 밑으로 가라앉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잘 하고 있는 걸까, 불현듯 무서움이 들이닥칩니다. 내 일을 정말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구나, 대표는 대표대로 팀원은 팀원대로 고독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가끔 진짜 고수들을 만나면 어떤 공통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로부터 얼마간의 고독을 견뎌낸 자라는, 앞으로도 견뎌낼 자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묵묵히 자기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스타트업에게 고독은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꼭 느껴야 할 감정일 수 있습니다. 고독을 못 견디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허비하는 것보다는 얼마간 외로운 게 낫습니다. 성공한 자들이 몰려있는 곳에 간다고 그게 나의 성공이 될 리는 없습니다. 아무리 진짜 같아도 가짜는 가짜죠.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건, 반드시 팀으로서 고독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습니다. 영화 속 네빌이 그러했듯 오랜 기간 혼자서 고독하면 결국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팀이 필요합니다. 마음 맞는 팀이, 필요합니다. 서로서로 빛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스타트업이 사람 말고 뭐가 있겠어요. 결국엔 뭐든 사람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죠. 옆에 있는 그 사람 잘 챙겨주세요. 오늘은 슬쩍 커피라도 한잔 건네보면 어떨까요.
영화 이미지 출처: Warner Br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