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들을 하는 걸까요. 엔딩크레딧이 오를 때 가만히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분한 눈으로 검은 화면을 보는 그 사람들의 표정은 묘합니다. 머릿속에선 영화를 되감고 있을까요. 꼭 밤바다 앞에 앉아 출렁이는 파도를 보는 여행자의 표정 같기도 합니다.
스크린 너머 사유의 세계에서 현실로 빠져나오는 마지막 터널. 엔딩크레딧은 그런 터널이 아닐까요. 검은 화면 위로 현실의 이름들이 오르는 이 순간, 영화는 비로소 삶과 이어집니다. 영화의 정서에 물든 채 현실로 돌아온 사람은 달뜬 흥분을 느끼기도, 어쩐지 조금 차분해지기도 합니다. 영화의 메시지를 현실에 가지고 나온 사람은 무언가 조금 변하기도 합니다. 가상과 현실이, 허구와 실제가, 상상과 생활이 만나는 접점입니다. 이 어두운 터널 속에서 우리는 증류수처럼 사유하고 탄산수처럼 전율합니다. 영화와 삶의 대화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차이니즈 조디악> (2012) 엔딩크레딧
저도 어느덧 아재인 건지 최고의 엔딩크레딧을 보여준 영화는 뭐였을까 돌아보니 성룡영화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룡영화. 성룡영화라니! 적어놓고 보니 정말 아재 같군요. 그렇습니다, 아재입니다. 포기하면 편합니다.
어릴 땐 명절이면 티비에서 늘 성룡영화를 틀어주곤 했습니다. 설날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 배를 깎아 먹으면서 성룡영화를 보는 건 아재가 아재 개그를 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특유의 타격음이 경쾌하던 <취권>, <폴리스 스토리>, <프로젝트 A> 같은 영화들을 기억하시겠죠. 이쯤에서 미소 짓고 계신다면 여러분도 포기하세요, 편합니다.
엔딩크레딧과 함께 나온 성룡영화 특유의 NG모음은 영화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죠. 구르고 떨어지는 성룡 형을 보며 '액션씬은 저렇게 고생해서 찍는 거구나' 불현듯 깨닫곤 했습니다.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해서 NG를 내는 배우들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죠.
거의 마지막 '정통 성룡영화'라 할 수 있는 <차이니즈 조디악>(2012)의 엔딩크레딧엔 NG 모음과 함께 성룡의 육성 메시지도 있었습니다. “나 재키 찬은 내가 자랑스럽다.” “위험한 액션신을 찍을 때마다 두렵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든다. 이게 마지막 액션씬이 되진 않을까, 내 생애 마지막 씬이 되진 않을까….” 허구를 만든 과정을 보여주며 자연스레 관객을 현실에 돌려보내는 성룡영화 특유의 NG 모음. 이제 성룡영화를 볼 일이 거의 없는 시대가 되고나니 어쩐지 짠하고 그립습니다.
2016년 2월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영화와 스타트업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고 첫인사를 드렸습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스타트업의 성장스토리가 한 편의 영화라면, 그 영화의 엔딩크레딧은 꼭 성룡영화 같은 'NG 모음'이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매일 작은 실패들와 작은 성공들을 반복하며, 때론 참 바보 같은 실수도 많이 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갑니다. 수많은 'NG'를 내며 울고 웃습니다. 그 과정에 액션이 있고, 코미디가 있고, 스릴러는 물론 때론 호러와 멜로(!)까지 있는 복합장르죠. 이 영화의 끝에 엄청난 반전이 있는데 겁나 환상적인 해피엔딩이라는 소문이 있으니 모두들 꼭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약 2년간 70편의 글을 썼습니다. 재밌었고, ...정말 재밌었습니다. 스타트업 교훈충으로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해보는 일은 주마다 나 자신을 다잡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바쁜 일상의 연속을 끊고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컨텐츠와 컨텐츠 생산방식에 대해 이런저런 실험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이렇게, 저떤 날은 저렇게 써봤습니다. 잉여로운 글도 써보고 진지한 글도 써봤습니다. 그냥 맨몸으로도 써보고, 더 찾기 힘들 만큼 조사한 후에 써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구도와 방식과 취향들을 테스트해볼 수 있었습니다. 스타트업 마케터로서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브랜딩 저널리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좀 더 개인적으론 한풀이를 했습니다. 이 칼럼의 원형은 학생 때 대학신문에 연재한 글들이었습니다. 참 풋풋하고 곧 후회할 글들을 많이도 썼습니다. 더 잘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컸는데 스타트업 관람가를 통해 꽤 해소가 되었네요. 물론 이것도 1년만 지나면 풋풋하고 후회할 글들이 되겠지만요.
저는 성공한 창업자가 아직 아닙니다. 그냥 동네에서 새콤달콤 까먹는 쪼렙 마케터입니다. 그래서 뭔가 조언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줌 경험과 생각의 공유, 그리고 공감뿐이었습니다. 때때로의 주제넘음은 역량 부족이었습니다. 잘 알려졌건 아니 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은 모두 저마다의 실력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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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비석세스
- 투자: 비석세스/슬로그업
- 연출/각본: 김상천
- 편집: 비석세스
- 개드립: 김상천
- 떠든사람: 김상천
- Special Thanks To 비석세스 독자님
THIS IS NOT GOOD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