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와는 관계없이, 회사를 경영하는 모든 창업자의 첫번째 책임은 회사의 잔고가 바닥나기 전에 어떻게든 자금을 확보해 회사가 굴러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특히, 확실한 매출원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충분한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지 못한, 대부분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도무지 언제일지도 모를 그날을 기다리면서 투자라면 일단 받고 보자는 급박함을 느낀다.
(글의 제목에 쓰인 '101'은 실리콘밸리로 연결된 101번 고속도로에서 따온 것으로, '기초, 기본'을 의미 - 편집자 주)
1. 투자는 생존을 위해 받는 것이 아니다
급박함은 물론 '생존'이 지상과제가 된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필자가 직접 몇 번의 창업 사이클을 경험하고, 또 투자자가 된 지금도 매번 실감하는 것은 투자는 소위 '번레이트(burn rate)'로 불리는 기업의 존속 비용을 충당하고, 생존 기간, 즉 '런웨이(runway)'를 연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투자라는 장치는 그 자체로 엄연히 하나의 단위 상품인 '기업'의 일부를 거래하는 것이고, 결코 '무상(無償)'이 될 수 없다. 창업자 자신의 투자를 포함한 모든 투자는 ― 항상 현실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 반드시 분명한 '결과물'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 위에서 이뤄져야만 한다. 외부의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려는 스타트업이라면 생존을 위한 비용이 아닌 구체적 가치를 담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쓰일 자금으로서 투자를 유치한다는 '생각의 틀'이 먼저 필요하다.
2. 언제 투자를 유치할 것인가?
생존을 위한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에게 투자 유치의 시점을 선택하는 것은 호사에 가까운 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투자가 단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 결과물의 창출을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달성해야 할 목표인 마일스톤(milestone)이 가시화되어 적정 자금만 투입되면 바로 목표 달성을 위한 행위가 개시될 수 있을 때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명확한 마일스톤 없이 투자를 유치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힘들게 투자를 유치하더라도 어디에 사용할지를 알지 못하는 상황은, 힘들게 늘린 런웨이를 겨우 번레이트나 충당하며 방향성도 없이 비효율적으로 소모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상황이 계속된다면,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은 투자금은 유의미한 성과를 창출하기도 전에 모두 소진될 것이고, 창업자는 그리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 어쩌면 훨씬 안좋은 상황에서 ― 다시 투자 유치를 시도해야만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투자를 유치했음에도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업은 후속 투자 유치에 실패하거나, 힘들게 투자를 유치해도 이전 라운드에 비해 기업가치가 평가절하되는 다운라운드(down-round)를 경험할 것이다.
3. 얼마만큼의 투자를 유치해야 하나?
다음 단계의 마일스톤이 명확하게 구상된다면, 얼마만큼의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지, 오히려 쉽게 산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마일스톤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할 것으로, 합리적으로 추산되는 금액이 10억 원이라면, 그 금액이 곧 투자받아야 할 금액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창업자들은 현실적인 마일스톤의 달성을 위한 자금의 규모를 합리적으로 산출했다면, 해당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5~10% 정도의 지분을 아끼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선택이라는 점을 깨달아야만 한다. 필자도 창업자로서 지분율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창업자의 정서를 잘 이해한다. 그러나 지분율 유지에 과도하게 집중하다가 협상에 실패하거나 충분한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애초에 적정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면 불필요했을 투자 라운드를 추가하게 되고, 방어하려던 지분율을 오히려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를 맞게 된다.
때로는 산출한 목표 금액이 자신들의 단계에서 너무 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창업자들은 높은 목표를 고집하는 대신 자신의 마일스톤이 현실적으로 너무 먼 목표는 아닌지 점검하거나 산출한 비용 구조가 합리적인지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전략에 기초한 창업자라면 투자를 받는 것이 단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마일스톤의 달성을 위한 것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에 따라 명확한 마일스톤이 설정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규모를 산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투자자들과 본격적 협상을 할 준비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투자에 대해 아직은 생소한 스타트업의 창업자들에게는, 과연 언제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일은 호사에 가까운 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또한, 그런 결과의 창출이 결국 기업의 존속 위에서 이뤄지므로 투자는 결국 런웨이를 늘리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와 그 목표의 달성이 가져올 경제적 가치에 대한 기대 위에서, 기업에게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기업의 일부인 '지분'을 취득하는 것이 투자의 본질이다. 투자라는 장치는 때로는 기업의 존망까지도 결정할 수 있으므로, 연약한 상태의 기업인 스타트업의 창업자는 그에 대해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아울러,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미래를 위한 명확한 비전도 가지지 못한 조직이라면, 그런 기업의 생존과 현상 유지를 위한 맹목적 자금 수혈은 시장 역학의 관점에서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스타트업이 투자자들과 처음으로 접촉하는 시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투자자와 기업 모두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만 비로소 투자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스타트업은 가능한 이른 시점에서부터 투자자와 관계를 형성하고 회사의 성장 과정을 지속적으로 환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해외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려는 기업은 이런 과정을 더 초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른 칼럼을 통해서도 이야기했듯, 투자는 '본격적인 성과 창출'을 전제로 기업에 상당한 시각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 이외의, 기업의 생존에 관한 문제는 외부로부터의 투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스타트업의 창업자가 명확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보유 자원을 효율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사용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지, 그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각각의 산업 분야와 투자사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필자처럼 하이테크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사라면, 투자를 받는 기업이 단지 자금이 충분한 '캐시 포지티브(cash-positive)' 상태가 되려는 이유가 아니라, 앞으로 커다란 비즈니스가 되는 데 필요한 기초를 제대로 형성하기 위해서, 그리고 투자금을 제대로 '태우는(burn)' 능력을 갖췄을 때 훨씬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점을 스타트업과 창업자가 잘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칼럼 등 외부 필진의 글은 '비석세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