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이디인큐에서 빠른 모바일 리서치 플랫폼, “오픈서베이”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는 Product Manager 김도진(22) 입니다. 스스로를 벤처 꼬꼬마라 생각하며 배워나가고 있는 처지의 제가 무슨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싶었지만 선배의 조언보다 친구의 솔직한 이야기가 더 큰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 용기를 내봤습니다. 사실 이 글은 '팀 빌딩은 어떻게 하고, VC에게 투자받는 과정 등 창업전반에 관한 이야기'는 비교적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당최 그것들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도 못했던, 당장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로 다가왔던 “그 날”의 제게 쓰는 글입니다. 지난 1년 반을 휴학생이자 두 곳의 스타트업 멤버로 지내면서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바탕으로 적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 스타트업에 합류할 때 엄청난 계획과 대단한 야망을 품고 들어왔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가가 되고 싶어서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학교의 정해진 커리큘럼만 따라가서는 제 꿈과 그다지 가까워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재밌는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 또, 스마트폰 덕분에 불고 있는 모바일 바람을 보면서 일단 IT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앞으로 뭘 준비해야 하는지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발을 들여 놓았었습니다.
원래 먼저 저질러 놓고 움직이면서 생각하는 스타일이기에 큰 고민없이 선택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금 다시 차분하고 신중하게 그 순간을 돌아봐도 후회없는 선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 단 한 달이라도 안에서 보았는가의 차이
고등학교 때 상상하고 꿈꿨던 캠퍼스라이프와 실제 대학교 생활이 똑같다고 느끼는 대학생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가고 싶은 대학교의 교정을 찾아가 걸어보고, 학관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해보아도 실제 그 대학교의 학생으로 입학해 생활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죠.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책과 블로그의 글들을 읽고, 여러 행사에 참여하는 것과 단 한 달만이라도 그 안에 온전히 속해 느끼면서 보는 것과는 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앞에 있는 것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2. 실질적인 권한,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경험
스타트업은 권한을 주어서 갖게 되는 곳이 아닙니다. 본인이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일하다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실질적인 권한이 주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는 곳입니다. 나이, 경험 등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빠르게 배워나가는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전체를 파악하기 힘들고 시스템이 딱 짜여 있어 내가 들어갈 곳도 쉽게 보이지 않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시키는 자잘한 일을 하다가 끝나는 대기업 인턴과는 아예 다른 환경입니다. 상하구조, 관습, 과거의 이력, 나이 등이 아닌 본인의 노력과 열정에 따라 주도적으로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널려있는 보물섬입니다.
3. 내가 생각했던 나의 한계는 한계가 아니었다.
아직도 멀었지만, 누구나의 처음이 그렇듯 정말 아는 것도, 경험도 없이 시작했었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같이 다 처음 하는 일이었죠.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앉아있을 시간도 없이 해내야만 하는 상황과 마주하곤 했습니다. 이건 진짜 내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라 여겨져 불가능할 것 같다가도 방법을 찾다 보면 깨달아질 때도 있고, 정말 운 좋고 감사하게도 도움의 손길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했던 한계를 하나하나 뛰어넘을 때마다 느껴지는 짜릿한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그 뒤에 쭉 늘어져 있는 다음 한계점들에 답답해질 때도 있고, 또 실제로 한계에 부딪혀 좌절감을 느끼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좌절의 순간은 이미 꽤 많은 성장 후에 마주하게 된 것일 겁니다.
4. 그리고 그 후의 시간을 더 알차게 해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무조건 한 번은 창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오히려 사라졌습니다. 제 꿈이 바래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좀 더 진지하게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가치 있고, 멋진 일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이구나. 이 과정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며 뚝심 있게 걸어나갈 수 있을만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살아가고 싶은 삶은 어떤 모습인지,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이들이며, 만들어가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있을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에서 내 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직 저도 '그리고 그 후'에 가보진 못했지만, 어떤 준비들을 해 나가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가든 지금의 이 시간이 미래의 순간들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휴학과 스타트업을두고 고민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미 고민은 할만큼 했을 테니 마음따라 가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스펙 한 줄의 시간보다는 진짜 속을 채워나가는 시간을 가치 있게 여긴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