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위해 운반하던 삼성 OLED TV가 사라져 떠들썩했던 지난 9월 국제가전박람회(IFA) 소동을 기억할 것이다. IFA는 매년 독일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박람회로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와 함께 세계 가전제품 관련 양대 전시회로 일컬어진다. 부스 참가만으로도 기업의 위상을 높일 수 정도라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들은 당연하듯 매년 부스전시를 하고 있다. 이에 작은 벤처 기업에게는 꿈의 무대로 여겨진다.
IFA는 재작년부터 iZone이라는 특별영역을 만들어 모바일 관련 액세서리 업체를 별도로 모아 전시하고 있는데, 그 곳에 눈에 띄는 국내 벤처기업이 있었으니 바로 ‘탱그램디자인연구소(이하 탱그램)’ 이다.
<탱그램 IFA부스(위), 정덕희 대표(아래)>
탱그램은 2008년 정덕희 대표가 설립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계열사들의 UX/UI 디자인 컨설팅을 맡아왔다. 하지만 컨설팅 회사에 머무르면 장기적인 미래가 없다고 판단해 탱그램을 하나의 브랜드로 키우기로 결정한다. 이에 2010년부터는 탱그램을 브랜드로 내세워 IT 제품의 액세서리를 기획, 디자인하여 제작하고 판매까지 하는 회사로 변모했다. 첫 제품이던 카드수납이 가능한 스마트폰 케이스는 큰 인기를 끌었고,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태블릿PC가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IT액세서리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에 디자인만으로 승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기술 개발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 결과, 이번 IFA에서 선보였던 스마트 마운트, 스마트 닷 등과 같이 단순히 패션, 보호 목적을 넘어선 제품들을 만들게 된다. 스마트 마운트는 자전거용 스마트폰 거치대, 스마트 닷은 오디오잭에 꽂아 사용하는 레이저 포인트인데, 제품과 연동되는 자체 개발 어플리케이션을 함께 제공하여 편리성을 높였다. “지금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한 추세잖아요. 마찬가지로 IT액세서리 제품들도 단순 하드웨어 제품이 아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제품들이 디바이스와 거의 동급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어요.”
<스마트 케이스(좌), 스마트닷(우)>
탱그램이 제품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BX(Behavior eXperience)이다. BX는 사용자의 숨은 행동을 발견하고 제품의 용도를 재해석하여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의자는 사람이 앉는 용도로 만들어지지만, 의외에도 가방이나 옷을 걸쳐놓는 등 사용자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의자의 용도가 달라진다. “모든 제품에는 숨어있는 용도가 있어요. 이걸 끄집어내서,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자 합니다.”
탱그램의 IFA 참가는 작년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이다. 정덕희 대표의 말에 의하면 2011년 당시 IFA 참가는 모험 그 자체였다고 한다. “창업한지 3년도 안된 작은 디자인 회사가 국제전시회에 독립부스를 갖고 참가한다는 건 전례가 없던 일이었어요. 참가하려면 돈이 1,2억은 들어갈 정도로 타격이 크거든요.” 그럼에도 모험을 강행했던 건 좁은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로 나가는 길만이 탱그램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방법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많은 해외바이어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방법은 해외 전시회뿐이었다. 참가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글로벌 IT주변기기 전문업체인 ‘벨킨’과 디자인 업무 협약을 체결해 아시아 최초로 벨킨의 아시아퍼스픽 디자인하우스로 선정되는 성과를 낸 것이다.
이에 올해는 부스를 넓혀서 다시 참가했다. 결과는 더욱 성공적이었다. 아직 밝힐 수 없지만 많은 계약들이 성사됐고 지금도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한다. 굵직굵직한 바이어들이 많이 찾아왔고 탱그램 부스를 보기위해 일부러 찾아온 회사 중역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기에 정 대표는 해외 전시회 참여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국내 작은 회사들 중에도 기술 좋고 해외에 나가도 꿇리지 않을 곳들이 많이 있어요. 이런 회사들이 해외 엑스포나 해외 전시회를 잘 활용하면 훨씬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겁니다.”
다양한 시도로 변화를 거듭하며 회사를 탄탄히 성장시키고 있는 비결을 묻자, 정 대표는 탱그램의 공동대표 체제를 비결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디자이너 출신으로 소신껏 디자인을 하고 싶어 창업을 했는데, 경영업무에 치우치게 되어 막상 디자인 일을 할 시간이 없어 괴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2009년에 경영을 전담할 안은숙 대표를 영입했고, 이후 두 사람은 명확한 역할 분담을 해오고 있다. “저는 직원들과 같이 프로젝트 진행하고 아이디어 내고 전략 짜는 일에 집중할 수 있어요. 경영과 크리에이티브를 이원화 시키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디자인 회사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탱그램을 100년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정 대표는 그 힌트를 애플에서 찾았다. “지금의 애플의 위상이 가능한 것은 애플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사용자들의 애플에 대한 신뢰, 이 두 가지가 주요 요인인 것 같아요. 탱그램의 지향점도 거기에 있어요.”
정 대표는 직원들의 자부심이 중요한 이유를 몸소 느낀 경험이 있다. 과거 컨설팅 일만을 했을 당시에는 직원들이 이직률이 높아서 고충을 겪었지만, 탱그램 이름을 내 건 제품을 만들고 부터는 이직률이 많이 낮아졌다고 한다. "주변에 탱그램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탱그램이라는 브랜드가 점점 유명해지다보니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웹에이전시에서 출발해 UX/UI 디자인 컨설팅, IT주변기기 회사로 만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변화무쌍했던 탱그램. 100년 기업이 될 탱그램이 향후 100년 간 보여줄 변화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