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이화여대 이삼봉홀에서 ‘2013 K-CUBE 스타트업 컨퍼런스’가 열렸다. 엄청난 2월의 폭설로 한 발짝 걷기조차 힘들었던 날, 많은 스타트업 CEO들과 관계자들이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응원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 했다.
특히 공식석상에서나 대학 강단이 아니면 만나기 힘들었던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이 연사로 참여해 약 한 시간 반 가량의 시간동안 스타트업의 꿈을 응원하는 이야기를 전했다. 솔직하고 담대하게, 성공과 실패의 역사, 그리고 새로운 미래의 가치를 전했던 그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스타트업의 공통된 미션, 문제 해결과 올바른 문제의 정의
“꿈으로 끝내지 않고, 꿈을 끝내지 않고”
발표 전날 밤, 그는 강연 제목을 한참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스타트업에게 가장 강하게 와닿는 이야기는 역시 꿈에 관한 것이라 생각했다며 자신의 어린 시절 일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어느 날 친구 집에 가서 백과사전을 뒤적거리다 ‘가우스 이야기’를 우연히 알게 됐어요. 1부터 100까지 더한 합이 얼마인가에 대해 가우스가 내놓은 해답에 대한 이야기 말이에요. 남들이 모르는 비밀 하나를 알아낸 느낌이었어요. 그 느낌이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문제 해결 방식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친 소중한 계기였죠.”
김의장은 스타트업의 공통된 미션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서 시작된 관점은 ‘올바른 문제를 정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올드보이’라는 영화는 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극중 오대수, 최민식이 15년동안 정체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감금당하죠. 그리고 풀려납니다. 풀려난 최민식이 자기를 가둔 범인, 유지태를 찾고 자신이 감금당한 이유를 알면서 영화는 점점 클라이막스로 치닫죠. 드디어 둘이 대면한 장면에서 영화는 큰 반전과 충격을 선사합니다. 유지태가 자신을 찾아온 최민식에게 건넨 말은 “당신의 가장 큰 문제는 틀린 질문만 하는 거야, 왜 15년 동안 가뒀을까가 아니라 왜 15년만에 풀어줬을까가 맞는 질문이지” 그 순간 이제 모든 걸 알았다고 확신했던 당혹스런 최민식의 얼굴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올바른 문제를 정의하기 위해선 한 번 더 다른 시선, 색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일상의 ‘관성의 법칙’을 깨야한다. 내가 어떤 관성에 따라 무한 정지해 있거나 무한 등속운동하고 있다면 외부의 힘, 나의 깨달음, 누군가의 충고 등으로 그 틀을 깨부수고 나와야 한다. 인지하고 있으나 무시해 버리고 마는 관성의 법칙에 얽매여 있다면 새로운 시각과 올바른 문제 정의는 완전히 불가능하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 - 느와르 프로펫(noir prophet) 검은 예언자, 소설가 윌리엄 깁슨
“남보다 잘하는 걸 보통 경쟁력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오늘날 남들보다 잘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제가 생각한 방법은 이것이었습니다. 남보다 잘할 수 없다면 남과 다른 것을 아는 사람이 되자.”
그가 삼성 SDS에 막 입사한 초짜 신입사원이었을 때 그는 프로그래밍에 대해 하나도 몰랐다. 동료들의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에 마음고생을 했던 그였다.
“정말 갑갑하더라구요. 뭔가 해야겠는데 이건 뭐 너무 못하니까… 이렇게 아무리 한다고 해도 경쟁력이 안 생길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고민을 계속하다가 힌트 하나를 얻은 거죠. ‘지금 남들과 똑같은 걸 한다면 도저히 승산이 없어. 보는 시점을 바꿔야 해.’ 이게 제가 얻은 힌트였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6개월 후에 일어날 미래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했다. 당시 C++프로그래밍과 윈도프로그램이 그가 봤던 미래였다. 그는 팀과 함께 당시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윈도프로그램에 대한 연구에 돌입했고 몇 개월 뒤 회사 전체의 모든 프로젝트는 서버 클라이언트 방식으로 바뀐다. 다시 말하자면 회사 전체의 모든 단말기가 윈도우프로그램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가 봤던 미래는 현재가 되었고 미리 앞서간 그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재로 인정받게 된다.
퇴사 후 그는 새로 열린 인터넷 시대를 맞아 첫 번째 사업을 시작한다. 그의 첫 번째 비즈니스 역시 남들과는 다른 경쟁력으로 한 판 승부수를 띄웠다. 전 세계 최초 웹에서 구동되는 클라이언트 방식의 게임포털 ‘한게임’이 그의 첫 번째 사업체였다.
“게임을 처음 만들겠다고 생각했을 때 처음에는 게임성을 포기할 수 없어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밍을 개발하고 있었어요. 근데 자꾸 인터넷이 발목을 잡더라구요. 너무 인터넷 시대가 올 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4~5개월 동안 했던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성공의 핵심을 게임성을 버린 인터넷에만 둘 수는 없었죠. 협의점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웹에서 클릭하고 클라이언트가 구동되는 그런 새로운 방식의 게임포털이 탄생하게 된거죠. 그게 한게임입니다. 전 세계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었던 방식의 게임 포털을 탄생시킨 거죠.”
인생의 한 가운데서 길을 잃다, 성공의 재정의를 위한 쉼표
“그냥 사회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거, 이런 게 성공이라는 것으로 막연히 규정을 짓고서 거기에 청춘과 열정 다 받쳐서 왔는데 막상 그 자리에 있고 나니까 무언가 부족한 거예요. 뭔가 완성되지 않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뭔가 잘못됐다를 깨달은 거죠. 그러면서 인생 한 가운데서 잡고 있었던 키를 놓아 버렸습니다. 어디로 가야될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거죠.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멈춰야 했구요.”
성공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1막이 끝나갈 때 즈음,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정의로 삶의 방향을 완전히 잃는다. 인생의 한 가운데서 키를 놓은 그를 휩쓸었던 이 중대한 문제가 그의 삶에 남긴 흔적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족들을 따라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후 2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1년은 독서와 음악, 나만에 세계에서 지냈구요, 나머지 1년은 공부 잘하고 있는 아들, 딸 꼬드겨서 휴학시킨 후 신나게 여행하고 놀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서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시 성공을 제대로 재정의 할 무언가를 말이죠. 그게 카카오 였습니다.”
“뢀프 왈도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라는 시가 저의 새로운 성공의 정의에 가이드가 됐습니다. 시의 한 대목은 말합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입니다. 카카오의 철학도 거기에 있습니다.”
완벽함이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덜어 내는 것이다
카카오는 창업 후 웹을 대상으로 한 많은 서비스들을 출시했지만 모두 실패한다. 김 의장은 한게임을 하면서 가졌던 자만심을 다시 겸허의 세계로 돌려놓는 큰 경험을 겪는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온 두 번째 기회는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 미국 현지에 있으면서 운 좋게 그 가능성을 미리 느꼈습니다. 다음에 올 미래, 또 다른 기회의 가능성은 모두 이 스마트폰에 있다는 걸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던 프로젝트를 모두 중단하고 한 달 동안 카카오의 전직원에게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개발하고 싶은 서비스를 만들어 보라고 말했습니다. 회사가 기존의 프로젝트를 완전히 져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낀 미래의 가능성을 져버릴 순 없었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모바일이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전 세계에 트렌드로 자리잡았을 때, 카카오는 이미 전직원 모두 스마트폰 개발 경험이 있는 경쟁력 있는 회사로 자리잡았다.
“사실 스타트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낭비하지 않는 것인 거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거에 모든 걸 쏟아 붓고 나머진 다 무시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고 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죠. 기존의 프로젝트를 접고 모바일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도, 수많은 모바일 프로젝트를 접고 카카오톡 하나의 프로젝트에 집중한 것도 이러한 철학에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것을 카카오톡에 올인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카카오가 있을 수 있었을까? 하나에 집중하는 것, 한꺼번에 욕심 부리지 않는 것, 유연하게 행동하는 것, 오늘날 빠른 속도전에서 결판을 봐야하는 스타트업계에서 명심해야할 것들이다. 가장 완벽한 것이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나머지를 덜어내는 데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보이는 차별화가 비즈니스의 핵심
부동산 얘기를 할 때, 땅쟁이, 부동산쟁이에게 가장 중요한 첫째를 꼽으라 하면 백에 백 ‘위치’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둘째는? 둘째 역시 ‘위치’, 셋째 역시 ‘위치’다. 그렇다면 비즈니스의 핵심은? 첫째, 둘째, 셋째 모두 ‘차별화’다. 김의장은 이때 차별화가 반드시 ‘고객’이 받아들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차별화는 내가 생각하는 차별화가 아닙니다. 고객이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차별화죠.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에 대한 시작은 절대 나에게서 오지 않습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문제를 풀면 절대 안 됩니다. 문제의 핵심은 고개입니다. 고객의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불편함을 이해하고 불필요를 이해해야 합니다. 또 이때 고객은 내 머릿속의 고객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고객이어야 합니다.”
이십대 여자. 그런 막연한 고객은 없다. 그건 당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고객일 뿐이다. 실제 고객을 찾고 그 고객의 입으로 필요한 것을 직접 들어야 한다. 심지어 고객이 실제로 필요한 것을 고객 스스로도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다. 고객의 행동, 그 행동을 하는 이유, 이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내가 필요한 것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데이터로 이해하는 감(感)이 필요하다.
“고객을 이해 한다는 것은 문제의 정의에 근접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고객을 이해한다는 건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와 일치하게 되죠.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문제는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백날 내가 필요한 것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백날 당신을 그 자리에 반경에서 떠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혁신은 천 개의 가닥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타트업의 핵심은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의 능력은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성공의 능력은 팀의 능력입니다. 나와는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얼마나 찾아내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 됩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관점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다양성이 있어야 합니다.”
난자의 선택. 최근 과학은 정자가 난자에 도달했을 때 일방적으로 가장 빨리 도착한 정자를 난자가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상 최소한 수백 마리 이상의 정자가 동시에 난자에 도달하고 난자는 그 중 능동적으로 한 마리를 선택해 수정의 과정을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난자가 정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가장 크기가 큰 놈? 가장 강력한 놈? 모두 아니다. 난자는 자기와 가장 ‘다른 놈’을 자신의 짝으로 받아들인다.
“진화의 비밀에는 다양성의 조합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것이 조합되어야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나와 나가 조합 된다면 시너지는 없습니다. 나와 다른 것의 조합만이 새로운 걸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한 순간에 전멸하지 않도록 하는 진화의 법칙은 이 다양성 추구에 있습니다. 스타트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새롭고 혁신적인 시너지를 위해서 역시 항상 충돌하고 싸울 수 있는 팀이 필요합니다.”
45억년의 지구와 진화의 역사가 말하는 다양성의 최선이라는 근거는 믿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인류와 지구의 진화가 그를 증명하듯, 모두가 다른 생각과 관점을 가진 팀에게 진정한 혁신과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습관을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그렇고 저 역시 공감하는 바이구요. 하지만 여러분들의 핵심습관을 찾으셔서 바꾸셔야 합니다. 좋은 핵심습관으로 다른 나쁜 핵심습관들을 잠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나쁜 핵심습관은 힘들어도 반드시 찾아 파괴해야 하죠. 실패와 성공을 가로 짓는 내 모든 행동이 그 무의식의 행동, 핵심습관에서 온다는 사실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딸깍딸깍 기계식 키보드 소리가 아득한 90년대, PC 통신과의 조우가 김범수 의장의 인생에 터닝포인트, 전환점이 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여전히 ‘연결된 세상’의 잠재력, 가능성을 믿고 있다. ‘연결된 세상’을 자신의 운명이라 말하는 그는 오늘도 자신의 운명을 따라 성공의 문제를 바르게 정의하는 중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가치의 실현을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사람이 혁신의 시작이다. 아름다운 세상으로의 변화는 자신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대한민국 스타트업, 당신의 변화로 더욱 아름다워 질 내일의 미래를 기대한다.
* 'K-CUBE Conference'의 또다른 이야기 스타트업 CEO 패널토의 관련 기사 보기 : http://www.besuccess.com/?p=29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