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세 번째 회사 Noom이 있기까지, Noom 정세주 대표 Part I
2012년 04월 10일

그를 만나기까지는 꽤나 기다렸어야 했다. 미국에서 중요한 딜이 있었고 한국에는 수 일밖에 머무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카이프 상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수도 있었을텐데, 뒤바뀐 시차를 무릅쓰고 인터뷰를 수락해주는 그의 호의로 실제로 만나볼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만나자마자 든 생각은 "실제로 만나보길 100배 잘했다!" 그는 넘치는 에너지로 다른 사람을 설레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그에 못지 않은 깊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안드로이드 플레이의 헬스∙피트니스 부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Cardio Trainer의 개발사, Noom의 공동창업자인 정세주 대표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네가 한 번 수입해서 팔아보지 그러냐' 말에 다음 날 창업

전남 여수에서 초,중,고를 모두 마치고 서울 홍익대 전자전기 공학부로 입학을 한다. 그 때가 99년, 당시 정 대표는 헤비메탈에 매우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고.. 하는 음악의 계보까지 줄줄 꿰고 다녔다. 지금에야 우리나라 음악이 여러모로 성장을 했지만, 당시엔 팝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수입반을 듣고 있는 사람이라면 음악 좀 듣는다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라니 말이다. 메탈같은 해외 희귀 음반에 대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네가 한 번 수입해서 팔아보지 그러냐'는 선배의 말을 들은 정 대표는 그 다음날 바로 창업하여 1주일 만에 350장 완판을 기록하는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사업은 점점 커져 다음 주 주문은 700장, 그 다음은 1500장… 계속 늘었고 나중엔 한 번에 5,000만원씩 주문을 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할 돈을 모은 배경도 재미있다. "어릴 때 매주 수요일마다 학교에서 저축의 날이라서 1000원, 2000원씩 모아서 저금을 했잖아요? 나중에 그 돈을 보니 350만원이 되었고 그 돈을 종잣돈으로 시작한 겁니다."

 

아버지, 해외출장 때 영업사원들 어떻게 MRI 세일즈하는지 보여줘

여수에서 종합병원 원장인 정 대표의 아버지가 신문에 나온 그의 기사를 보고 당장 그를 집으로 불렀다. 사업을 하는 것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집에 내려갈 때 재무제표는 가지고 내려오라 하였다. 평소 매우 엄격한 성격이던 그의 아버지는 재무제표를 보고서는 잘하라는 말 한 마디 뿐이었지만, 인정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해외출장을 갈 때면 항상 어린 그를 데리고 가서, 영업사원들이 MRI를 어떻게 세일즈하는지도 보여주는 등 그에게 세상을 일러주려고 노력하였다.

사업의 성공으로 기뻐하는 것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암 전문 의사이기도 했던 그의 아버지가 암으로 숨을 거둔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소중한 경험을 아들에게 반드시 전달하리라는 의지가 대단했다. 정 대표가 일을 마치고 매일 밤 10시 찾아가면, 그의 아버지는 하루 종일 고민한 내용을 20분 동안 얘기해 주었다. 세상에 관한 것들, 병원에 관한 이야기, 도덕이란?, 여자에 대해서 등의 이야기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정 대표는 심장을 칼로 찢는 듯 아프고 괴로웠다. 그 6개월 전에는 그의 외조부도 세상을 떠났다. 짧은 기간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두 번이나 접한 그는 이제 진지한 22살 청년이었다. 당시 한국이 너무나 싫었다고 한다. 아니 한국에 있는 것이 싫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괜찮아? 괜찮아?를 물었기 때문에 괴로웠고, 당시 병역특례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면 토익 공부, 취업 준비를 할 생각을 하니 의미가 없어보였다. 이전 사업에서 하루 운용하는 자금이 5,000만원이었는데 뻔한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이 시시해 보였을 수도 있겠다. 결국 병역특례 소집해제 이후, 뉴욕으로 떠난다.

 

평생 갈 사업

미국으로 떠날 당시 영어가 정말 서툴렀으나, 쾌활한 성격인 그는 영어도 빨리 배웠다.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그가 좋아하는 음악 비즈니스를 배웠다. 그 때 그의 인생 두 번째 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해외에 수출하는 비즈니스였는데, 투자자의 배신으로 졸지에 자신이 사기꾼으로 몰리게 되었다. 빚더미에 오른 그는 사무실 집기라도 모두 팔아 최대한 빚을 갚고, 하루에 라면 하나 먹을 정도로 매우 힘든 날을 지내게 된다.

하루는 그전에 알고 지내던 구글의 엔지니어 아텀 페타코브가 그를 찾아온다. 피트니스 서비스들은 참 많은데 괜찮은 서비스가 없으니 이것에 대해 창업을 해보자는 것이다. 당시 아텀은 구글 주식을 팔아 사업 자금을 전액 댈 것을 약속했다. "나는 미국 세법도 잘 모르고, 인맥도 좋은 백인과 같이 차라리 창업을 하라고 그를 말려봤어요. 그런데 아텀은 주변에도 유명한 컨설팅회사, 투자은행에 다니는 똑똑한 사람들은 많지만, 자기는 평생 갈 사업을 일구고 싶고 그런 일을 함께할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겠다 싶어서 아텀을 다시 찾아가 거절하려 했다. "아텀은 'Good to Great(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을 예로 들며, 그동안 100년 동안 유지되는 회사의 창업자나 CEO들은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고, 대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도 많았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끈기와 인내심이 많아 한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로 정했다." 당분간은 아텀이 구글에서 계속 일을 하고 정 대표가 회사를 먼저 설립해 놓기로 한다. 그것이 Noom의 전신인 워크스마트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안드로이드 건강/피트니스 분야 최다 다운로드(1500만건 이상)를 기록한 카디오 트레이너 개발 이야기, 세계시장 진출을 꿈꾸는 한국 스타트업들을 위한 조언 등 정세주 대표의 더 많은 이야기는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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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석 기자 (2012-2013) 경제학을 전공한 후에 tech field에 입문, 다양한 시각으로 issue에 접근하길 좋아합니다. 항상 tech trend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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