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사무실을 쓸 때 지켜야 할 예의
2012년 07월 26일

“죄송합니다만… 이번 달 까지만 쓰고, 이제 사무실 비워주셔야겠습니다.”

혹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여기 세 번이나 사무실을 비워달라는 소리를 들은 유경험자가 있다. 물론 자랑은 아니다. 인건비와 부동산비 등 고정비는 최소화 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2~5인의 스타트 멤버들만 확정된 스타트업 초기 단계, 공동 사무실 이용은 피할 수 없는 수순과도 같다. 몇 번이나 공동 사무실에서 쫓겨 났던 아픔을 담아 이제는 제법 공동 사무실을 쓸 때 예의와 염치를 차리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하니, 공동 사무실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기사를 숙지하기 바란다.

 

공동 사무실을 쓸 때는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회사와의 궁합이 중요하다

처음 세 들었던 사무실은 디자인 스타트업이었다. 마음씨 좋았던 대표님은 회의용으로 쓰던 큰 탁자를 내주며 매출이 생길 때까지 임시 사무실로 편하게 쓰라고 하셨다. 문제는 내가 일하던 회사는 아이디어를 만드는 게 업이라 아침부터 밤까지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야 했고 디자인 회사의 직원들은 초집중해서 디자인 작업을 해야 했다. 디자이너들은 한 명씩 해드셋을 쓰기 시작했지만 아이디어 내는데 이미 미쳐버린 5명의 청년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목도 쉬지 않고 회의를 해대는 걸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벽도 없는 10평 남짓의 사무실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결국 디자이너들은 헤드셋을 쓴 채 신경질적으로 쿵쾅쿵쾅 주먹으로 벽을 쳐대기 시작했다. 인내심 강한 디자인 회사 대표님 덕분에 두 달 만에 조용히 짐을 싸서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함께 사무실을 썼던 분들과는 아무도 연락이 닿질 않는다. 지금이라도 이 지면을 빌어 그때는 철이 없었다고 사과 드리고 싶을 따름이다.

Tip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회사와 궁합을 따져보지 않고 공동 사무실을 쓰는 것은 위험하다. 만약 아이디어를 내는 회사와 영업 중심의 외근이 많은 회사가 한 사무실을 썼더라면 위와 같은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디자인 중심 회사라면 개발자 중심의 회사와 함께 사무실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사무실을 함께 쓰는 타인이 있는 만큼 정보보안에 신경쓰라

beLAUNCH 2012를 준비하며 은근 신경 썼던 것 중의 하나는 스타트업 배틀에 접수한 스타트업들의 채점표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현장심사의 경우 출력된 종이에 심사위원으로 위촉 된 VC들이 일일이 항목별 점수와 각 스타트업에 대한 평가를 기록하였기에, 혹 외부인이 보게 된다면 민감할 수 있는 자료였다. 물론 우리 공간으로 넘어와 책상 위의 서류를 보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행사가 끝났다고 무작정 쓰레기통에 버렸다가는 큰 일이 될 수 있다. 파쇄기가 없기 때문에 잘게 잘게 찢어 버리느라 꽤 시간이 걸렸었다.

이처럼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민감한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객들의 정보가 담긴 파일을 모니터에 띄워 둔 채 자리를 비운다 던지 파쇄하지 않고 고객정보가 담긴 서류를 버렸다가는 심각한 정보보안 사고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Tip 일반적으로 공동 사무실은 벽이 없고 쓰레기통도 공유한다. 생각보다 사람들의 귀는 밝으므로 보안 유지가 필요한 사항은 소곤거리면서 이야기 하거나 밖에 나가서 이야기 하라. 또 서류를 버릴 때도 외부에 노출되어도 상관 없는 사안인지 한번 더 고민해야 한다.

간단한 규칙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차후의 큰 분쟁을 막을 수 있다

 

청소 규칙 만들기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쓰레기통을 누가 비우느냐?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하느냐?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퇴사를 고민하게 만드는 민감한 사안이다. 뜻을 함께하는 한 스타트업 내에서도 이럴 진데 단지 공간만 함께 쓰는 공동사무실에서는 더욱 촉이 곤두서는 문제이다. ‘적당히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깨끗함의 수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청소에 대한 룰을 만들고 문서화해서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 문서화 해 부착된 룰은 공동 사무실의 이용자가 바뀌더라도 유효하게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익명을 원한 C는 공동 사무실의 여직원이 C와 옆 회사의 K 둘 뿐 이었는데, K가 단 한번도 화장실에 휴지를 갖다 놓지 않아 본인이 마치 ‘휴지 셔틀’이 된 것 같아 기분 나빴다며 청소 규칙을 세울 때는 한 번에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ip 여기 간단한 청소 규칙의 예를 제시한다.

쓰레기는 반드시 분리수거 하도록 하고, 매주 월요일은 A회사, 수요일은 B회사, 금요일은 C회사가 쓰레기 통을 비운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 및 휴지, 손 세정제 등을 구입하기 위해 매월 3만원씩 각출한다. 바닥 청소는 각 회사가 자신의 담당 구역을 자유롭게 하되, 공동 이용 공간인 탕비실, 화장실, 회의실은 각 회사가 하나씩 맡아서 담당한다. 그리고 담당 구역은 한 달에 한 번씩 바꾸도록 한다. 설거지는 그때 그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혹 탕비실에 컵 등을 씻지 않고 두는 경우가 발생하면 아이스크림을 사서 돌리는 것으로 한다.

 

이 외에도 공동 사무실을 쓰며 발생하는 문제와 지켜야 할 예의범절에는 끝이 없다. 아침에 어디까지 인사를 해야 하는가, 냉장고의 출처를 알 수 없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료수는 누가 갖다 버려야 하는가, 옆 회사 J의 시끄러운 웃음 소리는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가, 옆 회사 대표는 평소 평판과 다르게 직원들을 왜 저렇게 볶는가 등등 말초적인 문제부터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까지 공동 사무실에서 우리는 묘한 동거인이자 묘한 관찰자가 된다. 함께 사무실을 쓰며 느꼈던 타인에 대한 작은 인상은 언제나 그렇듯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누구나 기분 좋게 추억할 수 있는 공동 사무실 생활을 위해 마지막으로 하나만 당부하고 싶다. 공동 사무실에서 지켜야 할 예의의 기본은 내가 당했을 때 기분이 나쁠 것 같으면 절대 해서는 안되고, 내가 당했을 때 고맙게 생각되고 기분이 좋을 것 같으면 가급적 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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