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의 ‘자’도, 창업자의 ‘자’도 똑같은 놈 자(者)자를 쓴다” –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가 밝히는 투자 유치 비결
2014년 12월 03일

2010년, 네이버를 뛰쳐나온 김봉진 디자이너는 VC(벤처캐피털)와 엑시트(Exit, 투자회수)라는 단어도 모르는 초짜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해외에서도 될까?'하는 복잡한 질문을 던져본 적도 없다. 그저 삶 속에서 작은 불합리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배달의민족. 그렇게 작게 시작한 우아한형제들이 6일 전, 세계적 투자 은행인 골드만삭스로부터 400억을 투자 받았다. 화려한 도약이다. 어떤 전략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김봉진 대표는 '경영이나 투자 지식도 없었던 내가 한거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로 지난했던 투자 과정을 털어놓았다.

(주)우아한형제들_김봉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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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그렇게 좋은 투자사들로부터 투자를 받았냐'는 것이다. 그는 말을 안해서 그렇지, 국내 왠만한 VC들과는 다 미팅을 했을만큼 고생한 기간이 짧지 않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어느 기회 하나 거져 들어온 것이 없었다. 첫 번째 기회가 두 번째 기회로, 또 세 번째 기회로 연결됐다. 골드만삭스와의 인연 역시 마찬가지다.

시리즈 A : 2010. 본엔젤스 3억

본엔젤스의 장병규 대표와는 네오위즈 시절, 창업가와 디자이너로 처음 만났다. 투자자와 창업가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제대로 된 사업기획서 한 장 없이 만난 2시간의 미팅이 투자로 이어졌다. 지분 구조는 물론 투자에 대한 어떤 청사진도 없었던 시절, 본엔젤스의 강석흔 이사는 향후 투자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계해줬다. 법인을 세운 것도 그 때다. 아무 것도 없었던 시절, 종잣돈을 마련해준 은인같은 투자사였다. 본엔젤스는 신문 기사에 실릴 사진 한 장을 위해 직접 철가방을 밖에서 빌려올만큼 헌신적으로 도왔다. 김봉진 대표에게 본엔젤스는 아직까지도 든든한 러닝 메이트(running mate)다.

시리즈 B : 2012. 알토스벤처스, 스톤브릿지캐피털, IMM인베스트먼트 22억

본엔젤스와의 연이 알토스벤처스 한 킴 대표로까지 이어졌다. 한 킴 대표는 서비스를 좋아하면서도 선뜻 투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을 만났다. 김봉진 대표는 미팅 때마다 이 달 지표는 얼마만큼 성장했는지를 매번 설명했다. 당시 현재 요기요로 국내에 들어와 있는 독일 딜리버리히어로로부터의 인수 제안도 겹쳐 있는 상태였다. 본엔젤스 강석흔 이사와 현지를 방문하고 나서, 해외에서도 배달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데에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알토스벤처스와 스톤브릿지캐피털, IMM인베스트먼트가 합작해 총 22억 원 가량을 투자했다. 스톤브릿지캐피털의 김일환 대표는 해외사업전략에 결정적 힌트를 주었고, IMM인베스트먼트는 시리즈 C 이상 단계에서 필요한 행정적 실무를 꼼꼼히 챙겨줬다.

시리즈 C : 알토스벤처스, 스톤브릿지캐피털, IMM인베스트먼트, 사이버에이전트 120억

국내 '요기요'로 상륙한 딜리버리히어로가 연일 TV 광고를 내보냈다. 케이블 방송만 틀면 요기요 광고가 나올 정도였다. 어느 순간 배달의민족에 대해 설명하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요기요 같은 거?' 하고 물었다.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다음 단계 투자를 위한 준비에 나섰다.

회사 몸집도 커지고, 기업 가치도 높아져 있는 만큼 쉽지가 않았다. 일부 벤처캐피털은 우아한형제들 기업 가치가 지나치게 높다면서 담합해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 결국 이전 시리즈 B 단계 투자사들이 재투자하고 일본의 사이버에이전트사가 새로 들어와 가장 험난했던 시리즈 C 단계 투자를 마무리했다.

패션 잡지에는 '가을신상 버건디 컬러 양념치킨', 주식 잡지에는 '주식 오르면 뭐하겠노 치킨 사묵겠지', 웹 매거진에는 '닭 JAVA 먹지'라는 카피를 실었다. 자체 제작 폰트, 매체 성격에 맞춘 카피, 류승룡의 스타 파워가 버무려진 광고로 올 한 해만 3번의 광고상을 수상했다. 시리즈 C 투자는 브랜딩 측면에서도 배달의 민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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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리즈 D : 골드만삭스 400억

골드만삭스를 처음 만난 건 투자 때문이 아니었다. 상장 시점이 언제가 좋을 지 상담해보러 가자는 알토스벤처스 한 킴 대표의 권유에 골드만삭스 기업 상장팀과 접촉한 것이 단초가 됐다. 배달의 민족 지표를 살펴보던 관계자는 'GS팀'에서 직접 검토해보는 게 어떠냐고 말해왔다.

'GS 그룹이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나?' 의아했지만 미팅 때 명함을 받고보니 GS는 골드만삭스의 약자였다. 골드만삭스가 배달의민족 투자에 관심을 보일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골드만삭스는 영국의 '저스트잇'이 상장할 당시 주관사였는데다, 뉴욕의 '그럽헙'에 투자한 이력이 있어 배달앱 업계에 눈이 밝았다. 배달의 민족이 내민 지표 정도라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영역과 국경을 가리지 않고 대담하게 투자하는 골드만삭스의 성향도 반영됐다. 골드만삭스의 400억 투자는 그렇게 예기치 않은 기회를 통해 성사됐다.


투자자의 '자'도, 창업자의 '자'도 똑같은 놈 자(者)자를 쓴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근데 창업자들은 투자자를 전주(錢主)로만 봐요. 어떻게하면 돈을 받을 수 있을까, 하면서 투자자를 만나면 결국 상대방도 나를 통해 어떻게 돈을 벌까만 생각하게 돼요. 인간 대 인간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기본입니다."

점과 점을 잇듯 기존 투자자와의 관계로부터 다음 투자의 기회를 만들어낸 김봉진 대표가 밝힌 비결은 이것이다. 그는 '돈에 이름 안 써있으니까, 일단 누구에게든 많이 받고 보자'는 태도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런 욕심을 부리면 지표를 부풀려서 말하거나, 기업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받거나, 잘 맞지도 않는 투자자에게 투자를 받는 실수가 발생한다.

실제 알토스벤처스 한 킴 대표도 비석세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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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많이 받아서 기업 자체가 스스로를 과대평가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투자를 많이 받아서 그 이상의 가치와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라고 착각을 하는 거죠. 그러다 기대에 맞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더 무리하게 도전을 해요. 사람들에게 ‘우리 기업은 투자를 받은 만큼 가치가 높은 기업이에요.’라고 말하다가 그만큼의 가치를 못 보여주니까 인정하지를 않는 거죠. 하지만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는 큰 문제를 가져올 가능성이 큽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현실 그 자체를 인정하면서 문제를 개선해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해요. 실제로 알토스벤처스에서 투자를 결정할 때에도 서비스나 기술에 대하여 장단점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기업을 더 선호하게 됩니다.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여야해요. 그래야 문제를 같이 풀어나갈 수 있으니까요.

돈에는 이름이 써 있다. 투자를 누구에게, 얼마만큼 받느냐는 그 다음 단계 투자를 유치하는 데에 가장 유효한 레퍼런스가 되기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

김봉진 대표는 매 라운드마다 투자자들에게 '돈 말고 우리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고 했다. 투자사가 과거 어디에 투자했는지 레퍼런스 확인도 철저히 한다. 투자 포트폴리오사에 전화해서 어떤 도움을 받았는 지 물을 만큼 꼼꼼하다. 한 번 인연이 맺어지면 헤어질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결혼 상대를 찾듯 솔직하고 신중하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사자왕도 토끼왕이 될 수는 없다

400억 투자를 받고, 라인과의 합작을 통해 일본 시장에도 진출한만큼 우아한형제들은 앞으로 계속 몸집이 불어날 예정이다. 진부하지만 리더십에 관한 그의 철학을 물었다. 그는 얼마 전 '토끼왕 이야기'라는 동화를 읽었다고 말했다.

 가장 빠릿빠릿하게 토끼풀을 잘 찾아다니던 한 토끼가 리더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카리스마로 온 짐승을 다스리는 것 같이 보이는 옆동네 사자왕이 너무 부러웠다. 포효하는 걸 흉내내봤지만 비웃음 거리만 됐다. 사자에게 찾아가 당신의 카리스마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사자는 '나는 사자의 왕이지 백수의 왕은 아니다. 나는 너처럼 토끼왕은 될 수 없다'고 답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다움'이다. 김봉진 대표는 빠릿빠릿하게 디자인하고 서비스만드는 것 좋아하는 전형적인 '토끼왕'이다. 애초에 우아한형제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개발팀원들이 '왜 디자인팀만 편애하냐'고 볼멘 소리를 하자 '내가 디자이너인게 좋아서 우리 회사에 들어온 게 아니었냐'고 응수했다. 그는 사람 사는 길이 백이면 백 다른 것처럼 좋은 리더십 또한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찾은 최선은 '자기다움'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배달앱들이 옆에서 시끄럽게 두들겨댈 때에도 배달의민족은 심드렁하게 자기 길을 갔다. 김봉진 대표는 그냥 자기답게 빠릿빠릿하게 사업하다보니 골드만삭스가 투자해줬다는 모범생같은 답변을 내놓는다. 조금 싱겁긴 해도, 그 이상의 필승 비결이 있을까.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배달의민족은 업주들을 대상으로 한 '2014 대한민국 배달 대상식'을 개최한다고 한다. B급스럽고 웃긴, 배달의민족 다운 연말 세레모니다. 그렇게 자기 멋으로 사는 스타트업이 이제는 공중파 방송에까지 나온다. 그것도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들만 나온다는 '힐링캠프'에. 다음 주 월요일 김봉진 대표 편이 방영될 예정이다 . 그는 이미 사자왕도 부러워하는 토끼 중의 토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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