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51. 원티드 – 겨우 몇 발의 총알
March 17, 2017

원티드 wanted 슬로업

※ 스포일러 있습니다.

《원티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흠칫 놀랐습니다. 주인공 웨슬리(제임스 매커보이 분)는 이렇게 말합니다.

야, 대체 지금까지 뭘 하고 이따위인 거야?
What the fuck have you done lately?

불의의 일격이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3초 동안 웨슬리는 갑자기 영화 밖의 관객에게 말을 겁니다. 대뜸 카메라를, 아니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저런 말을 던졌습니다. 당황스러운 질문의 요지는 이거였습니다. "너는 왜 네 인생을 조연으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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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사는 인생, 기왕이면 심장 뛰는 일을 하며 살자고, 이 영화는 웨슬리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웨슬리는 소심한 직장인이었던 과거를 버리고 결사단체의 암살 요원으로 거듭나는 인물입니다. '악 하나를 없애 수천의 선을 구한다'는 믿음을 동력으로 삼아 암약하는 단체죠. 수장 슬로안(모건 프리먼 분)은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선택을 해야 돼.
순한 양처럼 숨죽인 채 삶에 찌들어 순종을 하든
아니면 운명의 주인이 되든.
결정을 해야 돼.
양이 될 것인지, 아니면 늑대가 될지.
선택은 너에게 달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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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쁠 정도로 심장 뛰는 일 … 그걸 왜 안 해?

결사단체로 향하는 다리를 기점으로 영화는 전후반이 나뉩니다. 웨슬리가 건너자 다리는 반으로 접혀 단절됩니다. 다리 저쪽의 웨슬리는 순한 양이었습니다. 직장 상사의 히스테리에도, 애인과 바람피우는 동료에게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심장병을 동반한 공황장애 같은 게 자꾸 와서, 약을 먹고, 그저 하루 하루를 버틸 뿐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입버릇처럼 늘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그의 앞에 폭스(안젤리나 졸리 분)가 나타납니다. 폭스는 대뜸 "당신 아버지를 안다"고 말합니다. 웨슬리가 "아버지는 어릴 때 돌아가셨다"고 답하자 폭스는 황당한 얘기를 전합니다.

당신 아버지는 어제 돌아가셨어. 빌딩 옥상에서. 최고의 암살 요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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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를 따라 결사단체에 간 웨슬리는 극한의 상황에 놓입니다. 그것은 웨슬리의 잠재력을 깨우는 수련의 과정이었습니다. 사실, 말이 수련이지 대체로 죽도록 얻어맞는 일이었습니다. 맞고 기절하고 치료받고 다시 맞기를 반복하면서 본능에 눈을 뜹니다. 그렇게 양에서 늑대로 점차 변해갑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겠죠. 웨슬리는 처음부터 '양의 탈을 쓴 늑대'였거든요. 그의 심장병은 사실 병이 아니라 신의 선물이었습니다. 특수한 상황이 되면 분당 400회가 넘게 뛰는 그의 심장은 아드레날린을 미친듯이 뿜어냈습니다. 모든 감각을 깨우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집중력을 만들어냅니다. 그 막강한 능력의 원천이 '숨 가쁠 정도로 뛰는 심장'이라니. 설정이 재밌습니다. 영화 전반에서 넌지시 말하고, 마지막에 이르러 돌직구를 던지는 이 영화의 메시지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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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쁠 정도로 뛰는 심장 … 근데 그런 심장도 굶으면 멈춘다

《원티드》는 2008년 영화죠. 벌써 10년이 다 돼가네요. 전에 봤을 땐 영화의 메시지가 그저 멋지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맞아, 역시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지. 그렇게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시 본 이 영화는 메시지의 전달방식이 좀 과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영화들은 이런 메시지를 전할 때 위로를 품고 조심스레 접근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처럼요.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일은 녹록치 않다는 걸 이제 모두가 알기 때문이죠.

숨 가쁠 정도로 뛰는 가슴, 솔직히 이거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들 가슴 뛰는 일 안 하고 싶겠어요. 언제나 문제는 돈이죠. 스타트업을 하면서도 그렇습니다. 가슴 뛰는 일, 재밌는 일만 할 수는 없죠. 그보다 먼저 돈 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돈의 다른 이름은 생존입니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어도,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고 싶어도, 혹은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어도, 먼저 돈을 벌어서 생존을 해결해야만 하죠.

그러면, 가슴 뛰는 일은 안 할 거냐는 질문에 "YES"라고 답하는 스타트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습니다. 합니다. 뭐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죠. 그래서 외주를 하고, 강연을 뛰고, 최대한 아끼고, 또 아끼는 배고픈 시절을 보냅니다. 충분한 매출이 생기기 전까지는 아끼면서 버틸 수밖에 별다른 답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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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몇 발의 총알 … 침착하게 겨눠 신중하게 쏘자

사업자금은 흔히 '총알'에 비유되곤 하는데요. 《원티드》를 보며 '총알을 아껴쓰는 방법'을 배워볼 수 있었습니다. 가슴 뛰는 일을 쫓는 사람들의 탄창은 대체로 가볍습니다. 이 총성 없는 전쟁통에서 겨우 몇 발의 총알이 있을 뿐이죠. 타이밍을 기다리며, 숨을 참고 정확히 조준해서 한 발. 그렇게 쏴야 합니다. 낭비할 총알은 없습니다.

최강의 암살 요원 웨슬리는 적을 해치울 때 절대로 난사하지 않았습니다. 늘 한두 발로 상황을 종결했습니다. 지켜보며 타이밍을 기다리고, 감각을 깨워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한 상태에서 침착하게 조준합니다. 잘 참고 신중히 쏜 총알은 급소에 적중하고 상대를 눕혔습니다. 그가 강한 이유는 그 순도 높은 조준의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총알이 적다 해도 잘 참고 적재적소에 쏘면 승리할 수 있다. 영화는 이걸 알려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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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암살 요원들의 필살기는 '휘어지는 총알'입니다. 훈련을 통해 총알이 직선이 아닌 곡선을 그리도록 쏠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설정이죠. 이 부분도 의미심장합니다. 영화의 주제의식과 겹쳐 보면 마치 "아니, 꼭 직선으로만 가야 한다고 누가 그래?"라고 묻는 듯합니다. 슬로안은 웨슬리에게 휘어 쏘기 시범을 보이며 "기존의 고정관념을 모두 버리라"고 말하기도 하죠.

'휘어 쏘기'는 변칙입니다. 변칙은 상대의 예측을 무너뜨립니다. 대처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몸집이 큰 상대일수록 더욱 그렇죠. 이 영화의 설정에 빗대어 말해본다면, 겨우 몇 발의 총알을 가진 스타트업이 그걸 꼭 직선으로 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예측 밖의 방향으로 쏘면 단 한 발로도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요.

가슴 뛰는 상상을 비로소 현실로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오늘도 스타트업은 총알값을 모으며 버팁니다. 그렇게 얻은 몇 발의 총알은 꼭 신중하고 재치있게 쓰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멋진 헤드 샷을 날릴 수 있기를.

영화 이미지 ⓒ Universal Pictures

slogup
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슬로그업은 개발중심의 IT스타트업입니다. 자체서비스 개발과 외주개발사업을 하며 늘 가치있는 무언가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