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람가 31.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달콤한 잉생
September 30, 2016

달랑 80만 원으로 1년간 유럽 전역을 여행하는 일은, 가능할까요?

말 안 되는 이야기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서플러스(Surplus)라 지은 자타공인 잉여들이 해냈습니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이들의 대책 없이 반짝이는 유럽 여행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스타트업 성장기와도 다름없네요.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되니 더욱 애정이 가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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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전혀 무모해 보이지 않는 사업아이템

여행자금은 원래 다음 학기 등록금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방학 내내 알바를 했는데도 등록금은 모이지 않았고, 영화과 동기들은 에라 모르겠다 이 돈으로 유럽여행을 떠납니다. 물론 나름의 참신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가서 현지 민박집들의 홍보영상을 찍어주고, 그 대가로 숙식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여행의 피날레로 영국에서 ‘제2의 비틀즈’를 찾아 뮤직비디오를 찍어주겠다는 야무진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무모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숙식만 제공해주면 홍보영상을 찍어주겠노라, 프랑스의 한국인 민박집들에 이메일을 돌렸지만 아무도 연락해오지 않습니다. 돈도 얼마 없어서 텐트 치고 노숙을 하는데 춥긴 또 왜 이리 추운가요.

결국 “좀 따뜻한 곳으로 가자”며 나침반을 열고 무작정 남쪽으로 이동합니다. 그것도 지도 한 장 없이요. 사실은 지도 살 돈이 있었는데요. 이들은 그 돈으로 치킨을 사 먹었습니다. 통닭 한 마리를 맛있게 나눠 먹고 난 후에야 “아니 지도를 샀어야지! 생명을 걸고 치킨을 사 먹다니 우린 진짜 잉여들이다.”라며 후회하네요.

남쪽으로, 그리고 남쪽으로. 돈이 없으니 히치하이킹을 합니다. 여의치 않으면 나침반을 열고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걷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어찌어찌 이탈리아 로마까지 도착한 걸 보니 어쨌든 생존력만큼은 탈잉여라는 걸 인정해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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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고객을 만나는 희열

하지만 여기라고 사정이 바뀌진 않네요. 유럽에서 숙소가 가장 많다는 로마, 그곳의 모든 한국인 민박에 이메일을 돌려도 아무런 회신이 오지 않습니다. 배는 자꾸 고프고, 돈은 없습니다. 이젠 정말로 막막해졌습니다.

급기야 같이 온 선배들은 한국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팀이 반 토막 난 것이죠. 로마에 남은 호재, 하비, 현학, 휘 네 명의 잉여들은 로마의 쓰레기장에 텐트를 치고 통조림 캔에 라면을 끓여 먹으며 버팁니다. 여행경비는 다 합쳐봐야 꼴랑 2만 원 정도 남아있네요.

결국, 포기합니다. 남은 돈을 다 털어 배를 채우고 한국에 돌아가기로 합니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요. 음식을 사서 쓰레기장으로 돌아온 호재는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듣습니다. 처음으로 답신이 온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오늘은 침대에서 잘 수 있어!” 라며 쓰레기장에서 부둥켜안고 환호합니다.

타깃집단을 피벗 하다

기대가 언제나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막상 민박집 사장님을 만나보니, 그건 그냥 호의였습니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청년들을 하룻밤 먹여주고 재워주었지만, 홍보영상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좌절도 익숙했던 이들은 사업전략을 수정합니다. 그때부터 한국인 민박이 아닌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호스텔에 이메일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딱한 곳에서 홍보영상을 찍어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외국인 사장은 거지꼴을 한 채 영어도 어눌한 이들을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기대는커녕, 대번에 무시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지켜보는 관객 역시 “이번에도 고단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이들은 실력으로 승부합니다. 기발한 기획과 참신한 특수효과가 가미된 홍보영상 완성본을 본 호스텔 사장은 태도를 180도 바꿉니다. “너무 맘에 든다” “다른 가게 영상도 부탁한다”며 레스토랑 4인 풀코스 식사권까지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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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제품은 그 자체가 마케팅이다

영상은 유튜브에 올랐고, “이런 센스 넘치는 호스텔 홍보영상을 공짜로 찍어주는 자들이 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퍼집니다. 갑자기 너도나도 자기 숙소에 좀 와달라고 요청합니다. 새로고침 할 때마다 새로운 이메일이 와있네요. 호스텔 사장들은 잉여들을 사로잡기 위해 자기들끼리 경쟁하기 시작합니다. 숙식 제공은 당연하고, 이젠 생각지도 않던 제작비까지 섭섭지 않게 받게 되었습니다.

압권은 영국 애든버러의 호텔이었습니다. 유럽 체류일이 끝나 잠시 터키에 가 있던 이들에게 문득 이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영국에 와서 우리 호텔의 홍보영상을 찍어주면 숙식은 물론, 비행기 푯값까지 전원 제공하겠다, 대신 애든버러 내에서는 우리 호텔 영상만 찍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파격 제안은 이들에게 의미가 남다른 것이었습니다. 애든버러는 ‘비틀즈 거리’가 있는 곳이죠. 여행 초 막연한 꿈처럼 소원했던 ‘제2의 비틀즈를 찾아 뮤직비디오를 찍어주겠다’는 목표가 이제 진짜 눈앞에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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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하다 포기하는 것 vs 무모하게 실행하는 것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뒤 이야기는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남겨두겠습니다. 참고로 메인 서프라이즈는 아직 언급도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무척 재밌게 봤고, 영화를 보고 나서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스타트업 분들께도 권해주고 싶네요. 여기서 말을 아끼겠습니다.

어떠세요, 스타트업 성장기랑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요? 잉여들은 무모해 보이는 계획을 품고, 주변의 만류에도 실행에 옮기고, 라면을 먹으며 버티다 고객을 만났습니다. 피벗을 거쳐 고객을 찾았고 정성을 다해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성공했죠.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이들이 ‘잉여’였기 때문입니다. 별 대책도 없이, 이것저것 따져보는 대신 무작정 실행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꼼꼼히 계산해봤다면 이렇게까지 무모한 여행은 애초에 시작조차 못 했을 거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단 실행하는 것도 몹시 나쁜 전략만은 아닌 것 같네요. 책상에서 계산만 하다가 시작도 못 하는 것보다는 무모하게 실행한 후 실패하는 게 그래도 낫지 않을까요.

물론 그래도 저라면 최소한 가기 전에 이메일을 미리 돌려놓고 갔을 것입니다. ^^; (서플러스는 대단한 정말 잉여분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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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미지 출처: CJ E&M 무비꼴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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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천 coo@slogup.com 슬로그업의 영화 좋아하는 마케터. 슬로그업은 개발중심의 IT스타트업입니다. 자체서비스 개발과 외주개발사업을 하며 늘 가치있는 무언가를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