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Bitcoin), 실험적 대안 화폐
2017년 01월 23일

*편집자 주: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위키노믹스》와 《블록체인 혁명》을 쓴 디지털 전략가 돈 탭스콧의 TED 영상을 붙입니다.

2008년 10월 31일

이날은 비트코인과 암호학의 역사에서 매우 뜻깊은 날이다. 2008년 10월 31일 저녁 6시, 나카모토 사토시(Nakamoto Satoshi)라고 자신을 소개한 익명의 사용자가 "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온라인에 등록했다. 이 게시물에는 훗날 '비트코인 논문'이라고 불리게 될 PDF 파일이 첨부되어있었는데, 여덟 쪽의 짧은 분량임에도 그가 구상했던 비트코인의 특징과 원리를 잘 설명하고 있다. 

혹자는 비트코인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구현된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일 뿐이며, 상상할 부분이 별로 없는 토픽이라고 폄하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이메일'과 더불어 인터넷 본연의 특징과 기능을 가장 잘 구현한 서비스 가운데 하나로,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다. 따라서, 비트코인의 특징을 살펴보는 일은 우리가 블록체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데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비트코인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온라인에 등장한 시점은 앞서 '비트코인 논문'이 올라오기 약 두 달 전인 2008년 8월 18일, 도메인 네임 'bitcoin.org'가 인터넷에 등록되면서부터다. 등록자는 나카모토 사토시로 추정될 뿐, '어나니머스 스피치(Anonymous Speech)'를 통해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도메인을 등록하였으므로 정확하지는 않다. 그는 이후에도 철저히 자신을 숨기는 모습을 보이는데, 어떤 이유인지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다.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나카모토 사토시는 본명이 아니며, 일본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고, 한 명의 개인이 아닐 가능성도 매우 크다. 나중에 그에게 닥치게 될 상황을 생각하면, 이런 식의 행보는 당연하였을 수도 있다.

나카모토 사토시

2016년 5월, 자신이 나카모토 사토시라고 주장한 호주인 크레이그 라이트, 이 사람이 진짜 나카모토 사토시가 아닐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Image Source: BBC News

그리고, 같은 해 10월 31일 나카모토 사토시는 "나는 제3의 신용 또는 보증 기관 없이 P2P만으로 운영되는 새로운 전자 화폐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면서 한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듬해인 2009년, 비로소 비트코인(Bitcoin)이라는 암호화 디지털 통화가 등장했다. 기존의 통화나 재화들은 국가나 기업이 가치를 보증하지만, 비트코인은 그런 보증 대신 P2P(peer to peer) 기반의 분산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공개 키 암호 방식으로 거래를 수행하기 때문에 통화를 발행하고 관리하는 중앙 장치나 기관 역시 존재하지 않는 구조다. 비트코인은 공개성을 지니는 고유한 주소가 부여된 지갑 파일의 형태로 저장되어, 그 주소를 기반으로 비트코인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비트코인에서는 일반적인 제도권 중앙은행처럼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특정 관리자가 조작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비트코인의 핵심 소프트웨어는 제한된 수준에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지만, 예측이 가능하고 모든 당사자에게 미리 공개되어 있어서 일반 사용자들이 가치를 재분배하는 과정에 중앙이 통제해서 영향을 줄 수는 없다.

대중으로부터 비트코인이 처음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10년의 어느 날, 많은 사람이 충격에 빠질만한 일이 벌어졌다. 플로리다의 프로그래머 라슬로 하이에크(Laszlo Hanyecz)가 직접 채굴한 다량의 비트코인(약 10,000 BTC)으로 비트코인 포럼(Bitcoin Forum)에 라지 피자 2판과 교환을 원한다는 게시물을 올렸는데, jercos라는 사용자가 제안에 응해 맛있는 파파존스 피자 두 판을 배달받도록 해준 것.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교환 가치를 갖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0,000 BTC로 구입한 라지 사이즈 피자 2판,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한화로 약 90억 원의 가치다!(2017년 1월 12일 기준, 1 BTC = 약 90만 원) Image Source: Bitcoinwiki

이 사건이 '충격적'인 까닭

시간을 조금만 더 앞으로 돌려 보자. 화폐의 역사가 조개나 물물교환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오해와는 달리 근대적 개념의 '화폐'와 '부', '시장경제' 등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300년이 채 되지 않은 근래의 일이고, 실제 화폐는 금(또는 은)본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경제학의 일반론이다.

17~18세기의 봉건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산업 혁명이 진행되고 생산량이 폭증하자 (당시에는 쓰지 않던 개념인) 자본주의적 정서가 팽배해졌다. 생산력의 폭발적 증가는 곧 자유무역과 시장의 발달로 연결되었다. 부는 신대륙 개발이나 공장 건설, 전쟁 등을 위해 금과 은의 형태로 국가에 귀속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 

이렇게 모인 금이나 은은 소장 가치보다 너무 무거웠다. 부자나 영주들은 무게나 보관 등에 대한 위험을 이유로 창고에서 금 세공업자들의 손을 빌려 금을 주화의 형태로 만들어 보관하기 시작했다. 금 세공업자들은 그 대가로 영주들로부터 보관료를 받고 증서를 써주는 일이 빈번해졌다. 

무거운 금화보다 종이나 양피지에 쓰인 보관증은 가볍고 편리했다. 그리고, 언제나 금으로 교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이 금 대신 보관증으로 거래하기 시작했다. 곧, 똑똑한 금 세공업자들은 얼마 되지 않는 보관료를 받는 대신 사람들이 맡겨둔 금화를 남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며 투자자들에게 그 이자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쟁을 준비하는 영주나 부유한 상인, 신대륙을 개척하려는 모험가들이 대상이었다. 이러한 '투자'는 항상 대출이자가 예금이자보다 높은 탓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선순환은 오래가지 못했다. 금 세공업자들 대부분이 아무도 금을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선 자신의 금고에 실제로 있는 금보다 더 많은 양의 차용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없는 돈을 찍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런 사기 행각은 은행에 맡겨둔 예금을 고객들이 일시에 금을 찾아서 은행이 지급 불능에 빠지는 '뱅크런(bank run)'을 촉발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지점이다. 식민 전쟁으로 다량의 금과 은이 필요했던 영국 왕실은 정기적인 감사와 정부에 대한 복종을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받은 은행(Chartered Bank)들에게 금 보유량보다 3배나 많은 금의 대출을 가능하도록 '배려'를 해주기로 약속한 것. 이렇게 '잉글랜드 은행'이 설립되었다. 차용증은 법정 화폐라는 이름으로 영국의 식민 사업과 전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고용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되었다.

이 '배려'는 '지급 준비 제도'라는 이름으로 현대 은행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예전에는 금이나 은이 지급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돈이나 채권이 지급 준비의 대상물로 더 악화하였다는 점이 다를 뿐. 바꿔 말해, 예전에는 100만 원어치 금을 가진 은행이 지급 준비율이 10%라면 그 10%를 제외한 90만 원의 돈을 빌려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대상물이 화폐이므로 이렇게 빌려준 90만 원이 다시 은행에 예치되고, 그 돈에서 역시 9만 원을 제외하고 81만 원을 대출로 사용할 수 있어 무한 등비급수로 반복된다. 10%의 지불 준비율만으로 10배가 넘는 돈을 찍어낼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마법 같은 부의 증대가 일어나는가? 또, 그 책임은 누가 지고 있는가? 아마도, "물가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을 할 수 있겠다. 1970년, 우리는 100만 원으로 28oz의 금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2015년에는 겨우 0.5oz의 금을 살 수 있었다. 금의 가격은 45년 만에 48배나 증가했고, 증가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돈을 무한정 찍어내기 때문에 모두가 가난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FRB의 금융 매뉴얼인 "현대 금융 원리(Modern money mechanics)"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누군가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것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돈이 많아지면 돈의 가격이 내려가므로 비트코인(대신 다른 현물을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물론 감가상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로)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오르게 됩니다. 그러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트코인의 가격은 무조건 오를 겁니다. 그것이 물가 상승률이나 다른 대체 투자 자원보다 얼마나 차이가 나느냐가 중요"하다고 답한다. 그리고 실제로 뱅크런이 일어나면 부산 저축 은행 사태처럼 예금자들은 법이 정한 한도 이외에는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

게다가 신용 본위의 지급 준비 시스템은 화폐의 공급 증가를 통한 경제 위기나 인플레이션 외에도 가장 치명적인 한가지 문제가 더 있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되는 측면이다. 아무도 초과 발행한 돈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경제 체제는 곧 붕괴하고 말 것이다. 지급 준비 제도를 통해 주기적으로 오는 불황은 경제적 약자를 파산으로 내몰고 노동력이나, 집, 땅, 자동차 등의 자산을 헐값에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은 더 신용이 있는 사람(부자)이 더 국부를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든다. 

애덤 스미스는 금이나 은이 국가의 부의 척도라는 주장을 배격하고 노동력이나 그것에 기초해 생산한 자원들의 총칭을 국부로 정의했다. 이러한 국부는 교환재로서 화폐나 금, 은과는 달리 실질적인 국가의 힘이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또는 집단)의 의지를 실현하는 최소 단위다. 

신용 본위의 지급 준비 제도는 가장 기본적인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린다. 신용은 채무를 더 잘 갚을 수 있는 능력으로, 기본적으로 생산 능력이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다. "은행은 비가 오기 전까지 우산을 빌려준다"는 금융계의 오랜 속설이 여기서 출발한다. 이러한 병폐에도 불구하고 신용 본위의 지급 준비 제도를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가 어떠한 형태이든 그 수뇌부에는 기득권을 지닌 관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비가 오기 전까지 우산을 빌려준다"

인류 역사상 정보는 소수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었고 교육을 통해 비밀리에 전파되었다. 대중 매체, 공공 교육 등을 통해 수혜의 범위가 확장되었지만 어디까지나 통제 가능한 형태로 이루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은 이런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넷스케이프의 창업자인 마크 앤드리슨은 "비트코인은 금융 체제를 재창조할 수 있다"면서 극찬했다. 기존 금융 체계의 부조리와 비효율을 제거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점을 본 것이고, 금융 주권 회복을 위한 전초로서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부분은 키프로스나 그리스 금융 사태와 같이 정부가 안정성과 능력에 대해 의심을 받고,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나 영국의 브렉시트처럼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면 비트코인의 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점이다. 최근 비트코인의 드라마틱한 가격 변동 추이를 살펴보면 더 재미있다. 정체기에 있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브렉시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인도 화폐 개혁 등 글로벌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가파르게 가격이 상승했다. 

거의 가치가 없던 비트코인이 2013년 3월 키프로스 사태 이후 급등하기 시작했다. / Image Source: Coindesk

몇몇 국가들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국경의 제약이나 계좌와 같은 복잡한 체계 없이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으로서 해외 송금부터 지급 결제까지 시장을 지속해서 늘려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비트코인을 통해 시작된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어떻게 기존의 시스템들을 변화시키고 인류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어떤 부분은 초창기 인터넷의 예측처럼 허황되게 들릴 수도 있다. 또,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왜 굳이 블록체인으로 이러한 일을 해야만 하는지 궁금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다음 연재에는 비트코인이 과연 화폐인지, 왜 정부는 비트코인을 규제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블록체인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지 살펴볼 생각이다.  

*블록체인 전문 스타트업 블로코(blocko) 김종환 대표의 블록체인 칼럼 시리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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