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스타트업 ‘휴메이저’ 권규석 대표, “싸드 문제로 회사가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 본질에 집중”
2017년 04월 06일

휴메이저

한중간의 정치적 문제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은 모양새다. 아시아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의 중요성과 진출 필요성은 여전하지만, 싸드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중국 시장 진출의 중요한 발판을 마련한 스타트업이 있어 이번 칼럼에서 소개해보려고 한다.

필자는 지난 3월 22일, 휴메이저의 권규석 대표를 만나 이번 투자 유치와 조인트벤처 설립 과정에 대해 소상히 물었다. 주된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풀어본다.

이한종 - 중국으로부터의 이번 투자 유치와 조인트벤처 설립 소식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말씀해주시죠.

권규석 -  작년 하반기, 싸드 문제의 여파로 회사가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서인지 더 본질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인큐베이팅하던 다른 브랜드보다는 '닥터포헤어' 제품을 기반으로 헤어케어(모발 보호)의 영역에 집중했는데, 그것이 한후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게 된 주된 동인이 된 것 같습니다.

이한종 - 한국의 스타트업 업계에서 한후는 아직 생소합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권규석 - '한후화장품유한공사(韩后化妆品有限公司, 이하 한후)'는 중국의 3대 화장품 회사라고 보면 됩니다. 중국의 오프라인 화장품 시장에 2만개의 유통망을 갖고 있고, 제품 판매에 한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현재 활동 중인 모델은 김수현, 그 전에는 전지현이었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매출이 1조원 정도인 회사입니다.

이한종 - 보통주로 30억 원을 투자받은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조인트벤처의 구체적인 형태와 양사의 협력 포인트가 궁금합니다.

권규석 - 한후는 헤어케어 영역이 중국 화장품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작년부터 한국의 파트너사를 물색해왔습니다. 당시 국내의 경쟁사로 'TS'나 '댕기머리' 등의 브랜드가 있었지만, 저희 '닥터포헤어'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브랜딩과 마케팅을 진행해왔던 점이 차별점이었다고 봅니다. 국내에서 꾸준히 연매출 100억 원 이상을 기록한 휴메이저의 이력도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이번에 한후와 함께 설립한 조인트벤처는 쉽게는 '닥터포헤어 차이나'라고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휴메이저는 닥터포헤어 제품의 개발과 관련 콘텐츠 생산을 전담하고, 한후는 중국 내 마케팅과 유통을 맡게 됩니다. 향후 3년까지 중국 매출 목표는 연간 2,000억 원 정도입니다. 중국의 헤어케어 시장이 2019년 기준으로 8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니까, 2천억 원이라고 해도 2% 정도의 점유율입니다. 한후는 한중간의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건 없는 보통주로 투자를 했다는 것은 이번 조인트벤처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한종 - 휴메이저는 국내 시장에서 닥터포헤어 제품을 성공시킨 후, 다양한 뷰티 브랜드를 인큐베이팅하는 종합 뷰티 스타트업을 표방하면서, '베소네', '르헤브' 등의 라인업을 키워왔는데요. 무리한 확장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다시 '닥터포헤어' 기반의 헤어케어 시장에 집중하기로 전략을 수정하셨는데요. 관련해서 한국의 스타트업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권규석 - 네. 간단히 말하면 짜장면집은 가장 맛있는 짜장면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면서 회사의 외형적인 지표들을 키우려다보니, 팔보채도 만들어야 하고, 짬뽕도 만들어보려 했던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뷰티 제품들의 특성상 품질도 중요하지만 마케팅에 들어가는 예산이 높아서 닥터포헤어의 매출 대비 R.O.I가 좋지 않았습니다. 한후도 닥터포헤어 제품군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졌는데요. 작년 한해, 한중 사이에 싸드 문제가 생기고 수출 경기가 급감하는 과정에서 휴메이저는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어쩌면 싸드 문제는 휴메이저가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정확한 프레임을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좋은 계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한종 - 대표님께서는 휴메이저를 창업하기 전 '클레버 커뮤니티'라는 병원 광고 컨설팅 회사를 창업하고 옐로모바일에 매각한 경험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이 휴메이저를 운영하시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권규석 - 클레버 커뮤니티는 병원이라는 버티컬 영역에서 광고 솔루션을 컨설팅하고, 광고를 집행하는 마케팅 회사였습니다. 그 일과 관련해 내부적으로 쌓은 바이럴 마케팅 역량이 닥터포헤어를 창업하는 데 좋은 기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닥터포헤어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먼저 두피케어를 위한 오프라인 숍을 운영했는데요. 그 당시의 고객 니즈와 데이터가 닥터포헤어를 만드는 데 중요한 근거로 작용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한종 - 한국의 스타트업 업계에서 글로벌 진출과 중국이라는 시장은 여전히 중요하고 개척 대상입니다. 창업자들에게 조언하실 부분이 있나요?

권규석 -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한류라는 트렌드, 혹은 보유한 네트워크를 자산으로 삼아 중국 시장을 진출하려고 하는데요. 궁극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제품이 없다면 시장에서 외면을 받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꽌시(关系, 중국 특유의 관계 형성 방식)' 역시 상호 이익이 되는 좋은 제품에서부터 시작해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이한종 - 삼성그룹을 일궈낸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지인들에게 '운(運)', '둔(鈍)', '근(根)' 세 글자를 붓글씨로 즐겨 써줬다고 하는데요. 사업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운이 따라야 하고, 당장 운이 없다면 긴 호흡으로 기다려야 하고, 운에 닿았어도 근성을 갖고 버텨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대표님도 지난 성과에 대해 운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는데요.

권규석 - 네, 운은 기다려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작은 차이를 통해서 기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작은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 일상인데요. 매사에 긍정적으로 상황을 인식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이병철 회장님의 말처럼 운이 닿았어도 근성 있게 버텨야 한다는 가르침도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한종 - 마지막으로, 휴메이저의 향후 비전과 회사 운영 철학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규석 - 올해 한후와 만든 조인트벤처가 중국 시장에서 어떤 매출 규모를 기록하게 될지는 향후 회사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 중국도 큰 시장이지만, 글로벌 헤어케어 시장은 100조 원에 가까운 큰 시장입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최고의 글로벌 두피케어 전문 브랜드가 되도록 할 것 입니다. 올해 말을 기점으로 아시아 전역의 유통 채널로의 입점을 준비 중이고, 2018년 말 정도에 기업공개(IPO)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회사 운영의 철학은, '직원 모두가 휴메이저와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휴메이저는 짐 로저스(Jim Rogers)가 한국의 스타트업 가운데 최초로 투자한 곳들 중 하나다. 지난해 싸드 문제로 회사의 성장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를 기회로 삼아 중국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휴메이저의 성과는 한국의 스타트업 업계에 귀감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와 같은 외부적 변인에 아랑곳없이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로 거대한 중국시장을 호령할 또다른 한국의 스타트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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